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다툼과 이별 속으로
난 로맨스/멜로 영화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노트북’, ‘비포시리즈’ 등이 있겠다. -10번도 넘게 봤다.- 그런 내가, 이제 웬만한 로맨스/멜로 영화는 시시해졌다. 왜? 나는 현실판 ‘로맨스/멜로/코믹 영화’를 찍고 있으니까!
영화에서 자주 봤던 커플들이 다투는 장면, 만나서 이별을 말하는 장면, 울며 소리치는 장면. 직접 몇 번 해봤던 이 다툼과 이별의 조각들을 말해본다.
우리는 정말 많이 다퉜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 어떤 커플보다 많이 다퉜다고 자랑(?)할 수 있다. -전에도 썼지만, 둘의 성향이 극과 극- 카톡이나 문자로 다투고, 전화로 싸우고, 카페에서 혹은 밥을 먹다가도 싸웠던 우리 둘.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다툼 넘버원은 바로 ‘비 오는 밤, 둘 다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울고 다투던 날’이 아닐까 싶다.
그날도 별 거 아닌 일로 그의 집에서 다퉜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나서 그의 집 밖으로 뛰쳐나갔고, 그는 나를 따라왔다. 기껏해야 5분 거리인 우리 집을, 괜히 먼 곳으로 빙빙 돌아갔다. 따라오지 말라고 소리치면서, 그는 얘기 좀 더 하자고 말하면서. 이미 밤이었고, 밤이라 비가 올 하늘인지 맑은 하늘인지 잘 구분도 안 되던 그날. 서로의 생각만을 고집하고, 풀려고 사과를 받으면 또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괜한 자존심에 혼자 화가 치밀어 그를 뒤로하고 전진만 했던 그날.
“얘기 좀 해.”
“됐어. 할 얘기 더 없다니까!”
“아... 진짜....”
“왜? 오빠도 답답하지? 내가 이러니까 싫지?”
“도대체 왜 매번 이러는 건데.”
“매번? 내가 매번 이랬어? 내가 진짜 어떤지 이해 못하지?”
걷다가 멈춰서, 소리 지르면서, 서로 마주보며 미워하면서, 그렇게 말다툼을 했다.
소방서를 지나 보건소 굴다리를 지났을 때. 그는 사과를 해도 받지 않고 고집만 부리는 내게 화가 나 뭐라고 소리친 뒤 내 앞을 빠르게 가로질러갔다. 그때, 소나기같은 비가 억수로 퍼부었고 우린 금방 옷과 속옷 그리고 몸까지 젖었다. 이 싸우는 상황과 서로 소통이 안 되는 답답함, 거기에 영화에서 보던 소나기까지. 눈물을 흘리기 충분했던 조합에 나는 엉엉 울면서 그를 뒤따라 걸어갔다. 그런 나를 돌아보지 않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앞으로만 가던 그.
그땐 그게 정말 끝일 거라고 생각했다. 왜 영화를 보면 비를 맞으며 욕하고 다투면 ‘진짜 이별’을 맞이하지 않던가. 하지만, 우린 그 영화 같은 다툼이 그저 시작에 불과했던 일 같다. 좋은 경험이었다. 비 오는 날엔 싸우지 말자. 몸이 좀 많이 아프다. 마음도 아픈데 몸까지 아프면 정말 엉망이다.
우린 이별을 꽤 자주 했는데, 그 헤어짐을 말한 사람은 열에 아홉은 나다. -미안..- 일단, 난 지난 사랑을 주제로 SNS에 글을 쓰고 있었다. -그를 만나기 전부터- 그걸로 나의 독자가 생겼고, 독립출판을 했으며 작년에도 공식 출판을 했다. 물론 주제는 이별, 그리움, 현재의 사랑, 가족, 인생 등 다양하지만 나를 -조금은- 알리게 된 글들은 모두 ‘이별’이었다. 이 사람을 만나고 있으면서 누군가를 억지로 끄집어내며 글을 쓰는 게 미안했다. 주변 사람들도 그랬다.
“너 남자친구도 있으면서 자꾸 옛 남자로 글을 쓰는 건 좀 예의가 없지 않냐? 내가 만약 네 남자친구라면 진짜 싫을 것 같아. 좀 다른 걸로 써.”
그렇다. 그도 싫어했다. 실제로 그게 싫다고 직접 말을 했으니. 하지만 내 사정으론 그것을 포기 못하는 이유가 명백히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글을 쓰고 있고, 앞으로도 글을 계속 쓰고 싶어. 이걸 이해하지 못할 거면 헤어지는 게 나아.”
참 냉정하고 나쁜 말이지만, 내 입장에선 그랬다. 나는 어떤 것을 창작해서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늘 어떤 재료가 필요했다. 지금은 우리의 긴 연애가 글감이 되어 쓰고 있지만, 그땐 예전 나의 특별한 연애가 글감이었다. 그걸 그때만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짜로 그랬다. 지금 그 예전 연애를 생각하라고 하면 못한다. 쓸 수 없을 만큼 희미하다.- 그걸 놓치기 싫은 마음에 고집을 부려 여태껏 그 주제로 글을 썼고, 그는 이해했다.
