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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ug 31. 2022

초보지만 한 손 운전

순간을. 찰나를.

운전을 시작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가족을 태우고 다닐 수 있었어요. 물론 수십 번을 다닌 익숙한 길도 가족을 태우고 출발하면 평소보다 두배 정도 긴장이 되었어요. 그래도 깊게 심호흡하고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조금씩 달래 가며 하다 보니 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즈음이었을 거예요. 친정엄마를 모시고 어디를 갈 일이 생겼었어요.     


의자 좀 뒤로 빼!      


아니나 다를까. 친정엄마께서는 조수석에 타시자마자 답답하다는 듯 한마디를 던지셨어요. 그 순간 짜증이 확 올라오더라고요. 가뜩이나 엄마를 처음 태운다는 긴장감으로 온몸이 예민해져 있는데 좋은 말도 아니고 지적하는 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 입장도 이해가 가요. 운전경력 20년의 친정엄마가 보시기에는 아마 "저 자세로 운전이 가능하긴 한 거야?"라는 생각이 드셨을 테니까요.     

제 자세가 어땠냐고요? 아마 모두가 예상하시고 있을 그 자세예요.      


운전석에 앉는다.

의자를 최대한 앞으로 잡아당긴다. (어디까지? 무릎이 운전대 본체에 닿을 때까지.)

운전대는 무조건 두 손으로 잡는다. 

상체는 운전대를 감싸 안을 듯 앞으로 기울어 웅크린 자세이다. (마치 적을 만난 고슴도치처럼)     


누가 봐도 아주 답답한 자세죠. 저도 알아요. 의자를 최대한 앞으로 잡아당기는 바람에 운전만 하면 운전대 본체에 계속 닿아있던 왼쪽 무릎에는 늘 야구공만 한 크기로 빨갛게 눌린 자국이 있었다니까요. 그나마 긴바지를 입는 계절에는 괜찮은데 여름에는 원피스나 반바지를 입어서 눌린 자국을 발견한 사람들은 무릎이 왜 그러냐고 늘 물었어요. 누가 찍어 누르고 간 것 같다면서.     


그런데 이 자세가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어요. 나를 지켜줄 아무 갑옷도 없이 도로에 내던진 기분이었는데 그렇게라도 차에 붙어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어찌나 안정이 되던지요. 게다가 운전대는 당연히 두 손으로 잡는 줄 알았어요. 그동안 그렇게 많은 차를 얻어타니고 다녔는데 왜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한 손으로 운전한다는 걸 몰랐을까요?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게 진리인 것 같아요.      


친정엄마의 말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는 거의 1년을 아르마딜로 같은 저 자세로 운전을 하고 다녔어요. 빨갛게 찍힌 무릎과 한껏 구겨진 어깨로.      

출처 : https://blog.naver.com/petgeek/221339893632

     


그런데 하루는 남편이 운전하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물었어요.     


"한 손으로 운전하면 불안하지 않아?"     

"아니"     

"진짜? 두 손이 더 안정적이지 않나?"     

"아니, 한 손으로 한 번 해봐"     


미심쩍었어요. 아주아주 미심쩍었어요. 뭐든지 손으로 잡는다 하면 한 손보다는 당연히 두 손으로 잡는 게 더 확실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 대화 이후에도 몇 날 며칠은 계속 아르마딜로 자세로 다녔어요. 그런데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시골길로 진입한 어느 날. 문득. 문득 말이죠. 한 손으로 한번 해볼까? 천천히 하면 될 것 같은데, 지금 차도 별로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리고 그냥 했어요.      


다들 한 번씩 경험이 있으실 거예요. 갑자기 생뚱맞게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순간들이 다 적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그 찰나를 잡으면 그동안 마음속에 오래 묵혀왔던 문제가 의외로 너무도 수월하게 풀리더라고요.    


저에게는 한 손 운전이 그랬어요. 처음에는 거의 유동차량이 없는 시골길, 그다음에는 시골길보다는 좀 생동감이 넘치는 "면"단위 도로, 그리고 마침내 제가 사는 도시에서도 한 손으로 운전을 하다 보니 이제는 한 손 운전이 생활화가 되었어요. 그렇다고 완전 베테랑 운전자분들처럼 정말 한 손으로 휙휙 하면서 다른 한 손은 창문에 기대고 그러는 건 아니고요. 뭐랄까. 규정속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의 한 손 운전이랄까.      


그럼 의자는 어떻게 됐을까요? 의자도 한 단계 뒤로 물러났습니다! (자축의 팡파르~~!) 이제 제 왼쪽 무릎은 진하게 눌린 자국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ㅎㅎㅎㅎ 여전히 제 키에 비해서는 의지가 앞으로 나와있는 편이지만 서서히 제 키에 맞는 간격을 찾아가려고 해요.      


이제 더 이상 저희 친정엄마는 제 차를 타셔도 운전석 위치에 대해 아무 말씀도 안 하세요. 눈빛에는 아직도 멀었다~라는 감정이 출렁출렁 대도 자존심 강한 딸이 끝내 자기 뜻대로 할 거라는 걸 아시기 때문일 거예요.     

마지막으로 이 글의 제목이 "초보지만 한 손 운전"이라고 해서 제가 무조건 한 손 운전을 권하는 건 아니에요. 운전에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 한 손으로 운전하는 건 마치 아르마딜로가 갑옷을 벗고 천적인 퓨마 앞에 서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을 테니까요. 운전을 하다 보면 두 손 운전이 불편할 순간과, 너무 앞으로 당겨진 의자가 갑갑하게 느껴질 때가 올 테니 그 변화에 조금만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생각보다 괜찮은 결과가 온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의(한 손 운전이든 두 손 운전이든) 안전운전을 기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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