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항훈련, 세 번째 이야기.
“아빠, 언제 와요?”
아직 어린 둘째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린다. 아직은 만남과 헤어짐을 잘 모르는 여섯 살 배기 남자아이다. 그래도 무려 두 달 가까운 시간을 잘 견디어 낸 것이 자못 대견하고, 한편으로는 아내를 볶아대지 않았다니 고맙다. 사실, 이런 아련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애절함은, 같은 나이의 딸을 둔 내 동료는 출항하던 그 주 주말부터 경험했더란다. 아들놈은 키워봐야 소용없다더니, 무려 며칠을 무심했던 것이니?
그래도 늦게 붙은 불이 오래간다고 했던가. 이 곰살맞은 아들의 아비에 대한 애정은 내 모든 여정이 끝마칠 때까지 묵묵하게 타올라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아들은 엄마들이 어떻게 키워내는가에 따라 좌우된다고 고쳐 말하고 싶다.
세상 좋아졌다는 것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20여 년 전, 사관생도로서 떠났던 순항훈련에서는 세상과의 단절이 극단적이었다. 기항지에서의 국제전화나 엽서 아니고서는 가족들과 손이 닿을 방도가 없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세계 곳곳에 인터넷이 한창 보급되는 중이어서 이메일도 뜨문뜨문 가능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지금은 비록 인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지만, 위성전화가 몇 대가 설치되어 이렇게 목소리라도 듣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싶다.
아들의 울먹임과 그로 인한 내 안의 울컥함과, 기술발전에 대한 놀라움이 적당히 섞이고 보니, 묘하게 속이 타서 커피 한 잔을 내려 손에 들고서 함교에 올랐다.
모처럼, 바다는 유리알 마냥 매끄럽다.
빛 공해라고는 없는 말쑥한 밤바다. 그 한가운데 보름달이 그야말로 휘영청하게 밝아, 하늘의 별들을 모조리 그 자리에서 몰아내었다. 거처를 잃은 별들은 고스란히 수면에 내려앉아 윤슬이 되어 반짝였다. 뱃머리가 가르는 물소리조차도 오늘 만큼은 숨을 죽이고 저 바스라져가는 빛 알갱이들을 바라보느라 고요하다.
대서양 위를 ‘순풍에 돛 단 듯’ 미끄러져 가는 동안 저만치 수평선 너머로 세이렌의 노래라도 들려온다면, 아마도 외로움에 몸부림하는 뱃사람으로서 여기 빛으로 수놓은 작품 위를 달려, 저 탐스런 발광체에게로 가고자 하였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한참을 넋을 놓고 달빛 아래 남몰래 속으로 넋두리를 곱씹어 보았다.
군함 안에서 다른 곳 보다 군기가 엄하게 적용되는 조종실인 함교에, 문득 그림자가 몇 개 더 보인다. 제 몫의 근무와 책임을 마치고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 할 수병 몇 명이 함교 맞은편 창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짐짓 모른 채하며 소곤소곤 주고받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지난주에, 별을 하늘에 쏟은 것 같은 은하수도 멋지더만, 달빛도 황홀하지 말입니다.”
“야, 얘한테 말 걸지 마라. 분위기 별로 안 좋데이.”
“뭔 일 있습니꺼?”
K 수병이 뭔가 안다는 듯이 말을 아끼며, 어둠 속에서 오른 손날로 본인 목 언저리를 톡톡 치며 신호를 보낸다. 언젠가 갑판장도 귀띔을 해 준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C 수병의 연애가 위태롭다고.
“뭐, 숨길 거 있습니꺼.” 하더니 C가 얘기를 이어간다.
“아까 잠깐 전화했는데, 이제 그만하자더라.”
