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시즌]: 비수기, 개이득, 할 수만 있다면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 휴가철에 여행을 떠난 기억이 많지 않다. 나이가 들고 나선 7~8월에 떠나는 여행은 왠지 부담스러웠다. 북적거리는 해수욕장이나 꽉 막힌 고속도로 같은 걸 가능한 피하고 싶었다. 정신사 나움도 물론 싫지만 무엇보다 성수기의 여행에서는 이상한 경쟁 같은 것이 느껴져서였다. 얼마 남지 않은 표를 재빨리 구매해야 했고, 좋은 방을 일찍 일찍 예약해야 했다. 명당자리를 일찍 가서 잡아야 했고, 음식이든 물건이든 그 무엇이든 긴 줄을 기다려 획득해야 했다. 여행의 모든 과정이 도전이나 고난 같았다. 나는 경쟁에 약한 사람이었다. 점수가 낮다 보니 자연히 성수기 여행에서 점점 도태될 수밖에.
대학시절에도 나는 반드시 여름에만 다녀오라는 방학기간을 두고 개강 첫 주 모든 수업을 빼먹고 제주도에 다녀오는 학생이었다. 8월이 아닌 9월에 여행을 가고 싶었다. 내가 못하는 경쟁이 없는, 그런 시절에, 그런 곳으로. 이후에도 나는 1월이나 2월에 제주도를 가장 많이 갔었다. 바람이 무지막지하게 부는 그런 시기에는 사람들도 제주도에 오지 않았다. 차를 달려 몇십 킬로를 달려도 바람과 나뿐이었다. 바람이 무지막지하게 불어도 그게 훨씬 좋았다.
다행히 20대 이후의 내 직업은 반드시 성수기에만 휴가를 떠나야 하는 류의 직업이 아니었다. 9월이나 10월, 11월, 4월 이런 뜬금없는 달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 비행기표 가격이 놀라울 만큼 싸기만 한 것도 아니지만, 늘 자리는 있었다. 호텔방이 텅텅 비기만 한 건 아니지만, 두세 번 정도 시도면 방도 구할 수 있었고.
이런 것들이 습관이 되다 보니 일상과 삶 전체가 어쩌면 오프시즌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평일에 쉬엄쉬엄 일을 하고, 남들 노는 주말에 일을 더 많이 해 온 지 꽤 됐다. 12시보다는 11시나 2시쯤 점심을 먹고, 6시보다는 조금 이른 5시나 아주 늦은 10시쯤 퇴근을 하고. 그렇게 오프시즌을 애호하다 보면 뭔가 이득이 되는 삶을 사는 기분이 든다. 경제적인 이득은 아니지만 일상 전체가 할인을 받는 듯한 느낌. 나는 분명 이 세상에 살지만, 그 안에서 작지만 평온한 작은 내 세상을 짓고, 그 속에 사는 특권을 누리는 그런 생각.
할 수 있다면, 계속 이렇게 떠나고, 이렇게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