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추가될 사랑스러운 그의 모습들
캠퍼스 커플의 최대 장점이 뭘까? 역시 자주 본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행히 우리는 같은 과는 아니었다. -과 커플은 개인적으로 비추한다. 이유는 묻지 말라.- 인사대 바로 앞에 공대가 있었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나 공강에 자주 만나서 걷거나 커피를 마시곤 했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맞으면 같이 집도 걸어갔다. -전에도 말했듯, 우리 집과 그의 집은 굴러서 5분 거리였다.- 별 거 없고 심심했던 캠퍼스가 그로 인해 낭만적이게 보이는 것. 그게 바로 캠퍼스 커플의 묘미다.
하루는 같은 시간에 수업이 끝나 학교 후문을 통해 집으로 함께 걸어갔다. 봄이었기에 가는 길 내내 꽃들이 만발했다. 역시나 감성적인 나는 꽃 하나 지나치지 못하고, 어머 예쁘다를 연신 외치며 지나갔다. 그러다 이 사람이 어떤 대답을 할까 궁금해서 물어봤다.
“저 꽃들이 더 예뻐, 내가 더 예뻐?”
이 남자는 무뚝뚝하고 표현에 서툴렀던지라 내가 기대했던 답은 ‘당연 네가 더 예쁘지.’정도였다. 그 이상의 대답은 나오리라 예상도 못했던 그때.
그는 꽃들에게 달려가 발로 차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에이, 이것도 꽃이라고! 네가 당연히 더 예쁘지.”
나는 기대 이상의 대답과 어디서 생각한 저 센스 있는 행동에 놀라, 그리고 너무 좋아 발걸음을 멈추고 꺄르르 웃어댔다. 어느덧 나는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는 사람으로 완성되어가는 게 느껴졌다.
가끔 예상치도 못한 말로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그.
집에서 혼자 대사를 공부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되긴 하지만, 사랑한다.
-가끔 훔치고 싶은 말들을 한다. 저작권은 없으니 내가 쓰기도 한다. 감사하다.-
여자들이라면 피할 수 없는 마법. 한 달에 한 번은 정말 죽을 만큼 고통이다. 특히 나는 통증이 무척 심해서 학창시절 마법 결석이나 조퇴를 되게 많이 했다. 하루 생활이 마비될 만큼 심했기에 그를 만날 때도 얼굴에 ‘나 건드리지 마시오.’라고 적어놨으니, 그는 늘 걱정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마법이 다가오거나 마법 기간에 통증이 사라질 때쯤 단 게 엄청 당긴다. 처음엔 초콜렛, 요즘엔 꾸덕꾸덕한 브라우니나 초코케이크 같은 것들.
그럴 때면, 그는 편의점이나 빵집을 탈탈 털어서 초콜렛이 들은 과자나 빵 혹은 음료를 검정 비닐봉지에 가득 사온다. 예전엔 우리 집 현관문 앞에 걸어놓고 간 적도 있다. 그럼 나는 눈물을 살짝 흘리며 30분만에 다 먹는다. -아파도 배에 들어간다.-
또, 그는 참 다정한 게,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마법의 통증이 있을 때면 따뜻한 손으로 배를 쓰다듬어주곤 한다.
“오빠, 배가 너무 아파.”
“우리 애기, 아프지 마.‘ -닭살인가? 그러하지 않다. 보통 연인들은 다 그러하다.-
그런 달달한 말을 내뱉으며 연신 배를 아래 위로, 둥글게 둥글게, 쓰다듬어주면 조금은 나아지는 느낌이 든다. 아마 행동의 달달함도 내겐 필요한 듯하다.
인간 당 덩어리인 그를 사랑한다.
어느 선선했던 가을 밤, 친한 친구 K와 밤 11시가 넘어서 술을 마시러 갔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K는 클럽에 가자고 했다. 홍대나 강남에 있는 그런 핫한 클럽이 아니다. 소도시에 있는 클럽이란, ‘백악관’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이트클럽만 있었다. -진짜다.- 남자친구는 이미 자고 있고, 허락을 받고 싶지만 허락을 안 해줄 것 같고, 흥은 넘치니 춤은 추고 싶고. 문란한 곳은 아니니까 진짜 춤만 추고 오자! 싶어서 K와 함께 택시를 타고 백악관으로 출동했다. 그리고 K는 솔로였기 때문에, 그녀가 뭐라도 건지겠지 싶었다. -나는 건질 필요가 없었다.-
수요일 밤 나이트클럽은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었다. 정말 넓은 스테이지에 아줌마, 아저씨 두 명만 있었고 수많은 테이블은 2~3자리만 사람이 앉아있었다. K는 실망한 듯 보였지만, 이왕 왔으니 맥주도 마시고 춤이라도 추자 싶어 우리 둘은 정말 열심히 마시고, 춤을 췄다. -즐길 것도 없었다.- 재미를 못 느낀 K는 2시간 정도 있다가 그냥 가자, 하면서 실망한 모습을 나이트클럽 백악관에 잔뜩 남기고 함께 자리를 떴다.
