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불, 서로에게 건너지 마시오.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인 ‘썸’, 우린 그 ‘썸’타는 게 짧아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성격이 어떤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물론 그런 건 만나면서 알아 가면 되는 거니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른 평범한 커플처럼 손을 잡으며 걷고, 맛있는 것을 먹고, 영화를 보고, 그렇게 데이트를 하며 우리의 연애 초반을 즐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게 눈에 띄게 보이고, 느껴졌다. 그것도 내가 정말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고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하지 못할 때. 내게도 나만의 연애 로망이 있었다. 지금도 그러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는 것.’ 그건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일 테다. 우리의 어긋남은 무엇일까?
우리 집은 술을 좋아한다. 애주가 집안. 엄청 잘 마신다고는 할 수 없지만, 평균적으론 마신다. 내 친한 친구들도 술을 좋아하고, 가족도 술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한다. -끼리끼리 친구다.- 그와 처음으로 치맥을 먹으러 갔던 날. 돈치킨에 가서 치킨 한 마리와 맥주를 시켰다. 치킨엔 당연히 맥주가 아닌가? -콜라인 사람 없겠지.- 솔직히 내겐 맥주 몇 잔은 음료수다. -많이 먹으면 당연 헤롱헤롱- 가볍게 나는 맥주 원샷을 했고, 그는 조금씩 먹었는데 조금씩 얼굴이 붉어졌다. 시간이 더 지나니 거의 터질 것만 같았다. 너무 놀라 마시지 말라고 했다.
“오빠, 술 마시지 마. 얼굴 엄청 빨개.”
“나 원래 술을 못 마셔. 부모님도 누나들도 그래.”
“그렇구나.....”
이 .....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땐 내 인맥이 좁았던 걸까?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거의 처음 마주해봤다. 특히 집안 대대로 못 마신다고 하는 사람은. -절대 그게 죄는 아니다.- 당혹스러움과 함께 이기적이게도 내게 떠오르는 건 ‘앞으로 어떡하지? 나 혼자 맨날 마셔야 하나..?’ 이런 앞날의 혼술 걱정이 가득했다.
그 이후, 남자친구랑 술을 마시지 않았다.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거다. 몸에서 안 받는 술을 강제로 먹이는 건 절대 안 되니까. -그러다 쓰러지면 어떡해.- 못 마시는 걸 알아서 섭섭할 이유는 전혀 없었지만, 난 섭섭했다. 내게 연애 로망의 첫 번째는 바로, 남자친구와 맛있는 안주를 하는 식당에서 맛있게 술을 먹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적당히 취해 기분 좋게 함께 뜨밤(?)을 보내는 것을 해 보고 싶었다. -같이 뜨거워야 좋은 거 아니겠는가?- 하지만, 난 포기했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혼자 방에서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보며 술을 마셨다. 그래서 그와 약 5년을 만난 지금까지, 남자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는 그 흥분된 분위기를 모른다. 아쉽다.
하루는 그와 함께 산책을 하다 우리 집 아파트 상가를 지나갔는데, 우리 아빠가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막걸리와 전을 파는 곳이었는데, 아빠는 우리를 보고 들어오라고 했다. 순간 내 머리에는 비상경보가 울렸다. 우리 아빠는 애주가에, 술도 안주 먹을 틈도 없이 빨리 마신다. 더해서, 남자친구가 생기면 꼭 술을 먹이고 버릇을 봐야겠다고 내게 말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죽으면 어떡하지, 라는 별 이상한 생각도 했다.- 인사와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와 내 앞엔 소주잔이 놓였다. 나야 소주 1.5병은 먹을 수 있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그는 소주 몇 잔도 잘 못 마신다. 그런 그에게 소주를 한 잔 주면서 짠- 하고, 마시니 바로 술을 따라주고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아마 그가 술을 제일 많이 마신 날이 그때가 아닐까 싶다. -감자전과 함께 소주를 푸슉푸슉- 신기하게도 얼굴은 조금 발그레했지만, 정신은 멀쩡한 듯 보였다. 남자친구가 한 병 먹었을 때,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나는 그만 집에 가겠다고 했다. 아빠는 알겠다며, 또 보자고 쿨하게 보내줬다. -합격이었던 건가?- 가게를 나오고 문을 닫자마자 그는 바로 몸을 비틀댔다. 큰 나무에 기대서 정신을 잡다 결국 내가 어깨동무해서 집으로 데려다줬다.
