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도 몰랐던 숨겨왔던 나~의 여우짓
남동생만 3명 있는 난, 어렸을 때부터 내숭이나 여우짓을 어떻게 하는지 방법조차 모르고 자랐다. 그만큼 털털하고 성격이 드세고, 솔직하기 때문에 내가 남자에게 여우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 지금 남자친구 전에도 남자를 꽤 만났지만, 나의 꾸밈없는 모습을 좋아한 남자보다는 놀랍고 질린다는 이유로 날 떠났던 남자가 더 많았다. -생각해보면 그런 남자는 계속 만나도 내가 찼을 거다. 쳇.- 어느 정도 밀당은 할 줄 알아야지, 여자가! 라고 말했던 몇 남자들과 친구들. -지네는 잘하는가?- 조금은 해보자, 할 수 있겠지, 싶어서 하려고 했지만. 조금은 됐다. 그 여우짓!
여우짓 몇 개 중 하나인, 내가 생각하는 베스트 여우짓 NO.1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호감 있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신경 쓰여서 잠을 못 잔다. 겨우 잠을 자도 뒤척이거나 쪽잠을 자는 정도. 그리고 엄청 빨리 일어난다. -아침잠 진~짜 많다. 그리고 누가 깨우면 욕하는 나다.- 아래는 내 책 <있잖아, 가끔 나도 그래>의 일부인데, 실제로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때 일어나는 현상(?)을 직접 적은 것이다. -깨알 홍보. 많이 구매해주세요.-
이 글 그대로다. ‘내 잠은 그 사람의 것.’이 되는 게 현실이었다. 그래도 1교시 수업을 위해 난 일찍 일어나야 했는데, 그가 깨워주길 바랐다.
“오빠, 저 내일 깨워주세요! 꼭이요! 저 아침잠이 많아서 알람도 잘 못 들어요..”
“응. 알겠어. 내일 꼭 깨워줄게! 7시 반에 깨워주면 되려나?”
그렇게 자기 전에 그의 약속을 받고 열심히 새벽을 느꼈다. -잠을 안 잤다는 소리다.- 그 새벽 속에서 참 많은 상상을 했다. 오늘 그를 봤던, 손을 잡았던, 그리고 내일이면 또 뭘 할까, 하는 그런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한가득했다. 또, 아 그때 이렇게 말할걸!, 이렇게 행동할 걸. 하는 후회도 하면서. -이불 뻥뻥, 베개 퍽퍽 때리면서- 그러다 겨우 잠이 들고 눈을 뜨면 아침 7시나 그 전이다. 그럼 카톡으로 일어났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카톡으로 자는 척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약속한 7시 반에 전화가 오면 방금 자다 일어난 척을 하는 것!
“(목소리 잔잔하고, 약간 뭔가 낀 느낌으로) 어..네..여보세요...”
“일어났어? 학교 가야지~ 일어나. 7시 반이야!”
“허응 너무 졸려요, 오빠..” -뜬 눈으로 기다렸으면서?-
“그래도 학교 가야지~ 이따가 학교에서 점심 같이 먹을까?”
“좋아요~~”
이렇게 아침잠 미치도록 많은 나의 대박적인 연기, 여우짓! 미션 완료!
-남자친구는 지금까지 모를 거다. 이걸 보면 알겠지, 뭐..-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여자분들이 -어쩌면 남자분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여우짓.
“저 그만 먹을래요. 배불러요.”
나 역시 이랬다. 하지만, 진짜로 배가 불렀던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잠이 안 오는 현상, 그리고 포만감도 엄청 커진다. 혼자서 피자 4조각은 먹을 수 있는 내가 2조각 먹고 배부르다고 하고, 반찬만 맛있으면 밥 두 그릇도 먹을 수 있지만 반 그릇 먹고 숟가락을 놓고. 심지어 카페에 가도 그랬다. -다시 돌아간다면 열심히 먹을 것이다.-
그보다 빠르게 숟가락을 놓을 때면 그는 늘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네가 이렇게 말랐구나. 많이 먹어야지!”
그래, 어쩌면 이 ‘말랐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썸부터 연애 초반까지는 그 앞에서 소식을 했지만, 이젠 뭐 전혀 다르다.
“나 이거 먹고 싶어! 다 사줘!”
“오빠, 더 안 먹을 거야? 나 먹어도 돼? 나 먹는다?”
“오빠, 나 배가 안 차.. 더 시켜도 돼?”
“저거 맛있겠다..그치?”
