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항훈련, 두 번째 이야기
#Day_142.
Capitan Seo,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어젯밤, 알바로 로자노 차리께서 심장마비로 인하여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드리기 위해 이 메모를 보냅니다.
한국에 이제 막 입항하여 어수선해진 배 안을 정비하고 있다가 받은 문자 메시지.
돌연 아득해져, 분주히 옮기던 짐들을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는 내 콜롬비아인 아버지였다.
#Day_35.
쿵. 육중한 갑문이 닫히고 순식간에 물이 차오른다.
육천 톤에 육박하는 배가 계단을 오르리라고는 쉬이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갑문을 통과하며 오른 운하 정상에는 고요한 강어귀가 보였다. 어두운 밤 중에 구불구불 이어진 파나마의 가툰호수와 강의 지류를 거슬러 올랐다.
달리는 동안 행여 뭍에 처박히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다행스럽게도 고속도로처럼 친절하게 안전히 갈 수 있는 방향들이 잘 안내되어 있었다.
이곳 파나마운하에서 30년이나 근무한 베테랑 도선사가 낯선 초짜 항해자의 긴장 가득한 어깨를 토닥였다. 함교의 수많은 근무자들이 숨죽이며 저마다의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가 보다.
“내가 긴 시간 동안 수많은 배들이 이곳을 건너는 것을 도와줬지만, 이런 배는 처음이야. 딱딱 맞아떨어지네, 덧붙여 지시할 게 없어. 보통 이쯤 되면 아주 난리가 나거든”
그가 말했다. 그의 말에 부담이 덜어지고, 조금은 어깨도 으쓱해졌다.
“저희야말로 숙련된 전문가를 만나게 되어 다행이고 영광입니다.”
마지막 갑문을 벗어나 대서양으로 들어서서 너른 바다로 나오고 나니, 그제야 긴장이 풀어져 오금이 잘근잘근 하였다. 나도 모르게 꼭 쥐고 있던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현창 옆의 함장석에 털썩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데, 씁쓸한 맛이 혀끝에 느껴지고, 인제사 창밖 멀리 보이는 육지의 반짝거리는 불빛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며 점차 선명해진다.
아, 지구의 새로운 구획에 접어들었구나!
대서양의 태양도 동쪽에서 솟아올랐다.
남국의 햇살을 정면으로 받으며 콜롬비아 까르타헤나항으로 들어서는데, 항 입구에서부터 콜롬비아 해군의 환영 요트행렬이 이어졌다.
정박할 부두 앞에는 환영 깃발이 뜨거운 바람에 힘차게 나부끼고, 그 아래에서는 군악대의 정열적인 음악에 맞춰 화려한 복장의 남녀가 탱고를 선보이고 있었다. 매우 인상적인 남국 외향인들의 환영 방식이었다.
이토록 흥겨운 환영식이라니―군대도 신명 날 수 있구나. 엄숙과 진중으로 무장된 우리들도, 어느새 격정이 들끓어 어깨 위로 넘쳐흘렀다.
환영오찬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용사 여섯 분이 참석하셨고, 그 중 왜소한 체격에 성성한 백발을 하신, 점잖은 노인 한 분이 내 맞은편에 앉으셨다.
“꼬모 에스따쓰, 세뇨르. 비엔 베니도 아 보르도!(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
밤새 외웠지만, 막상 환영인파를 앞에 두고서 생각 나는 스페인어는 그게 다였다. 콜롬비아 참전용사 대표 알바로 로자노 차리 영감님은 인심 좋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건네주셨다.
차리 옹과의 사이에 놓인 탁자 위에는 순서대로 음식이 놓였고, 앞앞에 놓인 잔에는 와인이 채워졌다. 통역관을 징검다리 삼아 어색한 인사말이 오갔다. 나는 지금의 내가 있게 해 준, 눈앞의 영웅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느릿한 스페인어로 천천히 읊조리는 그의 이야기가, 70년의 세월을 헤엄쳐 내 귀에 전해졌다.
“아마 스무 살이었을 거야. 아직도 군함에 오르던 일은 눈에 선하지. 출발하던 곳이 이곳 카르타헤나였으니까 말이야.”
스무 살의 패기 가득한 알바로 로자노 차리. 콜롬비아 호위함에 몸을 실었고, 한 달도 넘게 태평양을 가로질렀다. 이 항해의 목적지는, 전쟁이 한창이라는 낯선 나라였다.
구식 전투함이 대양을 건너 도착한 곳은 부산항. 이제 막 문을 연 이 나라는 전쟁의 광풍으로 피폐했고, 희망할 수 있는 것은 절망뿐이었다. 도시를 메운 피란민들의 삶은 치열했지만 남루하였고, 이윽고 다다른 전장에는 지독한 혼돈만이 가득했다.
