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고립의 묘한 동거
하얗게 포말이 부서지는 해안에 선다.
바닷바람이 가슴 깊숙이 차갑게 스며들고,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맑고 짠내 나는 공기로 폐를 채운다. 들숨과 날숨이 한 순배 돌고 나면, 어느덧 찬 기운이 온몸을 감싸 안는다.
파도의 작은 파편들이 빚어내는 청량한 소리가 사방을 잔잔하게 진동하면, 산뜻한 음들이 두 귀를 채운다.
그 순간, 나는 세상의 끝에서 자유를 호흡하고 해방을 청해 듣는 듯하며 대자연에 홀홀 내던져진다.
안타깝지만, 나이가 조금 들면서부터는 어머니 자연이 주는 자유의 바람을 받아내는 것은 여기까지다.
찬 바람을 온전히 받아내는 것도 곤욕이거니와, 앞으로 날이 새도록 온몸 구석구석에서 흩어져 내릴 모래를 떠올린다면 어서 자리를 벗어남이 옳다고 생각한다.
모래 가득한 신발을 휘적휘적 털어내고, 몸을 웅크리며 찬 바람을 피해 통유리 창이 있는 카페로 달음질친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주문한다. 손 안의 커피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잠시 현실의 안온함으로 이끈다.
그 따뜻함을 두 손 가득 느끼면서 바라본 통창 너머의 바다는 끊임없이 대지의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고 있다. 카페 안의 평온과 창밖의 거친 바다 사이에서, 나의 마음 역시 끝없이 출렁인다.
바다는 늘상 두 가지의 얼굴을 동시에 들이민다. 광활한 바다를 마주하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무한한 해방감과 함께, 그 해방감의 끝에 놓인 보이지 않는 벽을 느낀다. 나는 이것을 ‘고립된 해방감’이라 표현한다.
바다 위 무궁무진하게 펼쳐진 길이 주는 가능성과 자유에 대한 약속은 결국, 현실 속 ‘나’라는 존재 안에 고립된 채로 남기 때문이다.
탁 트인 수평선이 눈앞에 펼쳐짐과 동시에, 내 삶의 수많은 길과 선택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교차한다. 마치 내가 걸어온 모든 길이 이 바다 앞에서 멈추어 선 것 같은 묘한 감정이 들곤 한다.
젊은 영혼은 누구나, 온 세상이 모두 내 것인 양 무한한 가능성을 꿈꾼다. 그러나 신발의 두툼한 모직을 뚫고서(!) 발가락 사이를 여행하는 모래알들은 여지없이 현실의 문턱으로 나를 끌어내린다.
“정신 차리게, 이 사람아!”
어쩌면 삶이란 것이 꾸려가면 갈수록, 꿈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모래알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내 마음은 차츰 현실의 옹성 안의 삶이 참으로 평안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꿈이란 것은 완전히 떨궈지지 않는다. 아직까지 내 가슴속에는 언젠가 온전한 해방감을 마주하고 싶다는 옹색한 꿈 하나가 남아 있다. 이 꿈은 현실 밖 어딘가에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되려, 현실과의 끊임없는 갈등과 타협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아마도, 집으로 돌아가려 자동차 시동을 거는 순간, 이내 이곳이 그리워질 테니 말이다.
짙푸른 바다가 보이고,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조금 더 뚜렷하게 마주한다. 고립과 해방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나의 갈망과 불안이 거친 파도와 어우러져 더욱 선명해진다. 이 고립된 해방감 속에서 나는 내 안의 갈망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그래서 바다는 나에게 단지 현실로부터의 도피처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과 가장 정직하게 마주하는 장소가 된다.
어쩌면 자유라는 것은 완전한 해방에 있지 않고, 오히려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고립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순간들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발끝에 걸린 모래알처럼 성가시지만, 동시에 살아있음을 끊임없이 확인시켜 주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바닷가를 떠날 때쯤이면, 나는 다시금 신발 속 모래를 털어내며 나를 기다리는 일상으로 되돌아갈 준비를 한다. 그렇지만 발걸음이 멀어질수록 나는 다시 이곳에 돌아올 날을 손꼽는다. 바다는 언제나 나의 갈망과 현실 사이를 조용히 중재하며, 내가 누구인지 가장 선명히 비춰주는 투명한 거울이다.
오늘도 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현실이라는 견고한 벽에 둘러싸여 있지만, 바다는 변함없이 나를 향해 끝없는 수평선을 펼쳐 보인다. 바로 이곳에서 나는 비로소 자유롭다. ⚓️
# 횡설수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