그러던 2016년 가을, 나는 서울에서 인턴 생활을 해 상경을 했던 시기였다. 우리는 상암 하늘공원 억새축제에 갔다. 커플은 참 많았고, 모든 남자들은 여자들 사진 찍어주려고, 혹은 같이 찍고 있었다. 그도 그런 노력을 했지만, 난 탐탁지 않았다. 이미 그동안 그에게 서운함이 턱끝까지 차올랐던 것이다.
‘나는 좋은 카메라도 있고, 그러니까 예쁘게 커플 사진도 찍을 수 있는데, 왜 그 사람은 사진 찍는 걸 그렇게 싫어하지?’
‘이런 축제, 조금 더 자주 다녀줬으면 좋겠는데, 꼭 내가 가고 싶다고 말해야지 끌려나온 사람처럼 겨우 나오고..’
‘아............정말... 불편하고, 짜증난다. 이제 와서 이렇게 하면 내가 좋아할 것 같아?’
그렇게 꿍해서 혼자 인상 팍 쓰고 하늘공원 밑으로 내려와서 그가 내게 말했다.
“이제 나랑 만나는 게 싫어?”
“솔직히 말하면 이젠 정인지 사랑인지 정말 모르겠어. 너무 복잡하고.. 싫다.. 지금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면 뭘 어쩌라고? 예전부터 나는 섭섭한 게 이만큼 쌓였는데... 모르겠다 정말.”
상암 홈플러스 앞 벤치에 앉아 그렇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도, 나도 꽤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울고선, 진짜 이별을 할 것 같았는데, 우린 같이 지하철을 타고 내 집으로 와 같이 잠을 잤다. 하지만 갈대 같은 내 맘은, 다음 날 2주의 시간을 달라고 그에게 말하게 했다.
2주를 못 버티고 8일 뒤, 우린 창경궁 야간개장에 가서 우리의 관계에 대해 말하기로 했다. 난 진짜 헤어지려고 그에게서 받은 커플링, 목걸이 모두 빼고 갔다. 그렇지만, 결국은, 우린 다시 만났다. 다음 날 재개봉한 영화 ‘노트북’을 함께 보고 그가 내게 말했던 내용 덕분일 테다.
‘수련아, 네가 이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봤다고 해서 같이 봤는데.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보며 울고 웃는 널 보면서 너에 대해 더 알게 되었고, 사랑에 대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어. 고마워.’
-이 내용은 페이스북에서 그냥 좋아요 800개를 받았다. 내 셀카도 200개 겨우 받을까 말까인데.-
아마 그가 처음으로 나에게 ‘시간을 달라.’라고 말했을 거다.
작년 10월, 나는 본격적으로 정규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랬고. 직장 동료나 선배들과 술자리를 자주 했는데, 나는 술을 마실 때 자제를 잘 못한다. 워낙 술도, 사람도, 분위기도 좋아해서 그걸 끊기는 게 싫어서인데 그날도 선배와 퇴근 후 술 한 잔 하고 집을 갔다. 알딸딸하게 취하니 지하철을 타고 집을 가기가 귀찮았다. 그렇다고 서울에서 인천까지 택시 타는 건 돈이 좀 아깝고. 이럴 때 남자친구가 데리러 와줬으면 참 좋겠다 ~ 생각하고 있을 때, 남자친구는 얼른 집에 들어가라고, 난 먼저 잔다고 연락이 왔다. -나 좀 데리러 와...-
“아니, 좀 데리러 와주면 안 돼? 왜 연애한지 4년이나 됐으면서 어떻게 한~번을 안 데리러 오냐. 나도 부럽다! 부럽다고! 술 마시다가 남자친구가 데리러 왔다고 가는 친구들.. 막차 끊기면 남자친구 온다고 기다리는 친구들.. 부러워.. 부럽다!!!!!!!!!!”
-아마 이렇게 말했을 거다. 자주 하는 멘트라서..- 또 쌓인 서운함을 술 마신 김에 마구 풀어댔다. 자주 그랬다, 자주 그렇고. 그는 술에 취한 내 모습이 보기 싫어서 데리러오지 않았을 텐데, 나는 한 번도 날 데리러오지 않는 그가 진심을 다해 미우니까. 서로 다른 이유로 어긋난 것을 누굴 탓하겠는가.
그 이후 그는 마음이 단단히 상해 연락도 하지 않았고, 해도 좋지 않은 소리를 하며 결국엔 나와의 관계를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출근하는 평일에 닥친 일이라 출근 내내 울었다. 옥상에서, 데스크에서, 모니터 앞에서, 지하철에서 계속 울었다. 그가 그렇게 말한 건 처음이었으니까. 이별을 준비하라고 내게 시간을 준 것 같았다. 그에게 시간을 달라는 것이 아닌, 내가 정리할 시간을 준 거였다.