그는 콜롬비아 대대 일원으로서 지금의 연천지역에서 벌어진 올드 볼디 전투에 참전을 했다. 중공군의 기습으로 시작된 연천의 고지 위 치열한 전투. 그곳에서 90여 명의 콜롬비아 전우를 잃었지만, 유엔군의 방어선 유지에 결정적 공헌을 하게 되면서 콜롬비아군의 용맹함이 재평가되었다.
“사실, 일개 병사인 내게 그런 자랑은 나중에야 생겨난 거고, 그 전투에서 수류탄 파편에 맞아 결국 난 일본의 병원으로 실려갔네. 간신히 살았어. 그 뒤로는 내 삶이 새로 시작된 한국이 내 두 번째 고향이야.”
나 만큼이나 내 나라를 아끼는 그의 말에 울컥하였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에서는 전쟁이 멈춰 서고, 우리도 여기로 돌아왔지만 말이야. 이후 삶도 편안하진 않았어.”
죽음의 땅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한국의 재건에 공로를 세우고서, 또다시 긴 항해를 견뎌가며 도착한 고국 콜롬비아. 그러나 파병 전에도 뜨겁던 내전은 아직도 타오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전투경험을 가진 한국파병군인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들끓어 가혹한 차별과 냉대가 자리 잡았다. 그렇기에 고국 땅에서 겪은 숱한 고난의 시간들이 전쟁의 PTSD 못지않게 더 큰 고통을 주었다.
“근데 말이야, 내 아들들이고, 손주들이고 간에 BTS라면 이제 사족을 못 써.”
그들의 희생으로 낳은 대한민국은 이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나라가 되었다. 콜롬비아를 비롯한 남미 어느 곳을 가도 한국식의 음악과 컨텐츠들이 넘쳐난다. 이제는 동경한다고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이 되자,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 대한 대우 역시 몰라보게 바뀌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공로와 헌신을 잊지 않고 꼬박꼬박 찾아와 안부를 물어주는 해군의 노고와 한국정부의 관심이 주위에 부러움을 산다고 자랑스러워하셨다.
“이제 와서 머릿속은 많이 흐릿하지만, 그 난리통에도 한국사람들은 참 정이 많았다는 것 하나는 내 몸이 기억해. 이렇게 찾아와 줘서, 참 고맙네”
영웅의 서사가 우리 앞의 시간을 한 움큼 덜어내었다.
차리 옹은 발끝으로 가파른 현문사다리를 조심스레 더듬었다.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붙잡고 한 발 한 발 내디뎌 함께 부두로 내려섰다. 그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께리에스 세르 미 이호? (너, 내 아들 하겠니?)”
급히 통역관에게 물어 배운 스페인어로 화답하며 안아드렸다.
“¡Sí, Papá!”
내 양팔 안에 앙상한 그의 어깨가 잡혔고, 그의 떨리는 숨결이 전해져 왔다.
뜨거운 남국에서 하는 부두의 이별은 더한층 뜨거웠다. 계속 이어져야 할 훈련일정에 우리는 아쉬운 이별을 재촉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존재나 일어난 일에 대한 원인이 되는 것을 인因이라 하고, 사물의 구성에 필수적인 조건들을 연緣이라고 한다.
한국전쟁이라는 인류사적 비극의 발생을 앞에 두고 저마다의 서사 안에서 사연을 가지고 힘을 합치고 모여들게 된 것이 ‘인’이라면, 내가 해군이 되어 훈련에 참가하고, 뜨거운 남국에서 영웅의 이야기를 듣고 손을 맞잡게 된 것이 ‘연’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새털 같이 많은 존재들 가운데 지구 반대편에서 아비와 아들로 맺어짐이 바로 ‘인연’이지 않겠는가.
겨울이 봄이 되면서 추위라는 조건이 다하면, 눈은 녹아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녹은 눈은 내(川)가 되어 흐르고 강이 되어 달음질쳐 바다에서 만난다. ‘훈련기간’이라는 조건이 이제 다하여 잠시간 헤어질 수 밖에는 없는 ‘연’이겠으나, 한번 맺은 인연은 모습을 바꾸어 상상하지 못한 형태로 다시 만나게 되는 법이다.
그렇게 내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항해에 나섰던 터였다.
다시 짐을 집어 들고 주섬주섬 정리한다. 사진들을 정돈하며 나의 콜롬비아 아버지를 생각한다. 바다가 맺어준 인연은 다시금 어떤 모습으로든 꽃을 피우게 되리라는 것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