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대학교 학생식당에서 만난 그 사람
태어나서 몇 없는 순간인 바로 그 순간!
첫눈에 반하는 순간?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순간? 남친이 양다리 걸치는 순간?
아니다, 아니다. 바로 ‘내 머리가 길었던 순간’이다. -허무하다면 미안하다.-
엄마가 일을 하던 순간부터 내 머리는 늘 귀밑 3cm, 촌뜨기 아이처럼 다녔다. -물론 삼척 촌뜨기가 맞지만- 그러다 대학시절 한 번 길러보자! 싶어 쭉쭉 가슴 밑까지 길렀지만, 썸남과의 관계 실패로 인해 -부정하고 싶지만 맞았다.- 머리를 또 댕강 잘랐다. 하지만 다들 예쁘다고 하니 만족하며 대학교 2학년 1학기를 자알 다니고 있을 때.
인(문)사(회)대학에 다녔던 나. 바로 옆 건물이 학생식당(이하 학식)이었다. 보통 2,500원에서 4,000원 정도면 백반이나 뚝(배기)불(고기)를 먹을 수 있고 덮밥도 먹을 수 있었다. 인사대는 조금 높은 곳에 있어 음식점이 있는 곳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동기들과 학식을 먹었다.
얇은 긴팔 옷을 입으면 알맞았던 2014년 5월
여느 때처럼 동기들과 밥을 먹으러 학식으로 향했다. 뚝불을 먹으려고 줄을 섰던 나는, 줄이 꽤 길어 지겨움에 무심코 먼 출입문을 들여다봤다. 어떤 남자가 눈에 계속 계속 들어왔다. 밥 받는 줄이 점점 줄어드는 사이 흐릿한 장면을 뚫고 -시력이 안 좋음 0.2/0.5- 나에게 가까이 오는 남자를 자세히 봤다. 순간 내게 오는 줄 착각할 뻔했지만, 수저를 가지러 온 것이었다. -이때부터 김칫국 한 트럭 잘 마신 듯- 수저만 쏙 가지고 나를 힐끔 보고 -나중에 물어보니 그런 적 없단다.- 친구들과 밥 먹으러 가던 그 남자.
나도 얼른 밥을 받고 아무렇지 않게 동기들에게 가서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내 꼴을 스윽 보며 한숨을 쉬기도 하고 -거의 집 앞 슈퍼 가는 수준-, 아직 어색한 똑단발을 -바리깡으로 뒷목까지 민- 만지면서 학식 출입문을 주시했다.
그와 친구들이 물을 마시고 나가는 중인 것을 포착했다. 나는 다급하게 동기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내가 아까 밥 받다가 진짜 훈남 봤는데 지금 저기 있어. 어떻게 해?”
“뭐, 어디? 어디?”
“아, 거기 말고 저기. 단가라에 연찢청 입은 남자 보여? 빨간 캔버스화에 검정색 크로스백.”
“어 보인다. 야, 밥 그만 먹고 빨리 가서 번호 따!”
“나 그런 거 못해..”
“뭘 못해. 엄청 잘하게 생겼구만. 빨리 해. 가잖아! 야 나간다. 나간다고.”
“아 진짜 못하겠는데..”
“그럼 놓치든가~”
얼굴은 그렇게 생기지 않았지만 번호 딴 적이 태어나서 딱 한 번 -고3 4호선 지하철에서- 있던 내겐, 무리였다. 그것도 이렇게 수많은 인파 속에서 집에서 바로 나온듯한 이 차림으로. 그래도 한 번 가볼까? 싶어 늦게나마 달려 나갔지만 역시나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아쉽다고 계속 징징대던 날 보며 동기들은 ‘그러게, 좀 가서 번호 따지.’ 라고 말하며 혀를 찼다. 그래도 여기 학식에서 밥 먹었으니까 공대 아니면 인사대 아니겠냐며. 또 볼 거라고 했지만, 난 알고 싶은 건 당장 알아내야 하는 성격이라 참지 못했다. 결국 동기들과 고민하던 그때, 동기 중 한 명인 Y가 말했다.
“요즘 페이스북으로 사람 많이 찾잖아. 대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 아니면 대나무숲.”
“우리 학교도 있어?”
“있어. K대 대신 전해드립니다. 거기에 올려봐.”
“나 페이스북 비활성화 했는데..”
“풀면 되잖아.”
“안 돼. 싫어. 그건..”
“내가 대신 올려줄게. 기다려봐.”
그렇게 해서 K대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간 내용이 이것이다.
그리고 2-3일 정도 지났을까? 학교에 갔더니 동기들이 휴대폰을 들고 달려와 소리쳤다.
“수련아, 야야! 봐봐. 댓글 달렸어!”
“어디에?”
“아 어디긴! 너 훈남 찾는다는 그 글에.”
“진짜? 보자, 보자!”
“이 사람인가봐. 너도 그냥 다시 페이스북 들어와. 친구하자는데.”
급하게 페이스북 비활성화를 풀고 들어갔다. 이름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름이라 신이 났다. -신기하게 이름도 은근 보는 나- 바로 동기 2명을 태그해 ‘내가 이걸 보려고 다시 페북을 한다.’며 그에게 특별함을 부여하고 -별 짓을 다했네..- 그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전공이 뭐고, 번호가 뭐냐는 아주 짧은 대화를 나누고 계속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짧은 단발이 예쁘다고 했다. -5년 전에도, 지금도 단발 예쁘다는 이 남자-
5월 13일이었다.
참고로, 나와 남자친구의 기념일은 매년 5월 17일이다.
5월 13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사귄 건 5월 17일? 누가 먼저 어떻게 고백했을까?
저돌적인 나일까, 부끄럼 많은 그일까?
<긴 연애의 속살> 2편, 다음 주 9월 12일 수요일에 만나요~!
-참고로 남자친구와 내 이름 하나하나씩 따면 ‘수요’커플이 된다. 그래서 수요일 연재다.-
*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합니다.
* 남자친구의 입장이 아닌 ‘저’의 입장에서 보고 겪은 시선입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이 낡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N드라이브와 페이스북 등을 찾아가며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 많은 공감과 댓글 남겨주시면 애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