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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련 Oct 17. 2018

06. 긴 연애에도, 내 남자에게 설렐 때

설렘만을 추구하는 당신에게

햇수로 5년, 정확히 말하면 1614일. 그러니까 4년 5개월을 만났다. 앞에서도 말했듯, 사람이든 물건이든 상황이든 쉽게 질리는 나에게 이렇게 한 사람을 오래 만난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처음엔 어깨만 스쳐도, 손만 잡아도 배가 간질거렸다. 입을 맞추고 안길 때는 심장 소리가 그 사람에게 들릴까봐 -나대는- 심장에게 적당히 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만큼 몸에서 마음껏 ‘나 지금 설레고 있다!’라고 말하던 연애 초반.


하지만, 이정도 만났으면 손을 잡는 일, 안기는 일, 입 맞추는 일, 자기라고 부르는 일은 거의 ‘우리의 생활’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그에게 설렌다. 그게 무엇인지 한 번 보자. -남자들이 보고 있다면, 가끔 여자친구에게 해주는 것을 추천.-




아직 안 잤어? 오빠한테 와.


직장을 다니는 그와 프리랜서 -라고 부르고 반백조- 일을 하는 나는, 밤낮이 완전 바뀌었다. 그는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하고, 나는 거의 그때 잔다. 그가 자는 시간에 나는 본격적으로 내 할 일을 시작한다. 그렇다보니 같이 잘 때, 그는 먼저 -코를 골며- 잠을 자고, 나는 그 코골이 소리를 bgm 삼아 할 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그래도 조명이 밝으니 그가 내일 일하는 데에 피곤할까봐 이부자리에 강제로 들곤 한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고, 고요함 속에서 들리지 않던 온갖 주변 소리를 감상한다. 왼쪽으로 눕다가, 오른쪽으로 눕다가, 정면으로 눕다가, 화장실 갔다가. 산만한 내 잠자리로 인해 그는 가끔 깨는데, 그럴 때마다 내게 가까이 다가오며 잠긴 목소리로 말한다. -나름 섹시하다.-


“아직 안 잤어? 오빠한테 와.”


일단, 이 대사에서 설레는 포인트가 3가지가 있다. 첫 번째, 왜 안 자냐고 추궁하지 않는 것. 하루 종일 일하다 와서 피곤할 텐데, 화내지 않고 잠을 못 이루는 나를 걱정한다. 그의 배려심에 반하는 나. 두 번째, ‘오빠’라는 단어를 쓰는 것. 우리는 2살 차이인 커플인데, 사실 크게 나이차가 난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서로 애칭을 부르거나 -오빠는 푸우다. 코가 크고 푸우를 닮아서다. 나는 무민이다. 화장을 지우면 무민이처럼 뭐가 사라져서 그런걸까..?- 자기, 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가 자기를 ‘오빠’라고 지칭하면 괜히 설렌다. -오빠긴 오빠구나.- 마지막, 자다 깬 잠긴 목소리. 원래 자다 깬 목소리를 들으면 괜히 섹시함과 더불어 덮치고 싶지 않은가? -변태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오빠한테 가서 품에 안겨 잠을 청하려 노력한다. -오라는데 가야지..- 사실, 더 잠을 못 자는 게 사실이지만. 고양이와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는 게 좋아서 그런 상태로 있다.




갑자기 스킨십


이젠 너무나 당연한 ‘손잡기’, 손잡는 게 질리면 ‘팔짱’이나 ‘어깨동무’ -키도 작은데 굳이 180cm인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뽀’, 헤어질 땐 ‘포옹’. 거의 습관처럼 자리 잡은 우리의 스킨십.


보통은 내가 먼저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뽀뽀를 하는 편이다. -적극적..- 그러다 아~주 가끔 그가 먼저 스킨십을 할 때가 있다. 잘 때 백허그를 하며 귀에 어떤 말을 속삭인다거나 -어떤 말은 상상에 맡기겠다.- 먼저 손을 탁 잡는다거나 만나자마자 웃으며 달려와 안아준다거나 뽀뽀를 해준다거나. -이것을 본다면 횟수를 늘려라.-


갑자기 이런 스킨십을 먼저 해준다면, 나는 진짜 심장이 콩콩 뛰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아리가또하다. -이런 걸로 고맙다니.. 뭔가 불쌍하기도 하다..-


갑자스런 kiss는 아직 못해본 것 같다. -남자친구, 해본 적이 있다면 이걸 보고 카톡을 보내라.-

그것도 은근 기대를 해본다. (?)




