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물길을 비튼 순간을 보다.
역사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결정적 순간들이 있다.
급히 흐르는 격랑도 바위를 마주하면 이내 물길이 틀어져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새로운 물길을 만들어 내곤 한다.
대한해협해전 전승비는 부산 민주공원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부산 민주공원은 이름에 걸맞게도 주민들과의 친화력이 매우 좋은 공원인 듯 보였다. 내가 찾은 휴일 아침에, 공원은 이미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벤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어김없이 장기 두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앉아계셨고, 나머지 공원 공간들도 나들이 나온 가족들로 붐볐다. 덕분에 주차 난이도가 무척이나 높아서 한참을 더듬수를 놓은 후에야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주차를 하고서 가볍게 오르는 오르막길에는 울창한 침엽수림이 시원시원하게 위로 자라 있어서 상쾌함이 가득했다.
민주공원 박물관 옆 바닷가 방향으로 뻗은 공터에 대한해협해전 전승비가 전투함을 형상화하여 우뚝 솟아있었고, 잘 다듬은 조경수 사이에 아늑하게 자리한 그 모습이 자못 웅장하게도 보였다.
6.25전쟁 당시, 우리 국군 대비 압도적인 무력으로, 마치 장마에 불어난 강물 마냥 세차게 한반도를 장악해 가던 북한군의 기세는 몇 차례 중요한 변곡점을 통과해 가며 사그라져 갔다.
대한해협해전의 주역 백두산함의 포술장이었던 故 최영섭 대령은 본인의 회고록에서
6.25전쟁은 뭍에서 붙은 전쟁의 불씨를 바다에서부터 꺼나간 전쟁
이라고 정의하셨는데, 격랑의 역사를 잡아 비튼 그 첫 번째 바위가 바로 대한해협해전이었다.
변변한 전투함도 없었던 빈한한 우리 해군이, 국민성금을 모아 어렵게 구한 백두산함은 '드라마틱하게도' 전쟁발발 하루 전에 진해에 입항했다.
전방에서의 급한 소식을 전해 듣고서 다시 부랴부랴 출항하여 동해로 올라가는 그날 밤.
백두산함은, 무장병력 600 여 명을 싣고 먼바다를 돌아 부산으로 향하는 적 수송선을 식별해 내어 장쾌히 침몰시켰다. 바로 그 바다가 여기 부산항 앞의 반짝이는 물결, 대한해협이었다.
이 기적과도 같은 서사가 바로 대한해협해전의 전말이다.
적시에 막아내지 못했다면, 후에 흔히들 '낙동강방어선'이라고 불리는 전선 역시 온전하리라는 보장이 없었으리라.
그러고 보면, 역사라는 것은 여느 소설과 영화보다도 더욱 숨 막히는 극적인 면모가 있다고 하겠다.
안내판 말미에 "전범 김일성이 그의 회고록에서 '대한해협해전으로 말미암아 실패하였다.'라고 언급했다"라고 쓰인 글귀를 보니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하기 힘들었다. 바닷길을 지켜낸 백두산함 영웅들의 공적을 무엇을 덧대어 칭송할 수 있으랴.
전승비는 사면을 든든한 대리석으로 감싸 함정의 날렵한 선형을 형상화하였고, 그 위에는 해군인 내게 너무도 익숙한 마스트가 기세 좋게 하늘을 향해 솟아있었다.
전쟁당시에는 전함 간 신호를 주고받는 용도로 요긴하였다면, 승리의 표상이 된 지금에는 하늘에서 굽어보실 영웅들과 후배 해군을 연결하는 상징처럼 느껴져 가슴이 뭉클하였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경험과 감상에, 든든하게 솟은 전승비는 통영 한산도에 건립된 한산대첩기념비와도 무척 닮아있는 것 같았다.
"내가 살아있는 한, 적이 감히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吾不死, 則敵必不敢來犯矣)"하신 충무공의 기개도 느껴졌다.
전승비 주변 너른 터에서 한 아이가 인라인스케이트를 비틀비틀 타며 아버지와 손을 잡고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치열했던 전투를 추모하는 공간임과 동시에, 그 전투의 공훈으로 남은 평화를 온전히 누리는 한 가족의 행복한 한 때가 자아내는 그 풍경이, 사무치도록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우리들 일상의 행복이란 것은, 아마도 역사 속 빛나는 순간순간들이 멋지게 꿰어져 만들어진 보석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나의 아이와 후손들에게 그런 빛나는 순간들을 선물해야 하는 사명이 있음을 다시금 상기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