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Sep 05. 2022

[에필로그] 트라우마 16년 극복기

면허가 16년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바로 그 이유.

2006년 겨울. 어쩌면 이 모든 글의 시발점은 바로 그 겨울이었을지도 몰라요. 그 겨울에 저는 공식적으로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거든요.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저는 다시 운전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16년이 그렇게 무상하게 흘렀어요. 

      

"당장 내려요! 우리는 차 못 빌려줘!"     


운전면허증을 받은 다음 해 여름. 어느 렌터카 업체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차량 렌트 계약서도 다 쓰고 차만 끌고 나오면 되는 상황. 운전대를 잡고 액셀을 밟자마자 저는 차를 빼앗겼어요. 제가 급발진을 해버렸거든요. 다행히 앞으로 꿀렁! 하는 정도의 발진이라 누가 다치거나 기물이 파손되는 일은 없었지만 저만큼이나 놀란 듯한 사장님은 버럭 화를 내셨어요. 속사포처럼 말들을 쏟아내셨는데 그중에 지금까지 기억나는 말이 바로 저 말이에요. 당장 내리라는 말, 당신 같은 사람한테 우리는 차 못 빌려준다는 말.     


너무 창피했고 속상해서 집으로 돌아오며 엉엉 울었어요. 그 이후로 몇 달간을 악몽에 시달리며, 일상에서도 뜬금없이 떠오르는 기억에 몸서리를 쳤죠. 그리고 결심했어요. 내 생에 절대 운전을 하지 않으리라. 다시는 이렇게 괴로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리라. 그때부터 자의에 의한 대중교통 애호가가 되었어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상관없이, 시간이 곱절로 걸리든 세배로 걸리든 개의치 않았고요. 버스를 탔다가 택시를 타는 등 여러 번의 번거로움이 있어도 얼마든지 나는 견딜 수 있다고 자신하며 지내다 보니 어느새 16년이 흘렀더군요.     

그 사이에 직장인이 되고 결혼도 하고 임신도 하고 출산도 했지만 여전히 운전은 저에게 생을 통틀어 손에 꼽을만한 트라우마일 뿐이었어요. 하지만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은 시골 발령은 목구멍이 포도청인 직장인인 저를 결국 운전대로 내몰았어요. 처음에는 정말 괴로웠어요. 운전을 하면서 앞에 기록한 일들이 터질 때마다 다시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했거든요.     


"당장 내려! 네가 무슨 운전을 한다고!"     


악몽에서는 매번 다른 모르는 사람들이 나와 저렇게 소리쳤어요. 마치 16년 전 저에게 소리쳤던 렌터카 업체 사장님처럼 잡아먹을 듯 매섭게 말이죠. 그래서 진짜 대중교통으로는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니 간간히 버스가 다닌다고 해서 직접 타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제시간에 출근하지 못할 거란 사실을 다시 확인했을 뿐이었어요.     


결국 다시 운전대를 잡을 수밖에 없었던 어느 날. 도로가 나를 품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도로를 끌어안아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정한 사랑은 내가 받지 못해도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하니, 계속해서 도로를 끌어안다 보면 미운 정이라도 들지 않을까 하는 억지 합리화를 하기 시작한 거죠. 모든 글들에서 느낀 긍정적 시각이 사실은 다 "억지"에서 시작된 거예요. 억지로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지 않으면 도저히 악몽에서도 못 벗어날 것 같았거든요. 게다가 렌터카 트라우마로 인한 스트레스에 제 자신이 잡아먹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이제야 깨닫는 것이지만 도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너무 두려운 마음에 운전대를 잡지 못했던 심리 가장 밑바닥에는 잊은 줄 알았던 이 트라우마성 기억이 저를 옭아매고 있었던 거예요.    

  

그렇게 장거리 출퇴근이 일상이 되고, 억지 긍정 합리화가 생활이 되니 어느 순간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어요. 여전히 렌터카의 악몽은 부지불식간에 떠올라 저를 공격하지만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 거죠.

      

지금은 말이죠. 가끔 출퇴근 운전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해요.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니까요. 육아를 하다 보니 가장 절실한 것이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소망을 트라우마로 인해 엄두조차 못 냈던 운전이라는 행위가 가져다주다니,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말이 뼛속까지 느껴져요. 더불어 제가 처음 지금의 근무지로 발령 났을 때 지인분이 해주신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점점 실현되는 기분이라 신기하기도 하고요. 어떤 말이냐고요? 바로 이거예요.      


"운전이 편해지면 말이죠. 운전시간이 자유시간이 되는 날이 올 거예요."


이제는 이런 상상도 해요.   

   

"언젠가 고속도로도 능숙하게 갈 수 있는 베테랑 운전자가 되면 차를 끌고 훌쩍 바다도 다녀와보고, 좋은 경치도 보러 가야지 "

     

멋지지 않나요? 탐나지 않나요?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거의 인생의 절반을 "운전 트라우마"에 갇혀있던 저도 마침내 알을 깨고 나와 운전자가 되었고 이제는 혼자만의 여행까지 꿈꾸게 되었으니까요. 당신이 트라우마가 있다면 처음에는 저처럼 "억지"로 시작해도 돼요. 저도 도살장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운전석에 앉곤 했으니까요. 정말 다행히 트라우마가 없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면 돼요. 


결국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운전이 즐거워지는 마법"을
스스로 만들어낼 테니까요.     


그리고 저는 무엇보다 당신의 안전운전을 기원해요. 도로 위에 무법자는 되면 안 되니까요.      

2022. 가을의 길목에서.  JA드림.

이전 15화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