주말이 돼서 카톡을 탈퇴했고, 휴대폰도 비행기모드로 바꿨다. 아무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너무 우울해서 친동생과 친한 친구와 아침까지 술을 마시다 잤다. 친동생과 같이 살 때라 맘 놓고 울지도 못했다. 알바 간 틈을 타 열심히 울었다. 머리가 띵하고 손발과 가슴이 지릿지릿 저리고, 몸에 땀이 흐를 정도로 정말 많이 울었다. 거기다 생리통까지. 최악의 몸 상태에서, 최악의 이별을 겪는 중이었다.
그렇게 그와의 이별을 생각했으면서, 막상 그 앞에 닿으니 무척 서글펐다. 마음이 다할 때까지 그와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했다. 비슷한 순간에 서로에 대해 마음이 사라지면 좋을 텐데, 이번엔 그가 마음이 끝났구나 싶어 속상하고 슬펐다.
괜히 우리가 처음 만났던 순간을 회상하고, 사진첩을 들여다보고, 캡쳐한 대화 내용을 살펴보며 나를 반성했다. 그에게 서운했던 게 그렇게나 많았는데, 그가 먼저 이별을 말하니 그런 것 따위 생각나지 않았다. 모든 이별의 책임은 ‘나’였다.
울며 전화해서 잡았고, 문자로 잡았고, 제발 만나달라고 애원했다. 그렇게 그는 우리 집으로 왔고, 내 꼴을 보고 약간 놀란 후 대화를 했다. 잘 풀려서 다행이었지만, 며칠 동안 불안감으로 살았던 건 사실이다.
이별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들이닥친다.
이외에도 이별의 순간은 참 많았다. 소설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니까. 가장 기억에 남는 이별의 순간만을 써봤다. 사실, 요즘은 남자친구와 사이가 꽤 좋아서 이별을 회상하기가 힘들어 맥주를 2병 들이키고 쓰기 시작했다. 처음 이별, 슬픈 글로 유명(?)하던 내가 이젠 더는 그런 글이 쓰기 힘들어졌으니. 우리의 연애는 꽤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다른 커플보다 취향, 취미, 가치관, 생활 패턴 등 모든 것이 달라서 서로에게 적응하고 이해를 시키고 받는 게 정말 힘들었다. 진짜 정말 너무 완전 미치도록 힘들었다. 모든 수식할 수 있는 부사를 붙어야 그 힘듦이 설명될까? 돌이켜보면 그 5년이란 시간에 웃던 날보단 울고, 고민하고, 속 터지고, 우울했던 날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일기장을 읽어도 약 일주일에 한 번은 다툼-
그렇지만 지금까지 만난 것엔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난 그걸 어떤 단어로, 문장으로 정의하진 못한다. 정의할 수 있다면 그게 사라질 때 이별하겠지 싶다. 그래서 정의할 수 없는 우리의 이 좋은 연애에 꽤 안도감을 느낀다.
이별도 잘해야 한다. 서로가 잘 잡아주고, 잘 토닥여주고, 잘 헤아려주고, 또 잘 울어야 한다. 사랑만 잘한다고 해서 긴 연애가 잘되는 건 아니다. 다투고 토라지고 헤어지는 그 악순환도 잘 해결해야 더 길게, 더 잘 간다.
그래서 우린 이제 잘 다투지 않는다. 싸워도 서로의 감정을 얘기하고, 이런 부분은 별로였다고, 다음엔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미래에 똑같이 발생할 문제까지 대비해서 대화를 나눈다.
이별을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처럼 수많은 이별에도 잘 만나는 커플이 있고, 지금은 영영 남처럼 사는 커플이 있을 테다. 그건 타이밍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
나는 이렇게 써진 일기를 보고 오늘 다시 마음을 잡았다.
‘그와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다. 우리가 더 나아질 수 있는.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나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다. 사랑을, 이별을, 연애를 더 잘해볼 수 있다고. 포기하지 말라고. 내게 기회를 주고 싶다.’
@예고편
지금까지 혼자 내 글을 보며 속도 터지고, 웃기도 하고, 욕도 했을 내 남자친구. 1:1 인터뷰를 하며 속마음을 공개! 내 남자친구의 진짜 마음은?
<긴 연애의 속살> 9편, 11월 7일 수요일에 만나요~!
-참고로 남자친구와 내 이름 하나하나씩 따면 ‘수요’커플이 된다. 그래서 수요일 연재다.-
*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할 예정입니다.
* 남자친구의 입장이 아닌 ‘저’의 입장에서 보고 겪은 시선입니다. 이별의 순간이 생각이 나지 않아, 일기장 5권을 열심히 읽으며 작성한 ‘생생한’ 글입니다.
* 많은 공감과 댓글 남겨주시면 애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