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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ug 07. 2022

오만방자했던 초보운전자

일촉즉발의 순간!

출근을 하기 위해 제가 살고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도시를 벗어나면 시골이라 하기에는 규모가 큰 "군"단위의 동네가 나와요. 그 동네도 지나면 드디어 제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가 위치한 "면"단위의 아주 작은 마을이 나오죠. 작은 만큼 도로도 아주 한적해요. 시골길에다 저는 남들보다 한 시간 늦게 출근을 하다 보니 제가 운전할 때 도로에는 거의 차가 없다고 봐도 무방해요. 있어도 한두 대가 전부니까요.

     

이는 제가 운전을 아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이 펼쳐진다는 말과도 같죠. 그런데 이 길고 넓고 한적한 길에 불청객이 하나 있어요. 그것은 바로 감. 시. 카. 메. 라. 신호뿐만 아니라 과속도 감지한다는 일명 과속 신호 감시카메라. 길의 초입이나 끝자락에 있으면 차라리 낫겠는데 떡하니 길 중간에 자리 잡고 있어요. 이 길로 혼자 운전해서 다닌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워낙 천천히 달리느라 감시카메라의 존재가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문제는 익숙해진 후였죠. 저는 운전을 할 때 늘 음악을 틀어놓는데 가끔 스스로 저의 선곡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푹 빠져있거나, 혼자 신나서 흥얼거리다가 감시카메라를 깜박할 때가 생긴 거예요. 그러면 어김없이 이어지는 급정거. 끼익! 그래도 음악에 빠져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아요. 문제는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일이 생기거나 해야 할 일의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운전을 하는 내내 딴생각에 빠져있어요. 물론 본능적으로 전방주시 후방주시 양쪽 사이드미러는 주시하고 있기에 기본적인 교통규칙은 꼬박꼬박 지키죠. 


그런데 문제는 이 길로만 들어서면 마음이 급격하게 해이해진다는 거예요. 마치 제자신이 자동운전 감지 시스템이 된냥 거의 99% 반사신경에 운전을 맡긴 채 날 기다리고 있는 심란한 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거죠. 이 정도 상태가 되면 감시카메라의 존재는 어느새 제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말아요. 아주 위험한 상태가 되죠. 그래서 모든 짐이 앞으로 쏠릴정도의 급정거를 몇 번이나 했어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러고도 제가 정신을 못 차렸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오만하게 운전을 하던 중 마침내 일이 벌어지고 말았어요. 그날도 역시나 딴생각에 빠져있었어요. 처음엔 머릿속 10%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딴생각은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들어서자 자신의 영역을 넓히더니 거의 제 뇌의 85%의 수준까지 점령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역시나 아주아주 뒤늦게 발견한 감시카메라. 그리고 마치 루틴처럼 벌어진 급정거.     


끼익!!!!!!!!!!!!!!!!!!!!!!!!!!!!!!!!!! 우당탕탕!      


제 차는 이상한 위치에 멈추고 말았어요. 감시카메라를 지나쳤다고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지나쳤다고 보기에도 어려운 그런 위치. 감시카메라가 운전석 허공에 있게 되는 그런 위치에 서고 말았죠. 여기서 앞으로 조금만 가면 완전 신호위반인데 어떡해야 하나. 하는 찰나에 후방카메라를 보니 다행히 제 차 뒤에 차량이 한대도 보이지 않았어요.      


오호! 그래 이건 신이 나에게 준 마지막 기회야. 후진을 해보자.      


과태료가 나오면 어쩔 수 없고 안 나오면 신께 감사기도라도 드려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천천히 후진을 해 정지선 뒤에 차를 세웠어요. 그리고는 완전히 마음을 놓았죠. 안도의 한숨을 쉬고 뒤를 보니 제 차 뒤에 차가 한대 섰더라고요. 이 시간에 이 길을 가는 차가 있네? 우리 학교 가나? 하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사이 신호가 바뀌었어요. 그리고 평소처럼 액셀을 천천히 밟았죠. 그 순간.     


빵!!!!!!!!!!!!!!!!!!!!!!!!!!!!!!!!!!!!!!!!!!!!!!!!!!!!!!!!!!     


엄청나게 성난 크랙션 소리가 들렸어요. 깜짝 놀란 저는 또다시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았죠. 와장창창! 이미 앞으로 한번 쏟아진 제 짐들이 이번에는 조수석 의자 밑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게 보였어요. 이게 무슨 일이지? 뭐야? 당장에라도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느끼며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겨우 운전대를 꼭 잡고 보니 제 기어가 후진으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악! 아까 정지선 지키겠다고 후진하고 나서 다시 드라이브로 바꾸지 않았던 거예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어요. 이미 크랙션 소리만으로도 엄청난 화가 느껴졌는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내려서 사과해야 하나. 그런데 길 한복판에서? 돌발 크랙션으로 죄송하다고 해볼까? 어떡해 어떡해. 하고 입술만 깨물고 있는데 제 옆으로 차 한 대가 빛의 속도로 지나가는 게 보였어요.


뒤에 있던 차였어요. 창문을 내리고 쌍욕을 하셨어도 겸허히 받아들일 상황이었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지나가신 거예요.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 차를 보며 저도 서서히 출발했어요.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과 놀란 마음이 뒤섞여 거의 공황상태였지만 계속 도로 한복판에 서있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겨우 사무실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으니 온몸에 힘이 풀렸어요. 그리고 오만방자했던 제 자신의 모습을 직면했죠. 여전히 초보운전인 주제에 운전하면서 딴생각을 해서 그런 대(大) 민폐를 끼쳐!? 그것도 도로 한가운데서!? 사고라도 났으면 어쩔뻔했어. 이 바보 멍청아!!!!!!!!!!!     


그날 이후로 저는 운전하면서 딴생각을 안 하려고 기를 쓰고 노력해요. 학창 시절부터 남들은 옆에 친구가 책장 넘기는 소리도 거슬려한다는데 저는 되레 음악을 틀어놔야 집중이 잘되었거든요. 그래서 운전하면서 여전히 음악은 틀어놓고 있지만 너무 흠뻑 취하지 않도록 애도 쓰고 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후진을 한 다음에는 꼭 기어를 드라이브로 옮겨놓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려 되뇌고 또 되뇌어요. 이러한 노력들이 빛을 발해 지금까지는 이 날처럼 뒤차와 부딪힐 뻔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이제 3개월 뒤면 제가 혼자 운전해서 출퇴근한 지 2년이 되어요. 그동안 출퇴근길은 많이 익숙해져서 너무 편안하게 운전했었던 건 아닌가 반성해봐요. 같은 시간 같은 길이어도 도로는 늘 다른 모습이라는 걸 잊어버린 거죠. 거만했던 모습을 버리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려 해요. 온전히 운전에만 집중했던 날들로요. 그리고 비단 운전에만 해당하는 진리가 아님을 깨달았어요. 가정도, 육아도, 일도, 관계도, 그리고 글도 함께한 시간이 길어진 만큼 편안해졌다고 긴장하지 않으면 언젠가 예기치 못한 사고를 마주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제 다시 적당한 긴장감을 늘 유지하며 살아가고자 해요. 그리고 더불어 그날, 뜬금없이 후진하던 앞차 때문에 놀라셨을 텐데 쿨하게 옆 차선으로 지나가 주신 운전자님 죄송하고 또 죄송해요.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요. 베풀어주신 배려에(?) 앞으로는 조심에 조심을 더하는 운전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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