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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련 Oct 24. 2018

07. 긴 연애를 하면 좋은 것과 두려운 것

로망과 현실 사이

긴 연애를 하면 주변에서 자주 물어보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안 지겨워?”

“그래도 잘 맞나보다. 오래 연애하는 거 보면.”

“그렇게 만났으면 거의 부부 아니야?”


그럴 때마다 지겨울 때도 있지, -미안..- 완전 안 맞았는데 지금은 괜찮아, 그래 부부다.. 등등 이런 저런 반응을 내놓는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진짜’ 긴 연애의 좋은 점과 안 좋은 점. 살짝 수정하자면 두려운 것. 적당히 솔직하게 말해보자 한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이제 내 남자친구는 우리 부모님보다 더 나를 잘 알 거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스타일의 옷을 선호하는지, 노래 취향은 어떤지, 지금 기분은 어떻고 뭘 하고 싶은지 등 말투와 눈빛, 표정 그리고 행동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도 남자친구를 보면 잘 안다.- 척하면 척이란 말이 맞겠다.


즉, 서로에게 무언가를 숨기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서로를 봤을 때 이것저것 조사하지 않아도 되니까 편하다. 연애 초반엔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학교 시험공부보다 더 열심히 ‘이 사람을 공부’했다. 왜? 좋아하는 것만 해주고 싶으니까. 좋아하는 것을 나도 같이 좋아하고 싶으니까. 그렇게 5년을 공부(?)한 결과, 과장해서 말하면 나 자신보다 이 사람을 더 잘 아는 느낌이다. 아마 서로의 이력서도 써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에 대해 구석구석 알고 있다 보니, 솔직한 내 심정은 두렵다. 예전에 SNS에 이런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가끔은 나보다 더 많이 나를 알고 있어서 관계를 그만하고 싶을 때가 있어. 왜냐고? 무섭잖아. 내 눈빛에도 목소리에도 숨소리에도 나의 기분과 감정과 곧 어떤 말을 내뱉을지도 알고 있을 텐데, 무섭잖아. 그리고 공평치 못해.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들키기엔 내가 그리 당당하진 않단 말이야.’


말 그대로다. 은근히 나는 -다른 사람들도- 나 자신에 대해 둔하다. 오히려 오랫동안 나를 봐온 사람이 더 잘 안다. 나에겐 보이지 않는 표정이나 눈빛, 행동, 바뀐 말투 등이 그에겐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니까. 그래서 두렵다. 나도 무언가를 혼자 숨기고 생각하고 싶은 순간이 있으니까.


그래도 오랜 연애지만 아주 가끔씩 서로에게 새로움을 발견한다. 된장찌개를 먹을 때 두부가 많은 걸 좋아한다거나 이렇게 웃어야 진짜 웃겨서 나오는 웃음소리거나 이 표정을 하면 음식이 맛없다는 뜻이거나. 그런 소소한 발견에 가끔씩 안도하는 것은, 슬픈 걸까?




너무 편해서 거의 가족 수준?     


연애 초반엔 얼마나 겉모습에 집착하는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엄청 시간을 들여 준비를 하고 그를 만나러 간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게 미안하다. 고데기 안 한 상태로, 대충 후드만 입고 모자를 쓰고 그를 잘 만난다. -그 사람도 그렇다.- 꾸미는 것에 시간을 덜 들이고 같이 편안하게 서로 할 일을 하기도 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니 이보다 편할 수가 없다. 그 꾸미는 시간에 내가 할 일(독서나 포스팅, 음악 듣기 등)에 시간을 더할 수 있는 게 참 이득이다.


그러나 이젠 서로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가 힘들다. 아무리 고데기를 열심히 해도, 예쁜 귀걸이를 해도, 화려한 원피스를 입어도, 반짝반짝한 구두를 신어도, 어제보다 조금 더 예쁜 여자친구가 될 뿐이다. 서로의 옷장에 어떤 색깔에 어떤 패턴의 속옷이 있는지, 옷이 있는지, 양말이 있는지 다 알고 있는 오래된 연인에게선 새로움이 없다.




