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웨니 킬로그램]: 여행에 들고 갈 수 있는 현실의 최대 무게
"뚜껑을 열고 줘야 돼. 그래야 거절을 못해."
언제나 삶의 지혜가 탁월했던 승무원 동료는 무거운 짐을 들고 공항을 갈 땐 그라운드 스테프에게 줄 비타500을 준비하라고 말해줬다. 그냥 비타500 말고 뚜껑을 딴 비타500. 그냥 주는 건 소용없고, 뚜껑을 따면서 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살면서 핸드백 하나만 달랑 들고 비행기를 타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사계절 옷이 모두 든 이민 가방은 기본, 특히 두바이와 한국을 왔다 갔다 하던 때에는 집에 가져갈 짐들이 가득이었고, 돌아올 땐 엄마가 챙겨주는 반찬으로 가방은 늘 돌덩이 같았다. 이코노미석의 수화물 허용량은 보통 20kg 선. 한때 늘 스트레스였던 숫자였다. 이걸 넘지 않으려고 별짓을 다했다.
늘 무거운 짐을 들고 한국을 오갔던 우리 두바이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선 짐을 올리고 무게를 잴 때, 기계의 정면을 무릎으로 세게 밀면 무게가 줄어든다는 '설'도 돌았다. 그땐 그게 무슨 허무맹랑한 말이냐고 무시하는 척했지만 지금까지도 10kg도 안 되는 가방을 저울에 올리고는 그곳에 힘을 바짝 주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습관이란 게 그리도 무서운 거였다.
가방 무게를 줄이겠다고 해봤던 애달팠던 노력들이 떠오른다. 가볍고 부피가 큰 물건들은 가능한 수화물에 넣고, 작지만 돌덩이 같았던 노트북과 카메라 배터리, 책 등을 기내 가방에 쑤셔 넣고는, 마치 하나도 무겁지 않은 것 같은 표정으로 입국심사대 앞을 지나던 그때. 그러다 몹쓸 발연기로 인해 무게를 다시 재고, 기내 허용량도 넘어 결국은 다시 추가 수화물 비용을 지불해야 했던 다시 생각해도 참 지치고, 지리지리 했던 순간들.
이런 궁상맞은 걱정 없이 나도 좀 우아하고 편하게 비행기를 타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꼭 상황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짐이라는 건 결국 습관이었다. 몇 년짜리 해외연수가 아니어도, 몇 달 동안 작정하고 떠나는 장기여행이 아니더라도 현실에 미련이 많은 사람은 늘 한결같다. 뭔가가 없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마음. 늘 그게 문제였다. 그런 사람들의 가방은 1박 2일 여행에도 20kg은 부족하다.
비행을 할 때 비행기를 타는 일만큼 매일 하던 일이 짐을 싸고 푸는 것이었다. 아프리카를 다녀오자마자 영하 20도의 러시아에 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동료의 펑크가 나는 비행을 불시에 끌려가야 하는 '스탠바이' 달에는 어디로 갑자기 불려 가게 될지 모를 일이라 가방 안에 여름옷과 겨울옷을 반반씩 넣어 공항에 가야 했다. 그렇게 매일 짐을 싸고, 풀다 보면 가져가야 할 것과 필요 없는 것들이 명확해졌다. '어쩌면'으로 집어 든 물건은 무조건 두고 가는 것.
아마도 20kg이 초과하는 무게에 해당하는 물건들은 우리가 현실에 남겨두지 못하는 미련일 것이다. 그러므로 돌아와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현실의 것들 몽땅 두고 떠나는 편이 현명하다. 수십 년간 먹어왔던 신라면, 매일 켜는 노트북, 삼일쯤 안 해도 되는 고데기 이런 건 뭐 굳이 가져갈 필요가 있나 싶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일상에서 느껴지는 물건에 대한 집착에도 냉정 해지는 바람직한 효과가 생긴다.
시간이 지나 어떤 경지에 이르게 되자 읽고 싶었던 책도, 눈 오는 나라에서 멋지게 신으려고 벼르던 부츠도 어렵지 않게 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엄마가 볶아 준 닭발과 아빠가 엄마 몰래 넣어준 소주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진짜 소중한 게 뭔지를 서서히 알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여행은 그런 면에서 좋다. 이 지구가 반쪽이 났을 때, 갑작스러운 화재에 10초 안에 내 삶을 정리해야 할 때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순간과 (어느 정도) 비슷하니까. 속세의 사치와 쓸데없는 나의 무게를 있는 대로 줄이고 가야 하는 그런 일이기도 하므로.
그래서 여행은 평등하고,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거 저런 거 다 떠나도, 짐이 많은 여행은, 짐이 많은 인생만큼 전혀 즐겁지 않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보는 게 어떨는지.
아무것도 없어도 우린 계속해서 여행할 수 있고, 충분히 즐거울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