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그 오묘함에 대하여

기러기 아빠의 회귀본능

by 서용훈

목구멍이 시키는 바에 따라 뾰족한 방안이 없어서 별거가족으로 지내고 있다. 사는 집 말고, 지금 지내는 집은 나라에서 임시로 정해준 숙소인데, 거실, 방, 욕실, 베란다가 각기 하나씩인 옛날식 아파트이다. 보통은 방 하나에 이것저것 생필품들이 오밀조밀 구성된 것을 원룸이라 칭한다만, 나는 내 지내는 집이 뭐든 다 하나씩이라 편의상 원룸이라고 부른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공간에 남자 혼자 지내는 상황이면서도 도무지 정갈하게 정돈이 되질 않는다. 애초에 어여쁜 공간은 아니었다지마는, 꼬락서니가 이 꼬라지가 되어 가는 과정이 내게는 참 알쏭달쏭한 일이므로, 시간이 지나고 보면 자못 어리둥절하다.




먼저, 일을 마치고 귀가 후 온종일 입던 옷가지를 식탁의자에 걸쳐 둘 적만 하더라도 위화감 없이 썩 잘 어울려 보이고, 컨디션에 따라서는 그리 나쁘게 보이지도 않는다. 게다가 그때그때 급히 입을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다음은, 이제는 어디를 가나 절반은 입식 인테리어이다. 예전처럼 바닥에 앉아 생활할 일이 없어져서인지, 거실 바닥 역시 널찍하니 쾌적하다. 거실 한켠에는 빨래거리를 잘 모아두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게 효율적으로 배치를 해두었다. 결단코 나는, 그 빨랫감들을 아무렇게나 던져둔 기억은 없다.


침실에는 침대가 있어서 구태여 자고 난 후에 이불을 잘 개어 이불장에 넣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다만, 책상 위에 잡다한 것들은 늘어진 감이 없지는 않으나, 수험생도 아니고, 당장은 불편하지는 않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은 주말이고 하니, 두 아들과 함께 지내는 집을 방문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오랜 떨어짐의 생활 대부분 외롭고 처량하지만, 새삼 애틋함을 낳기도 하는가 보다-하고 잠시 생각해 본다. 요새 유행하는 MBTI 성격 특성 중 'F' 성향 특유의 감상에 빠져 보는데, 아뿔싸. 이게 다 뭐니.


갑작스러운 시선의 변화가 찾아온다. 내가 맞이할 수 있는 손님 중 가장 귀한 사람들이 온다는데 이런 초라함은 여간 불손한 것이 아니다.


옷걸이는 폼으로 달아 둔 것인지, 식탁에는 앉을자리도 없게 옷이 종류별도 많기도 하다. 바닥에는 뭐가 이렇게 발바닥에 밟히고 쩍쩍 달라붙는 것이 이다지도 많은지! 빨랫감은 왜 빨래통과 이별해 있고, 침대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부랴부랴 정리를 해본다지만, 물리적으로 초기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니와, 사실 해당 분야에 있어서는, 안타깝게도 본인의 실력이 안목에 이를 만큼 따라주지 않는다. 식은땀이 흐르고, 괜히 심장이 달음질친다.

냉혹한 자기 객관화의 시간이, 아내 방문 소식과 함께 찾아온 것이다.

혼자 사는 것과 누군가를 의식하며 사는 것은 이렇게도 차이가 난다. 나 자신과 환경을 늘 제삼자의 시선으로 객관화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 될 것이고, 자칫 행복과도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적절한 조정과정 없이는 나 자신에게 얼만큼이나 관대해져 버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관대함이 나쁜 것은 아닐 테지만, 그 역시 지나치면 나태를 낳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 옛날, 퇴계 이황 선생께서는 '신독(愼獨)'을 강조하셨다 들었다. 객관화된 시각을 통해 혼자 있을 때에도 흐트러짐 없는 도덕성과 자세를 갖추라는 의미인데, 세월이 더할수록 귀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나 같은 정돈무능자, 기러기 아빠에게는 말이다.



내 아내는 관대하다. 급히 어수선을 떤 티가 역력한데도 불구하고, 다소간 투입된 노력의 흔적들을 어여쁘게 봐주는, 품이 넉넉한 사람이다.

“가뜩이나 일에 지쳐 피곤한 사람이 정리할 기력이 어디 있겠어. 옆에서 도움이 못 되니 내가 마음이 아프지. 그래도 남자 혼자 살림 치고는 깨끗한걸”

너저분함에 대한 핑계를 대신 헤아려 주시는 아량이라니, 난 얼마나 복된가!


모처럼의 주말 동안 아내는 이래저래 '정상화'에 바쁘다. 옆에 선 나는 민망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마음에 시키는 일은 즉각 반응하고 아가들과 힘껏 놀아준다.

집이 사람 사는 공간으로 다시 복원되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가족들은 다시 '사는 집'을 향해 길을 나선다.

주차장 모퉁이를 돌아가는 차에 아쉬운 마음을 담아 손은 흔들고, 나는 '지내는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을 열고 중문 앞에 서니 어딘가 휑한 느낌에 서늘한 한기까지도 느껴지는 것만 같다. 사람이 오는 것은 잘 표가 나질 않아도, 떠난 자리는 크게 남는다 했던가.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신발장 한 켠에 두고, 외투를 벗어 식탁의자에 걸어두었다. ⚓️


정돈이 힘들 때는 도피
keyword
이전 05화#Day_36. 바다가 맺어준 인연,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