나는 여전히 매력이 있는 사람일까?     


아마 이게 가장 궁금하지 않을까 싶다.

‘연애 하는 동안, 다른 사람 만나고 싶지 않아?’

얼마 전에도 이 얘기를 남자친구에게 솔직한 대답으로 YES 라고 했던 쓰레기가 나다. -미안하다, 남자친구..- 쓰레기라고 하지만 쓰레기는 아니길 바란다. 일단, 이걸 쓰기 전에 내 주변에 오래된 커플인 남자여자 대상으로 10명에게 이 질문을 했더니 다들 ‘물론이지! YES! YES!'를 외쳤었다. 어떤 사람은 ‘네가 쓰레기면 나는 이미 감옥에 가야 하는데?’ 라고 했다. -이 말에 용기를 얻어 쓴다.-


나는 22살부터 그와 만났다. 그는 24살부터. 그러니까 둘의 20대 절반을 한 사람과 보낸 것이다. 어른들은 늘 말한다. 연애를 많이 해보라고. 결혼하기 전까지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람 보는 눈도 갖게 되면서 평생 살 사람을 찾게 되는 거라고. 그런 이유도 있지만, 전에도 말했다시피 남자친구와 성향이 전혀 다르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과 만나면 어떨지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저 환상일 뿐-


하지만 이젠 도무지 나에게 자신이 없다. 예전에는 ‘영어과 백진희’로 -강조- 학교에서 나름 인기도 많았었고, 누가 소개시켜달래! 라고 소개 받으라는 친구들의 말도 많았었다. 알바를 할 때도 꽤 많은 사람들이 번호도 물어봤었는데.. -증거 없지만, 사실이다.- 지금은 나이도 들었지만, 사람의 매력이 좀 사라진 느낌이랄까. 그래서 내 매력을 좀 찾고 싶다. 그리고 궁금하기도 하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이 사람이 먼저 내게 다가올까? 라고. -그땐 내가 먼저 그랬으니..- 또, 아직도 난 나로서 매력 있을까?


오랜 연애를 하면서 중요한 건, 서로의 장점을 잘 이끌어주는 일이다. 예전엔 최고의 장점이었던 어떤 부분이 익숙해지면서 이 사람의 ‘당연한 성격’이 되어 버리니까 묵은지가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묵은지도 썩는다는 걸 잊지 말라.


이렇게 싫은 소리 많이 냈지만, 그래도 몇 안 되는 좋은 점이 굉장히 크다는 거다. 두려운 부분이 좋은 부분보다 더 커지면 이별을 하는 게 맞지만, 우린 좋은 점이 훨씬 크다. 서로 자주 가는 단골 식당에 편안한 차림으로 가서 내숭 없이 마늘과 고추를 팍팍 넣어 쌈 싸먹는 것도 좋고, 내 방 원룸에서 서로의 살을 보이며 외출복을 잠옷으로 갈아입는 것도 좋다. 나의 이상한 노래 만드는 버릇이나 특이한 말투를 따라하는 그의 모습도 재밌고, 구멍 난 속옷은 버리니 마니 하며 웃으며 다투는 것도 즐겁다.


긴 시간이 우리에게 흘렀지만, 어쩌면 각자에게 흐른 거나 다름없다.

그런 각자의 시간 속에서 서로가 꽤 많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도 그러리라 기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긴 연애에선, 시간이 헛된 건 없다.



@예고편

그래서 우리는 이별을 몇 번 해봤다. 왜, 어떻게, 어디서 이별을 했는지! 눈물은 흘렸는지! 꽤 현실적인 이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우리의 이별 장면들을 공개한다.  

   

<긴 연애의 속살> 8편, 10월 31일 수요일에 만나요~!

-참고로 남자친구와 내 이름 하나하나씩 따면 ‘수요’커플이 된다. 그래서 수요일 연재다.-   

  


*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할 예정입니다.

* 남자친구의 입장이 아닌 ‘저’의 입장에서 보고 겪은 시선입니다.

* 많은 공감과 댓글 남겨주시면 애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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