안 입던 슈트를? 안 하던 운전을?


그는 회사에 갈 때 늘 캐주얼하게, 편하게 간다. 슈트를 입을 필요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정말 드물게 슈트를 입을 때가 있는데, 정말 멋있다. 말하지 않았는가. 키가 크고 훤칠하며 얼굴도 잘생겼다고! 그런 비주얼에 정장을 입으면 얼마나 멋있는지 상상이 되는가? -호호-


결혼식이나 장례식, 중요한 일이 있을 땐 정장을 입는데 안 입던 옷을 입으니 심쿵한다. 그런 옷을 입고 내게 손을 흔들며 “수련아!” 라고 부르면 K.O.


또, 아버지 차를 가지고 와서 운전할 때가 있는데 그 운전하는 모습이 또 그렇게 보기 좋다. 아직 그의 차가 없고, 나는 면허마저 없기 때문에 -필기만 합격 상태- 우린 여태껏 뚜벅이로 다닌다. 그래서 여행이나 놀러갈 때 대중교통만을 이용하는데, 솔직한 마음으로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내 친구들의 남자친구는 대부분 차가 있다. -거의 연상을 만나니까- 술을 먹으면 차로 데리러 오고, 어디 멀리 가도 차로 이동하고, 드라이브 가고 싶으면 시켜주고. 이러는 게 많이 부럽다. -그래서 내가 렌트해서 다니려고 면허 실기 준비만 하면 된다!-


내가 그의 집으로 놀러갈 때가 운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지하철역에서 그의 집까지 버스나 지하철을 갈아타기 살짝 번거로운데, 그가 데리러온다. 아버지 차를 끌고 와서 좋은 음악을 틀고, 아라뱃길을 따라 잠깐 드라이브를 한다. 운전하는 그의 집중, 그의 옆모습. 참 멋있다.




오늘은 그를 만나는 날!


그와 주 2~3회 정도 만난다. 아직 인천에 살고 있는 이유는, 남자친구 때문이다. 그가 인천 사람이기에 내가 인천에 살면 더 자주 볼 수 있고, 내가 어디 가는 경우 고양이를 돌봐줄 수 있다. -서울 집값이 비싸다는 이유도 있다.- 자주 보는 우리지만, 그를 보는 날이면 괜히 신이 난다. 말을 무진장 안 듣는 아이들에게도 먼저 장난을 치거나 쉬는 시간을 더 주고,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이 행복하다. 그런 기쁨의 원천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 ‘가장 좋아하고 편안한 사람과 함께 있을 것’을 생각하니 그러는 게 아닐까 싶다.


햇수로 5년이나 만났지만, 아직도 우린 못 보는 날이면 보고 싶다고 말하고, 만나는 날엔 달려가 안기고 입을 맞춘다. 같이 이부자리에 누워서 짓궂은 장난도 치고, 오늘 있었던 일도 말하며 편안함을 느끼며 안도한다.



오래된 커플은 설렘도 없고, 재미도 없겠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길게 연애를 했을 때의 좋은 점을 전혀 모르는 거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많아 장난칠 것과 과거의 웃긴 에피소드가 쌓여 재미는 몇 배나 증가된다. 매일 설레진 못하지만, 특별한 무언가에 설렘을 느끼며 연애 초반을 회상하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설렘만 쫓는 연애는 오래가지 못한다. 설렘이 곧 사랑이라 생각하는 연애도 마찬가지다. 설렘은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시간과 익숙함이 설렘을 잡아먹지만, 또 그 콩닥콩닥함은 가끔 살아남으니 긴 연애를 미리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다.


긴 연애는 힘 있는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 과거가 서로를 힘들게 하고, 질리게 할 수 있겠지만

더 질기고 강한 연인으로 성장하게 할 수 있다는 것.


명심하길 바란다.




@예고편

오래 연애를 하면 뭐가 좋을까? 또 나쁜 점도 있겠지?

내가 직접 겪은 긴 연애의 장단점. 솔직히 두려운 것도 많다. 샅샅이 공개한다!


<긴 연애의 속살> 7편, 10월 24일 수요일에 만나요~!

-참고로 남자친구와 내 이름 하나하나씩 따면 ‘수요’커플이 된다. 그래서 수요일 연재다.-




*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할 예정입니다.

* 남자친구의 입장이 아닌 ‘저’의 입장에서 보고 겪은 시선입니다.

* 많은 공감과 댓글 남겨주시면 애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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