무척 찔렸다. 난 원래 거짓말을 잘 못한다. 표정에 다 드러난다. 결국 그에게 말했다. 어제 K와 나이트클럽을 갔었다고. 하지만 사람도 없었고, 정말 맥주만 마시고 춤만 추다가 택시를 타고 안전하게 귀가했다고. 그가 어땠을까? 예상이 되는가?
세상 그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봤다. 엄청 화를 냈고, 연락도 하지 않고, 풀리지도 않았다. 혼자서 솔직하게 말하지 말고 숨길 걸 그랬나, 후회도 했지만 그게 더 우리 둘 관계에 좋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결국 나는 반성문까지 썼다.
나이트클럽에 간 것 자체가 화가 났겠지만, 그가 화를 푼 이유는 나이트클럽 백악관이 어떤 곳인지 알기 때문에 용서하지 않았을까 싶다. 정말 나이가 많은 분들이 오시는 곳에, 젊어도 30대 정도는 오지만 평일엔 우리만 있었다고 해도 믿음이 갈 만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관대한 용서에 우리는 아직까지 잘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하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그 이후로 클럽에 간 적이 없다. 나이트클럽이든 그냥 클럽이든.
더 나이가 들기 전에 핫한 클럽 가보고 싶긴 하다. 그의 승낙을 바란다. -백악관 말고요.-
커플들이라면, 그리고 여자라면, 빼놓을 수 없는 관문. 민낯 공개! 즉, 쌩얼 공개 되시겠다. 나는 민낯에 자신이 없다. 트러블은 없지만, 눈 화장이 진해서 눈이 약간 맹해진다. 원래 쌍꺼풀이 없는 눈인데 젖살이 빠지면서 라인이 생겼고, 마스카라를 -빡세게- 하면 원래 쌍꺼풀이 있던 눈처럼 된다. 반대로, 화장을 지우면 다시 맹~한 눈으로 변한다는 것. 아, 눈썹도 약간 사라진다. 일진놀이를 한참 하던 10대, 눈썹 스크래치(?) 넣는다고 밀었더니, 그 이후로 영영 자라지 않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런 내 민낯을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아니까 공개하기가 참 막막했다. 처음 그와 함께 아침을 맞이했을 때, 잠이 많은 날 깨운 건 ‘오빠보다 먼저 일어나서 씻고 화장해야 해.’라는 생각이었다. 벌떡 일어나서 얼른 씻고 나오던 그때. 오빠는 깨어있었다. -망했다. 망했어!- 결국 그는 나의 생생한 민낯을 보게 되었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책상에 있는 거울을 보며 화장을 했다.
“눈 화장 그렇게 하는구나.”
정말 순수하게 내 옆에서 무릎 꿇고 -왜 무릎을..-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민망함 + 이 사람 왜 이럴까 + 그래 이렇게 한다, 어쩔래.. 등등 여러 복잡한 감정을 동반한 눈 화장을 마쳤다. 한 번 공개하니 두 번은 쉽고, 100번은 더 쉽고, 자연스럽게 민낯으로 만났던 우리.
언제부턴가 그는 내 민낯이 더 좋다며 화장기 없는 얼굴에 연신 뽀뽀를 했다. 매일 볼이 쫀쫀하다고 주물럭대고, 매일 귀엽다며 입맞춤을 연신 해댄다. 내 친동생들은 ‘빻았다’라고 하는 내 민낯을, 그렇게 귀엽게 여겨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러움을 사랑하는 일,
반복하기 힘든 일을 습관처럼 해주는 일,
그가 늘 내게 해주는 그것들 때문에 서로 맞지 않더라도 오래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를 사랑했던 이유 일부들이 지금은 사랑하는 전부가 되는 과정을 하나씩 깨닫는 중이다.
한 가지 더 추가를 하자면, 그의 훤칠한 키와 잘생긴 얼굴이다. 일단, 처음 그에게 반한 건 훈훈한 외모와 내가 좋아하는 바지핏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니까. 정말 화가 나도 그의 잘생긴 얼굴에 사르르 풀렸던 적도 꽤 있다. -너무 외모지상주의 같은가?-
중요한 건, 멋진 외모에 착한 성품까지 있다는 것이다. 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남자 아니겠는가.
이상 끝.
@예고편
남동생만 3명 있는 털털한 내가, 이런 말도 한다고? 계산 못해서 문과간 내가, 이런 계산적인 행동을 한다고?
나도 몰랐던 여우짓! 아마 당신도 하고 있을 걸요?
<긴 연애의 속살> 5편, 10월 10일 수요일에 만나요~!
원래 이별편이었던 4편은, 오늘 저희 1600일인 관계로 사랑스러운 글로 대체했습니다.
다음에 이별편 눈물콧물+현실 공감 느껴지도록 쓸게요. 감사합니다.
*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할 예정입니다.
* 남자친구의 입장이 아닌 ‘저’의 입장에서 보고 겪은 시선입니다.
* 많은 공감과 댓글 남겨주시면 애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