이불 위에 그를 눕히고 잠든 것을 보고 메모 한 장 남겨 집으로 돌아갔다. 미안함과 함께 고마움이 컸던 날. 처음이라 많이 긴장되고 못 먹는 술까지 먹어 힘들었을 텐데 잘 버텨주어 대견했다. 그런 마음이 너무 예뻐서 한참 자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밤을 걸었다. -하지만 그 이후 그 예쁜 마음을 다시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건 여전히 미해결 문제이다. 여전히가 아니라 평생일지도 모른다.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부모님의 영향과 소도시에서 자랐기에 다른 세계가 늘 궁금했던 욕망 때문에 여행을 아주 사랑한다. 시간이 나면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다녔고, 시간이 없다면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찍고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남자친구는 집돌이였다. 집에서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그냥 누워서 쉬는 것을 좋아했다. 제일 크게 절망했던 게 바로 그것이었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그럴 수 있다 치자. 그가 여행을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혼자 무척 애를 썼다. 어디를 갈 때면 여행 코스나 맛집을 다 찾고 계획했지만 사실상 내 욕심으로 인해 늘 여행지에서 싸웠다. 정말 그와의 여행을 생각하면 싸운 기억이 80%다. -아, 이건 정말 쓰면서도 슬프다..-
일단 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지 물어봤다. 멀미가 조금 심하다는 것과 그냥 집에서 쉬고 생활하는 게 더 좋다는 것. 1주년 여행으로 경주에 간 적이 있는데, 정말 그랬다. 버스에서 그 자신만의 온 에너지를 다 쏟아서 버스에서 내리면 돌아다닐 힘이 없는 것이었다. -쓰면서 눈물이..- 나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담고, 느끼고 싶은데 그게 다른 것이 무척 속상했고 정말 이별까지 생각할 정도의 문제로 발달되었던 적이 많다.
이걸로 많이 다투고, 울고, 때려 부수고 싶었던 적도 많지만 -진짜다.-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나도 집에서 영화나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고, 그와 누워서 고양이를 만지며 쉬는 시간을 즐긴다. 둘 다 직장 생활이 시작되면서 집에서 함께 하는 생활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여행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계속 꿈꾸고 갈망하니까, 여행과 여행 작가를.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같이 다니려고 노력하고, 이번 봄에는 일본에도 함께 다녀왔다. 여행 스타일이 다르니 내가 최대한 많이 양보하고 짜증이나 불만을 내지 않으려 조심스러웠던 여행이었다. -난 여행할 때 때때로 잘 되지 않으면 남자친구한테 자주 짜증을 냈다. 나도 별로다, 이건.- 그나마 다행이긴 한 부분이지만.. -여행에 대해 더 쓰자면 너무 할 말이 많고 새벽에 울고 싶지 않으니 그만 써야겠다.-
“오빠, 책 1년에 몇 권 읽어?”
“모르겠어. 전공 서적도 포함이야?”
자, 나는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다. 이미 책을 2번 내긴 했지만, 내가 정한 기준의 작가는 아니니 작가라고 말하진 않는다. -글 쓰는 사람이라고 한다.- 아무튼, 작가를 꿈꾸니 책에 관심도 많고, 시간이 없어도 일주일에 한 권은 꼭 읽으려고 노력한다. 직장을 다닐 때도 피곤하지만 출퇴근 시간엔 책을 읽었고, 지금도 어딜 갈 때면 책을 들고 다닌다. 책에는 여러 세상이 아주 많이 담겨있으니까. 매일 많은 세상을 들고 다니는 거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매우 좋다.