다들 배 몰이에 집중하는 줄 알았다. 여기저기서 짧은 탄식이 터져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구 지름을 사이에 둔 가장 먼 이별장면이 처연한 달빛 아래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서서 C의 어깨를 가만히 탁탁 토닥이고 함교에서 내려와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이미 고독과 서글픔이 가득한데, 내가 더 보태줄 말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스탠드 불빛에 의지하며 캄캄한 방 안에 앉아, 급작스레 몰아닥친 외로움과 상실감이라는 감정에 대해 떠올리자, 오만가지 생각들이 걱정으로 번져갔다.
군대란 단어가 가진 이미지는 억새고 묵뚝뚝하다. 상명하복, 임전무퇴, 필사즉생, 등등... 고고하고 단단하기만 하다. 합목적적인 존재로서, 조직의 기능을 위하여 추구하는 바가 대체로 그러하기도 하다 보니, 주어진 대부분의 시간을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활용한다.
그러나, 아무리 꽁꽁 숨기고 가두려고 해도 소용없다. 어찌 됐건 사람인 까닭에 순간순간 여느 누구와 다름없이 인간적인 구간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외로움, 서글픔, 고독함. 때로는 화도 나고, 어떨 때는 눈물도 흘리곤 한다. 특히나 온 우주의 빛 조각들이 바다 위에 너울거리는 그럴 때는 말이다. 끝도 없이 침잠하는 그런 순간들이 밀물처럼 들이닥치곤 한다.
인간이 가진 심리적 한계는 분명했고, 이것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내게 닥친 새로운 과제처럼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다. 당장 내게 보이는 정서도 그 한계 앞에 무력하게 서 있는데 누구를 품는다 말인가?
또 그것과는 별개로, 인공위성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나의 경우는 가족 간의 애틋한 애정의 끈을 이어주며 다리가 되어준 반면, C에게는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 박히는 눈 달린 비수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 자못 뜨악하였다. 이 대목에서는, 어떤 방식을 취하든 간에 상황에 따라서는 서로 상반된 효과를 내기도 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결국,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방편들이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수렴되었다.
그렇다. 안전한 항해만큼이나, 나와 승조원들의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것이 중차대한 임무로 드러나게 되었다.
똑똑똑.
문을 열자, 주임원사가 서 있었다. ‘가시죠.’하는 한 마디에 별 의심 없이 따라나섰다. 승조원 식당에 다다르니, 안에서 복작복작한 대화 소리가 들린다.
“함장님 오셨습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시선이 내게로 쏠렸고, 자리 하나가 비워졌다. 식당 한켠에는 출항 전 위문품으로 받은 라면 끓이는 기계가 연신 김을 뿜고 있었고, 식탁 위에는 김밥이 산더미로 쌓여있었다.
“제가 군생활 30년 내도록 배만 탔잖습니까? 자고로, 이런 밤에는 달빛을 많이 쐬는 게 결코 좋지만은 않은 겁니다.”
전탐장의 관록이 묻어나는 말로 야식 시간이 시작되었다.
음식을 앞에 두니, 저절로 이야기 꽃이 피어났다. 이국땅에 기항하면서 김밥 재료를 힘들게 구매했는데, 출항하고 보니 김발이 없어서 난감했던 일. 자포자기하고 대강 말고 있는데, 누군가의 출항 짐에 김발이 있었는데 선견지명이 있었다느니. 조리장이 속하지 않은 팀이 만든 김밥이 더 맛있다느니....
바다 위 고립된 공간. 그 안에서 외로운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모여하는 식사. 익살맞은 농담에 여기저기 터지는 웃음소리. 군더더기 없는 동료들의 배려와 수다가 유난히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그날 밤. 나와 C를 비롯한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 마음이 단단한 무언가로 연결되는 것을 경험하였다.
함께 있다는 것. 결국, 인간이 가진 심리적 한계라는 것은 공동체 앞에 아무것도 아님을 온몸으로 깨우치는 밤이 되었고, ‘엉뚱한 과업’으로 내몰려 가던 나의 걱정들은 밤바다 위로 소산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