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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ug 12. 2022

빙빙 돌아가는~

feat. 고유가 시대

"오~~"     


"무슨 일이야?"     


좀처럼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남편이 내는 감탄의 소리에 저도 모르게 귀가 쫑긋했어요. 그리고 남편이 바라보는 방향을 바라보았죠. 그곳은 바로 주유소. 기름값을 보니 저도 남편과 똑같이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름값이 1700원대로 떨어진 것이죠. 한동안 기름값이 2000원을 웃돌면서 진짜 출퇴근 말고는 제 차를 끌고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었어요.      


제 차는 준중형차인데 처음 제가 차를 운전하기 시작했을 때는 8-9만 원이면 정말 바닥난 상태에서 풀(full) 충전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기름값이 슬금슬금 오르더니 9만 원도 모자라 10만 원은 넣어야 꽉 차게 되었고, 최고점을 찍었을 때는 11만 원까지 올랐다니까요. 세상에나. 출퇴근만 했는데 기름값이 한 달에 20만 원이 훌쩍 넘게 드는 거예요. 게다가 연비도 안 좋아서 정말 길바닥에 돈을 뿌리고 다니는 느낌이었어요. (ㅠㅠ)     

그렇게 기름값 고공행진이 이어지던 어느 날. 진짜 바닥에 기름을 뿌리고 다닌 날이 있었어요.      


바야흐로 몇 달 전, 코로나가 잠잠했던 때였죠. 아마 이때 실외 마스크도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으로 변경되었을 거예요. 기회는 이때다 싶어 전 근무지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분들 단톡방에 운을 띄웠어요.     

"만나야 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또 몇 년을 얼굴도 못 보고 지나갈지도 몰라요!"     


그러자 다들 같은 마음이었는지 속전속결로 한마음 한뜻이 되었고 바로 만날 날을 잡았어요. 하루하루 날이 지날수록 신났어요. 같이 일했을 때 더없이 궁합이 잘 맞았던 분들을 만난다는 사실 자체에도 흥이 났지만 이제 진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기뻤거든요. (지금 이 상황이 도래할 줄 꿈에도 몰랐던 1인)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도래했어요!      

"좀 있다 봐요~~~"라는 인사를 끝으로 저는 한 시간 이른 퇴근을 했어요. 초보운전인 데다가 저만 타지에서 출발하는 거라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과감히 조퇴를 했죠. 그리고 이때는 지금보다도 주차가 더 서툴러서 혹시나 주차할 자리가 없으면 대략 난감, 아무나 붙잡고 주차를 부탁해야 할지도 몰랐기에 차라리 마음 편하게 아예 일찍 가자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룰루랄라~! 출발~! 네비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산뜻한 마음으로 출발~! 시골길을 벗어나 전용도로까지는 아주 평안했어요. 그런데 네비가 갑자기 이상했어요. 제가 찾아본 바로는 전용도로를 벗어나 우회전을 해야 하는데 좌회전을 하라는 게 아니겠어요? 응? 갑자기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했지만 나의 뇌피셜(신체 부위인 ‘뇌’와 ‘공식적인’을 뜻하는 영단어 ‘오피셜(official)’을 합쳐 만든 신조어이다. 공식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닌 개인적인 생각을 뜻한다. 출처 - 네이버) 보다는 기계가 더 잘 알겠지 싶어서 가라는 대로 갔어요. 그런데 계속 가다 보니 너무 이상했어요. 이 길은 집으로 가는 길인데...? 그래서 급하게 빨간불에 정지했을 때 네비를 다시 확인해 보았죠.     


헉! 저는 정말 눈뜬장님이었어요.     


그날 만나기로 했던 장소는 "미술관" 옆 건물 안에 있는 식당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네비에 "박물관"이라고 검색을 한 거예요. 굳이 핑계를 대보자면 미술관은 생긴 지 몇 년 안 되었고 박물관은 초등학생 때부터 주야장천 소풍이나 현장체험이라는 이름으로 드나들었던 곳이라 익숙한 박물관을 검색하지 않았나 싶어요. 여하튼 큰일이었죠. 미술관은 전용도로에서 나와서 우회전이었고 박물관은 좌회전이었으니 완전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으니까요.      


와. 정말 피하고 싶었던 유턴을 해야 했어요. 자자.. 마음을 가라앉히고.. 유턴은 좌측에 작대기 표시 쫙 쫙 쫙 가있는 곳에서 좌회전 신호에 맞춰서 하면 되는 거야. 긴장하지 말자. 괜찮아. 할 수 있어.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해야 하는 순간은 늘 엄청난 심장박동과 스트레스를 동반하죠. 하지만 피할 수 없으니 부딪힐 수밖에요.      


좌회전 라인 진입 성공! 

자 이제 작대기 짝짝 표시를 찾아보자! 

오홍! 저기 있네! 

신호는!? 빨간불이다. 나는 좌회전 신호에 움직이는 거야.

후하. 후하.      


띵! 좌회전 신호가 떴고 저는 살살 차를 움직였어요. 그리고 앞에 좌회전 차량이 가고 난 후 핸들을 양껏 돌려 유턴을 했죠. 그런데 역시나 회전감각이 없던 저는 너무 크게 돌아서 두 개의 차선 중간에 서고 말았어요. 와.. 그 순간 당황스러움이란. 얼른 정신을 차리고 한쪽 차선으로 들어섰죠. 이 찰나의 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요.     


