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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ug 03. 2022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마의 언덕길

지금의 학교로 발령 나고 맞이한 첫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렸어요. 모두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할 정도였죠. 쌓이는 눈은 아름다웠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는 저의 마음은 그다지 평화롭지 못했어요. 저는 초보운전이었으니까요. 사무실에서 일하면서도 창밖으로 보이는 내리는 눈을 보며 한숨이 났어요.

     

그렇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겨우겨우 출퇴근을 이어가고 있던 어느 날, 사고가 터졌어요!

    

그날 아침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눈을 떠서 베란다로 바라본 바깥이 온통 하얀 나라였거든요. 아이들은 눈이 많이 내렸다고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지만 저는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어요. 그리고 그런 제 마음을 알았는지 남편은 무심한 듯 툭 운전 조심하라는 말을 건넸죠. 아이들을 걸어서 등원시키고 출근을 위해 주차장으로 가는 내내 마음이 침울했어요. 차라리 운전을 하고 있을 때 눈이 내리면 금방금방 녹아서 덜 위험할 텐데 밤새 내리는 바람에 쌓인 눈들이 영하의 기온에 꽁꽁 얼어 빙판길이 되어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빙판길 운전이 무서워서 출근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심호흡 크게 하고 운전대를 잡았어요. 평소에도 서행하는 편이지만 그날은 정말 거북이가 사촌 하자고 할 정도로 느릿느릿 갔어요. 꿈틀꿈틀 동네를 벗어나 꼼지락꼼지락 자동차 전용도로도 무사히 통과하고 근무지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들어서려 핸들을 돌리는 순간!     


으악!!!!!!!!!!!!!!!!!!!!!!!!!!!!!!!! 어어어 어어어 어!? 뭐야!?     
악!!!!!!!!!!!! 어떡해!!!!!!!!!!!!!!!!!     


자동차 전용도로를 벗어나 조금 가다 보면 일명 언덕길이라고 불리는 마의 구간이 있어요. 평소에는 아무 문제없는 평범한 길이지만 경사가 높아서 차들이 몰리는 러시아워나 길이 얼어버리면 사고 위험이 엄청 높다는 그 길. 그 문제의 언덕길을 지나 내리막길 끝에서 좌회전을 해야 제가 근무하는 학교 쪽으로 갈 수 있어요. 그래서 아주 천천히 핸들을 졸려서 좌회전을 하는 순간 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한 거예요.      


한번 미끄러지기 시작한 차는 제가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게다가 그냥 미끄러지는 게 아니라 차가 서서히 돌기 시작하는 거예요. 멈출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버려 두었다간 빙글빙글 돌아가며 양쪽에 있는 담장에 처박힐 기세였죠. 너무 당황스러워서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어요.   

  

"어.. 어.. 어... 아.. 으... 아..."     


순간 머릿속에 번쩍! 든 생각이 있었어요. 누가 말해주셨는지는 지금도 기억을 못 하지만 요지는 이거였어요. [차가 미끄러질 때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면 안 된다. 급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되레 뒤집어지거나 빙글빙글 돌 수가 있으니까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그래서 느린 속도로 회전하며 미끄러지는 차 안에서 저는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았어요. 그리고 핸들은 회전하는 반대방향으로 천천히 돌렸죠. 처음에는 아무 효과가 없는 것 같았어요. 두 눈 질끈 감고 차가 어디에 박으면 빛의 속도로 밖으로 나가자. 차가 터질 수도 있으니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치 기적이 일어난 듯 제 차가 서서히 멈추는 게 느꼈어요. 정말 서서

히. 그래서 브레이크에 조금씩 힘을 주었죠.


그랬더니 드디어 차가 완전히 멈췄어요!      


이미 완전히 차 주둥이가 오른쪽으로 돌아간 상태였지만 어쨌든 멈췄어요. 그리고 다행히도 저는 남들보다 한 시간 늦게 출근해서 그 시간 때에 그 길을 지나가는 차량도 하나도 없었어요. (물론 다른 차량이 있었다면 더 빨리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차라리 없는 게 나았던 것 같아요. 제 차가 돌면서 남의 차를 박기라도 했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네요.)

     

차가 멈추고 가장 먼저 시계부터 확인했어요. 바로 출발해야 출근시간을 맞출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우측으로 완전히 돌아간 차의 방향을 제대로 잡고 출발했어요. 큰 사고가 날뻔한 사람 치고는 아주 차분하게 학교까지 운전해서 무사히 도착했어요. 주차를 하고 나니 그제야 몸에 힘이 풀리더라고요. 터덜터덜 문쪽으로 걸어가는데 교장선생님이 보였어요.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데 안 그래도 실장님 걱정했다면서 어떻게 무사히 잘 왔네,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말씀드렸죠. 차가 반 바퀴 돌아서 죽다 살아났다고. 그 말을 중앙현관에서 듣고 계시던 교감선생님께서 청심환을 건네셨어요. 자리에 앉아서 심호흡을 한 뒤 청심환을 마시니 마의 언덕길에서부터 사무실에 들어설 때까지 미친 듯 뛰던 심장이 조금씩 진정되었어요.      


장황하게 썼지만 사실 찰나의 순간이었어요. 좌회전을 하는 순간 차가 미끄러지고 브레이크를 서서히 밟고 다시 핸들을 돌리고 서서히 멈출 때까지. 시간을 정확히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5분이나 되었을까요. 그런데 그 순간이 정말 영원의 순간 같더라고요. 무서웠어요. 죽음의 순간에 도달하면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는 말이 아주 조금 이해될 정도였어요. 그 정신없는 와중에 차가 처박히면 빨리 탈출해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탈출 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고, 아무도 경험하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이었죠.      


그 이후로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 길에서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을 만난 적이 없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눈이 또 펑펑 내리는 겨울이 또 올 테니, 늘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어요.      


이 사건이 있고 몇 달 뒤에 저보다 1년쯤 먼저 운전을 시작한 중견 초보운전 선생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제가 그 마의 언덕길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니, 자신의 첫 사고도 그 언덕길이었다며 놀라워하더라고요. 자신은 출근 러시아워에 그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잡고 있었는데 차가 슬슬 슬 앞으로 가더니 앞차를 콩! 박았다고요. 다행히 앞차의 주인이 별말 안 하고 보험 처리하자고 하셔서 부드럽게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고 하더라고요.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면서도 그 언덕길이 더 무섭게 느껴졌어요.


저는 올해 겨울도 그 마의 언덕길로 출근을 하게 될까요?

출근을 하게 된다면 악몽 같은 그날의 기억을 씩씩하게 이겨내고 운전을 할 수 있을까요?

정해진 답은 없지만, Light 한 답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려고요.

지금 이 순간에도 손에 힘 꽉 주고 잔뜩 긴장한 채 운전하고 있을 모든 초보운전자들을 응원해요!

아자아자! 우리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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