가끔..-거의 매일- 이러면서 그를 정신없게 한다. 그러면 그는 늘 웃으면서 말한다.
“귀여워. 많이 먹어~ 다 먹어! 또 사줄게.”
이젠 혼자면 더 못 먹는 나. 그가 함께 있어야 행복해서 푸짐하게 먹는다.
상체는 마르고 하체는 통통한 체형인 나. 예를 들면, 상체에 맞는 바지 사이즈는 25라면 하체에 맞는 바지는 27~28이다. -진짜 예쁜 다리 가진 사람을 많이 부러워한다.- 그래서 늘 날씬한 상체를 어필하는 옷을 많이 입었는데, 쇄골이 도드라지게 보이는 상의를 자주 입었다, 그의 앞에서. -매력어필-
그는 ‘쇄골’을 대놓고 말하기도 했었다. -매력어필 성공!- 서로의 신체를 잘 몰랐던 그때 -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최대한 내가 자신 있는 부분을 드러냈다. 왼쪽 얼굴보단 오른쪽 얼굴을 더 자주 보여줬고, 한때는 피아노를 쳤던 고사리 같은 작고 하얀 손을 그의 손바닥에 놓았고, 군살 없는 얇은 허리를 보이려 딱 달라붙는 티를 입곤 그에게 안기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니 쇄골이 드러나든, 허리를 보이든, 손과 발이 작고 하얗든, 나의 예쁜 부분은 나보다 그가 더 잘 아는 현재에 이르렀으니 굳이 그런 노력을 하진 않는다. 이젠 몸 어디에 점이 있는지, 군살이 어디가 더 많은지 등 서로가 서로의 몸을 더 잘 아는 연인이 되었으니까.
그래, 이제 이정도면 나 여우짓 할 수 있는 여자라고 인정한다. -내가 나를 인정-
나는 남자친구의 ‘첫 여자친구’이다. 그래서 나도 그를 내게서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는 결코 내게 ‘첫’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남자가 아니지만, 그걸 대신할 특별한 무언가를 계속 고민했다. -첫 여자친구가 나라서 미안했다..-
썸 관계일 때,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수련아, 넌 예뻐서 남자가 많았겠다.” -이런 뉘앙스?-
그럴 때면 나는 강하게 부정하며 말했다.
“아니요. 예쁘긴요. 성격이 털털해서 남자인 친구는 좀 있지만, 저 남자 별로 못 만나봤어요.”
하지만 사실상 연애를 많이 하지 않은 거고, 연락을 하며 잠깐씩 ‘썸’ 관계였던 남자는 꽤 많았다. 외로움을 잘 느끼는 편이라 늘 사랑을 원했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짧으면 하루, 길면 한 달 정도로 공식적인 ‘연인’은 아니고 밥을 먹고 같이 영화를 보거나 드라이브를 하는 정도의 ‘썸’ 관계.
이걸 그에게 구구절절 말해서 무얼하나. 그냥 한 마디로 끝내는 게 낫지.
“저 남자 별로 못 만나봤어요.” 라고.
이젠 그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니 이런 얘기는 해도 괜찮다. -알고 있는 거겠지..?-
여우짓이라는 건, 진짜 자신을 숨기는 일을 말하는 것 같다. 상대방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의 진짜 모습. 그걸 숨기면서 상대방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이건 다 공통된 마음이지 않을까? 적당한 여우짓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숨기고 싶은 것이 자신의 꽤 큰 단점이라면. 하지만 긴 연애를 하다보면 다 들통난다. -나처럼- 많이 먹는 것, 잠을 많이 자는 것, 통통한 하체, 꽤 많은 과거의 남자들.
그런 나를 사랑해주는 이 남자가 있어서, 나는 더 이상 여우짓이 필요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스스로가 만들어가고 상대방에게 보여준다.
사랑이 어떤 형태인지는, 나와 그 사람이 만들어가고 서로에게 보인다.
긴 연애에서도 예외 없는 공식이다.
@예고편
햇수로 5년 연애한 커플도 서로에게 설렐 때가 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얼굴에서? 어떤 말에서? 아직도 내가 설레는 그의 무언가-
<긴 연애의 속살> 6편, 10월 17일 수요일에 만나요~!
-참고로 남자친구와 내 이름 하나하나씩 따면 ‘수요’커플이 된다. 그래서 수요일 연재다.-
*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할 예정입니다.
* 남자친구의 입장이 아닌 ‘저’의 입장에서 보고 겪은 시선입니다.
* 많은 공감과 댓글 남겨주시면 애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