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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쪄대는 날씨다.
그렇기는 해도, 이른 아침 부는 바람을 마주하고 나면 드는 생각.
여름도 거진 다 저물어 간다.
절기라는 명목으로 사람이 붙여준 이름을 제외하면, 여름은 언제가 시작이고 또 언제가 끝인지 알 수 없다.
어느새 돌아보면 가을의 한복판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고요한 창 밖 정취들 속에서 여름의 기억은 아득하고 아련할 것이다.
생명. 관계의 중심에 있는 이것은, 잔인하게도 시작과 끝이 너무 명료하다.
아련하게 추억할 여지를 주지 않고, 떠날 때는 단칼에 끊기어 버린다. 대개는 예고조차 없으므로, 남은 사람들로 하여금 회한과 수심에 몸부림치도록 만들곤 한다.
자명하다고 믿었던 선입선출의 순서 또한 철저히 외면받기 일쑤이다.
너를 만나 또렷해진 나의 시야가
이젠 갈 곳을 잃어, 하릴없이 흔들리고
네 숨결에 두방망이 치던 내 심장이 드문드문 출렁일 따름이다.
잘 가거라.
어쩌면 길잖은 시간이 조글조글 구겨지어,
머잖은 그때에, 다시 부둥켜 안을 날이 오지 않겠느냐.
어쩌면 가는 걸음이 죄스러워
너는 짧은 숨들을 힘겨이 뱉어 내는지도 모르겠구나.
토닥토닥.
그럴 것 없다.
되려, 빛나는 네 젊음을 다 타오르게 풀무질하지 못한 내 탓이니.
차라리 절절하게 나를 원망하거라.
텅 비어버린 네 방.
나는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어디선가 깔깔 웃는 네 음성이 남아있질 않느냐.
산 사람은 살게 된다는 말.
나는 믿어지질 않는다.
이렇게 절절하게 저미어서는, 이게 무슨 살아있음이란 말이냐.
죽음이 흔하던 시절에야, 시간이 곧잘 약이 되어 산 사람의 삶을 이끌었던 듯하다.
삶이 당연해진 요즘 세상에, 이딴 식의 위로와 관조가 무슨 위로가 된다 말인가.
애간장이 다 녹고, 오장육부가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여름의 출구.
얼마나 다가올지 모르는 이 텁텁한 공기 속에 또 하나의 회한이 무자비하게 스며들어서, 해마다 들숨과 날숨 속에 숨어 내 폐부를 들쑤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연의 끝자락에서, 잘 보내주는 것도
아비의 몫일 터.
딸아. 내 삶아, 내 사랑아.
잘 가거라.
범람하는
너 없는 잔인한 계절의 강을 목도하며,
아비가. ⚓️
*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기생의 갑작스러운 자녀상에 삼가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남은 가족들의 평안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