하지만, 그는 책을 거의 -아예- 안 읽는다. -사실 내 책도 구매했지만 읽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할 정도다.- 그래서 내가 어떤 작가를 좋아하고, 어떤 책을 읽었는데 재밌다, 등등 관련 얘기를 하면 대화가 이어지질 않았다. 학생을 앞에 두고 열심히 영어 수동태에 대해서 설명하는 과외 선생님이 된 기분이랄까. 물론 읽기는 읽었다. 작년에 나왔던 유병재-블랙코미디. 읽고 별로라며 괜히 내 책장에 꽂아두곤 튀었다. -내가 언젠간 버린다고 했는데 가져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난 로맨스, 멜로 영화. 그는 액션 영화. 그래 여기까진 이해한다. 난 음악은 새로운 것을 찾아서 듣는다. 대중적인 것도 좋아하지만 내가 발견해서 듣는 좋은 음악이 좋다. 오빠는 대중적인 것. 멜론 TOP100 전체듣기를 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사진. 사진 찍는 걸 정-말 좋아한다. 내 사진은 물론이고 풍경사진도. 아빠 친구가 사진관을 하셨던 탓에 카메라를 늘 싸게 이것저것 들여왔었다. 지금 그 카메라는 다 내 몫이 됐고. 나의 연애 로망 중 또 하나는 -로망 많아 보이지만 별 거 없다.- 커플 사진 찍기다. 멋진 여행지에서 멋진 사진을 찍는 일.
하지만 사진 찍는 걸 정말 싫어했던 그, 카메라만 대면 얼굴 가리기는 기본이요. 이리저리 피하고 카메라를 밀기도 했다. -하- 지금이야 먼저 사진 찍자고도 하고, 찍어준다고도 하지만 그땐 정말 끔찍하게 다른 우리가 싫었다.
이외에도 입맛이나 가치관 등 안 맞는 게 정말 많았다. 어쩜 사람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루는 그 고민으로 친한 친구와 술을 마시며 상담했다. 난 언제나 사람들에게 썅년이었다. 왜? 내가 독특하다고 했으니까, 내가 욕심이 많아서 많은 걸 바라는 거라고. 친구도 그랬다.
“야, 니가 유별난 거야. 솔직히 나도 책 안 읽어. 영화도 상영하는 거 보지 누가 너처럼 고전영화나 이것저것 찾아보냐? 음악도 그래. 음악도 그냥 나오는 거 듣는 거지. 좋아하는 가수 노래나. 사진도 안 찍으면 어때. 남자들 거의 그럴 걸? 술이나 여행은 어쩔 수 없잖냐. 원래 그런 사람인 걸 어떻게 바꿔. 그냥 니가 욕심 좀 줄이고 적당히 지내.”
다시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도 속이 터진다. 그렇다. 가장 친한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나의 연애적 로망이 매우 큰 것이라고. 사람이 어떻게 다 맞고, 다 똑같겠냐고. 맞추면서 지내는 거지. 그렇게 서서히 다름을 이해하기 전에, 나는 포기를 했었다. -솔직하게 말한다.- 그를 포기했었다. 술, 영화, 책, 사진 등등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포기했다. 나 혼자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영화관에 가고, 혼자 책을 읽고 감동하고, 혼자 사진을 찍고, 혼자 여행을 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연인이 있어도 함께가 아닌 것에, 그것에 나는 익숙해졌었다.
@예고편
점점 혼자가 되는 나와 그. 이게 정말 서로를 존중하는 걸까? 차라리 그냥 헤어질래.
이별이 답일까, 우리에겐.
<긴 연애의 속살> 4편, 10월 3일 수요일에 만나요~! 추석 연휴 쉴게요.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참고로 남자친구와 내 이름 하나하나씩 따면 ‘수요’커플이 된다. 그래서 수요일 연재다.-
*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할 예정입니다.
* 남자친구의 입장이 아닌 ‘저’의 입장에서 보고 겪은 시선입니다. 특히나 오늘은 제 입장으로만 쓴 내용이라 남자친구가 나쁘게 표현된 게 많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남자친구 입장에서 볼 때 제가 저렇게 나쁘게 표현될 수 있으니 이 점 참고해 주세요. 남자친구 좋은 사람입니다. -이제와서..-
* 많은 공감과 댓글 남겨주시면 애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