그래도 유턴은 성공했어요! 유후~! 이제 네비도 제대로 설정했으니 가보자. 일찍 출발한 만큼 미술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무료 전시를 보고 여유롭게 식당으로 가고자 했던 계획은 어그러졌지만 제 시간에만 도착한다면야, 전시 따위 안 봐도 괜찮다!     


그런데 일이 술술 풀렸다면 아마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거예요. 마치 재킷의 첫 단추를 잘못 끼면 줄줄이 잘못되듯이 첫 방향을 잘못 잡았더니 계속 길을 잘못 드는 거예요. 직진 차선에서는 괜찮았어요. 통행하는 차량이 많아서 차선 바꾸는 게 조금 힘들었지만 평소대로 엄청 서행하다가 옆 차선이 좀 한산해지면 바꾸면서 잘 갈 수 있었거든요. 문제는 회전이었어요. 300M 앞에서 우회전이라는데 도통 300M 앞이 어딘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는 너무 가까운데, 다음 길인가 보다 하고 직진했는데 바로 그 길이 회전해야 할 곳이었어요! 곧바로  네비에서 경로 이탈했다는 문구와 함께 또 다른 길을 탐색한다면서 저~~~~~~~~~~~앞에 있는 유턴지점을 알려주었어요. 그래서 또 한~~~~~~~~참을 달려가서 유턴을 해서 왔던 길로 돌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네비가 더 빠른 길을 알려준다면서 100M 앞에서 좌회전하라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신중에 신중을 기했건만 그 지점을 또 잘못짚어서 다시 저~~ 앞에 유턴지점을 향해 달리기를 몇 번 반복했어요. 누가 보면 진짜 도로주행 연습하는 것처럼 보였을 거예요.     


그렇게 몇 킬로나 더 달렸는지 가늠할 수 조차 없이 많이 달린 후에야 겨우겨우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남들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나왔는데 그 한 시간을 거리에서 다 까먹고 겨우 약속시간을 맞춘 것이죠. 허무했어요. 시간은 시간대로 아깝고 고유가 시대에 길에 기름을 철철철 뿌리고 다녔으니 돈은 돈대로 아깝고. 사람들 만나서 한바탕 수다를 떤 것도 아닌데 진은 진대로 빠져서 몸은 천근만근이고. 침울했어요.     


그러나 그렇게 침울해한다고 뭐가 변하나요? 게다가 곧 사람들이 올 텐데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에게 침울함을 전파할 수는 없으니 마음을 다잡았어요. 다행히 만남의 시간은 우울함을 떨치기에 충분하고도 넘칠 만큼 재미있었고 기력이 다한 것 같았던 제 몸도 맛있는 음식으로 한껏 든든하게 채웠어요.      


이로부터 6개월 후. 초보운전자는 우연한 기회에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신식 네비는 회전해야 할 지점이 가까워지면 친절하게 알려준다는 사실을요. 제 차의 네비는 아직도 시내 속도 50을 60으로 인식할 만큼 오래돼서 회전 구간이 가까워져도 아무 알람도 해주지 않았던 거고요. 그래서 저는 이제 초행길을 갈 때면 꼭 휴대폰에 설치되어있는 내비게이션 어플을 이용합니다. 자주 이용하지 않아서 이용할 때마다 신세계를 만난 듯 새로운 건 안 비밀이에요! ㅎㅎㅎ     


이 날, 예상했던 시간보다 두배 가까이 운전을 하면서 혼자 되뇌었던 마음가짐이 있었어요. 바로 우리 인생에 있어서 꼭 기억해야 할 "포기하지 말자"에요. 처음 미술관을 박물관으로 잘못 검색한 걸 알았을 때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더라고요. 그래도 약속을 깨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유턴만 하면 제대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회전 구간을 한번 놓치고, 두 번 놓치고 할 때마다 마음이 울컥했어요. 이 기분으로 사람들을 만나봤자 괜히 분위기만 망치고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만 망가트릴 것 같아서 갑자기 집에 일이 생겨서 못 가겠다고 연락할까 고민했죠.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그때 문득 운전이 너무 어렵다고 징징대는 저에게 듬직하게 조언해준 사내 동기의 말이 떠올랐어요.     

"JA야, 너무 걱정하지 마. 아직 우리는 초보운전이니까 길을 잘못 들면 좀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돼. 난 오늘도 출장 가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빙~돌아갔잖아. 그래도 차가 있으니까 갈 수 있지. 안 그랬으면 어떻게 가겠어. 기동성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좋게 생각하자."     


이 말이 정답이었어요. 직접 들었을 때는 교과서적인 말이라는 생각에 귀담아듣지 않았는데 너무나도 필요한 순간에 딱 떠오른 거죠. 덕분에 저는 운전도 포기하지 않고 모임도 포기하지 않는 아주 뿌듯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어요.     


비단 운전만의 문제가 아닐 거예요. 세상사, 인생사에서 어쩌면 가장 많이 뻗쳐오는 유혹이 바로 "포기" 아닐까요. 두려워서 포기하든, 합리화로 인한 포기든, 상황으로 인한 포기든, 포기는 포기일 뿐이에요. 그리고 포기는 한번, 두 번 하면 할수록 쉬워져요. 아마 저도 저 날 운전을 포기했다면 초행길 도전보다는 조수석만 지키는 날들이 더 많았을 거예요. 하지만 전 이겨냈어요! 아직도 초보운전이지만 포기를 이겨낸 초보운전이에요! 

    

앞으로도 수없이 다가올 포기의 순간에 선언합니다! 난 포기하지 않는 초보운전자다!          
이전 10화 네!? 초보운전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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