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뽕 Sep 26. 2021

부군은 뭐하십니까?

싱글맘, 혼자이면 안되는걸까?

백수가 되었다.

느즈막한 나이에 다시 취업전쟁에 뛰어들게 되었다.

젊은 친구들도 쉽지 않다는 전쟁터에 뛰어든 40대 초반의 경력직 여성. 사회는 차가웠다.

수많은 서류를 넣었지만 나이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면접까지 운좋게 가도 회사에선 지원금을 받을수 없는 내 나이를 부담스러워했다.


코로나로 인해 어려워진 경제 상황이 한몫 했는지, 회사는 인건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나이대의 사원을 원했다. 자존이 땅바닥을 치고 점점 낮게 부르는 내 연봉의 액수만큼 나는 우울해졌다.

적지 않은 경력이었지만 이력서는 자꾸 경력을 줄이고, 연봉을 낮게 기재하고, 연락을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날 지원한 회사에서 면접 제의가 들어왔다.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잘 하지도 않는 화장을 정성껏 하고, 옷 매무새를 몇번이나 고치며 마음을 다잡는다.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뛰었다. 회사 주차장에 도착해 차를 세우고 마지막으로 심호흡을 했다.

'괜찮아, 잘할수 있어. 잘 될거야!!'

주문처럼 자기 최면을 걸며, 회사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나의 굳은 표정을 감출 수 있는 마스크가 새삼 고마웠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회사 직원이 안내해 준 면접실에서 긴장한 채 주고 간 회사 소개 팜플렛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손바닥에서 나는 땀을 몇번이나 닦으며 물어볼지 모르는 예상 질문을 뽑아 머릿속으로 대답해 보며 앉아있었다. 잠시후 온 면접관은 표정없는 얼굴로 내 이력서를 들춰보며 형식적인 질문을 이어갔다.

대부분 경력 또는 직무에 대한 대답을 요하는 질문이어서 어려움없이 대답을 이어갔다.

자기소개서를 보던 면접관은 뜬금없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부군은 뭐하십니까?"


부군, 남의 남편을 높여부르는 말. 일을 하러 온건 나인데 나의 남편의 직업이나 위치가 중요한걸까?

부군이란 말이 참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싱글맘 3년차. 남.편.이. 없.다.

"저는 싱글맘입니다"

스쳐지나가는 미심쩍은 표정을 차라리 보지 못했다면 좋았을까?

하지만 그는 곧 객관적인 표정을 되찾고 나에게 재차 물었다.

"혼자라면 이혼입니까? 사별입니까?"

"이혼입니다."

"이혼사유는 뭐죠?"

"개인사유이므로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구구절절 나의 이혼사유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왜였을까.. 그건 아직 배가 덜고픈 나의 오기였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지않은 직장생활을 하며, 남자들이 면접을 보러올때 아내가 무엇을 하는지 물어본 기억은 없다. 하지만 결혼한 여자가 면접을 보러 가면 그들은 거침없이 물었다.

"부군은 뭘 하십니까?"

마치 나의 위치와 존재는 남편의 위치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고, 남편의 능력에 따라 채용여부가 결정지어지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왜 여성은 이런 질문을 받아야 하는 걸까?


나는 독립적인 존재다.

하지만 그 질문을 받는 순간 나는 내가 어딘가에 종속되어, 그 울타리가 망가져 어딘가로 버려진 존재처럼 느껴졌다. 반드시 종속되어 누군가의 무엇이 되어야했던 걸까?

어째서 나는 그 순간 "부군"이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에 실패해 버린 방랑자가 된 기분을 느꼈던 걸까?

얼굴에 찬물을 한바가지 뒤짚어쓴 기분은 회사를 나와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날 이후 나는 부군이 뭐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받을때마다 그저 슬픈 목소리로 사별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적어도 사별이라고 하면 왜 죽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건 차마 물어볼 수 없는 상처의 한구석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왜 나는 당당하게 이혼했음을 주장할 수 없었을까?

나의 결격사유도 아니었고 남편의 결격사유도 없었던 나의 이혼은 어느샌가 나의 마음에 주홍글씨같은 낙인이 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저 너무나 맞지 않았던 두사람이 서로 합의하에 각자의 인생을 살기로 한 결정이 그토록 큰 낙인이었을까?


면접에서 떨어진 그 회사는 내게 쓴 입맛을 다시게 했다.

물론 내가 회사와 적절히 맞는 사람이 아니었을거라고 생각한다.

단지 이혼녀이어서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면접관의 얼굴을 스쳐지나간 "부군의 부재"의 흔적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이혼을 숨겨본 일도 없고, 그렇다고 자랑삼아 떠든일도 없이 그저 내 삶에서 일어나버린 어떤 일쯤으로 생각했던 내게 처음으로 느껴진 사회의 장벽 내지는 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싱글맘이 되고, 어느때보다 열심히 살아온 시간이었다.

결혼생활 내내 겪었던 많은 것들에서 벗어난 나는 자유로웠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아이 둘을 혼자 키우는 부담도, 오롯이 나 혼자만의 몫으로 남겨진 가사노동도 경제활동도 그것에 비할 어려움은 되지 못했다.

운이 좋은건지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이 아빠는 아이들을 키우고 양육하는것에 협조적이다.

많지는 않지만 경제적 부담도 함께 했고, 간혹 내게 벅찬 일들을 돕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글맘"은 왜 혼자인가의 의문을 가지는 존재가 되었다.

당당하게 살아가도, 열심히 살아가도, 눈물을 감추고 강한 모습만 가지고 살아도 그들에게 나는 부군의 부재를 안은 의문의 존재가 되는 모양이다.


싱글맘

그저 아이를 키우며 열심히 살아가는 엄마로 보아줄수는 없는걸까?

왜 여성 가장은 혼자이면 안되는걸까?

어째서 "부군의 존재"가 나의 존재에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걸까?




이전 01화 싱글맘이 되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