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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bysparks Nov 15. 2019

taxi driver

[택시 드라이버]: 택시 기사님, 현지 최고의 가이드


싱가포르 가이드북을 쓰겠다고 두 달 정도 혼자 긴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가기 전까지 정리할 것들이 많아 떠나는 게 크게 실감나지 않았는데 막상 늦은 밤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고 나와 싱가포르의 습한 공기를 마시는 순간, 많은 생각이 밀려오면서 혼자라는 게 무서워졌다. 이미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고, 그 시간에 탈 수 있늘 거라곤 택시가 유일했다. 뭐 딱히 알아보고 갔던 교통수단도 없었지만.

두려움을 안고 공항 택시정류소로 가서 택시를 잡았다. 젠틀한 외모의 택시 기사 아저씨는 무릎을 이용해 무거운 내 캐리어를 능숙하게 차 트렁크에 실었다. 힘이 세서 할 수 있는 게 아닌 프로페셔널함이 느껴졌다. 이런 걸 베테랑이라고 하는 거구나. 문득 싱가포르에 대한 신뢰가 생겼던 것 같다. 택시 안은 쾌적했고, 영어가 공용어인 나라인지라 아저씨의 영어조차 깔끔했다. 아저씨는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내내,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싱가포르는 밤에 혼자 택시를 타도 걱정할 일이 없다"거나

"우리는 항상 미터기를 켜고 가므로 사기를 치는 사람도 없다"는 말로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반은 자기 나라 자랑 같았지만(싱가포르 사람들은 나라부심이 대단하다), 이 야심한 시간에 혼자 타국에 온 외국인을 위한 배려가 느껴져 따뜻했다. 늦은 새벽이었고, 작은 호스텔이라 그 시간에는 숙소 문도 잠겨 있었다. 거리는 음침할 정도는 아니어도 사람 한 명 없이 조용했다. 그때 트렁크를 내려주고 그냥 갈 것 같던(가도 되었던) 기사 아저씨가 호스텔 문 앞으로 걸어가더니 문을 쾅쾅 두드렸다.

"손님이 왔으니 일어나라"고 소리까지 쳐주면서.

내가 겪은 싱가포르의 첫 인상이었다.


생각해보면 외국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만나는 그 나라 사람은 택시기사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택시에 대한 인상은 그 여행 전체를 좌우하기도 한다.    




메트로가 개통한 뒤 교통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내가 두바이를 떠나고 몇일 후 매트로가 개통했다) 두바이에 살았던  2009년 부터 2010년 사이는 택시가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두바이는 거의 모든 게 새 것인 도시라 택시도 대부분 새 차인 건 좋았지만, 그것 빼곤 (다) 문제였다. 두바이의 택시기사는 대부분 파키스탄 사람들이었다.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강렬하고 치명적인 '향기'가 간혹 문제가 되곤 했다. 비행을 하면 수많은 인종을 통해 어지간한 체취에는 단련이 되어있지만 좁은 실내에서 맡는 그들의 향은 결코 익숙해지기 어려운 무언가였다.

늘 아이디어가 기발했던 한 친구가 '인중에 향수를 뿌리라'는 팁을 발견해내긴 했지만 활용도가 높진 않았다.

게다가 도로 사정이 엉망인 두바이에선 기사들의 운전도 대부분 난폭했고, 두바이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택시를 이동해 움직였기 때문에 퇴근시간에 택시를 잡는 건 기적에 가까웠다. 조금의 과장도 보태지 않고, 길에 서서 택시를 잡는 데 한 시간은 기본, 그 긴 시간 후에도 택시를 못 잡고 아무데도 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때 택시는 갑 중의 갑이었다. 승차거부는 당연히 이해할 수 있었고, 서주기만 해도, 가주기만 해도, 강렬한 냄새를 뿜어도 참을 수 있었다.  신기하고 재밌는 건 그때 막 생기기 시작한 여성 운전사가 운전하는 택시는 핑크색었다. 예쁘고 귀여웠다. 차도르를 두르고 운전하는 여성 전용 택시를 타는 건 늦은 오후 사막 투어를 하는 것 만큼 두바이의 매력을 경험할 수 있는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뉴욕의 옐로우캡에는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에 쇠기둥이 놓여있다. 그래서인지 옐로우캡을 타면 뭔가 삭막한 기분이었다. 미터기의 요금도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더 빨리 올라가는 기분이 들고. 무엇보다 뉴욕의 택시는 뉴욕의 메트로 만큼 더럽다. 뉴욕은 마치 그런 더러움을 하나의 아이콘으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게 옐로우캡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섹스앤더시티>의 캐리는 언제나 근사한 손짓으로 맨하튼에서 택시를 잡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뉴요커가 쉽게 되는 게 아니지. 그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중국의 택시는 언어가 가장 문제였다. 청도에서 늦은 저녁 택시를 타고 '호텔'에 가자고 했더니 기사님은 전혀 알아 듣지 못했다. 어설픈  중국어 발음으로 영어로 된 호텔 이름을 말해도 마찬가지. 그때부터 구글 번역기를 켜고, 물, 호텔, 비싸요, 내려요 등의 간단한 단어들을 익혀서 연습한 뒤 발음하거나 중국어를 준비해서 보여주곤 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기사님이 나의 말을 알아들으면, 그때부턴 언제나 목적지까지 거침 없이 달렸다. 길을 헤메는 사람도, 꼼수를 부려 돈을 더 받으려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호텔이나 워터 같은 간단한 영어를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 내가 나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런 짧은 말조차 준비하지 않은 건 게으른 일이니까. 한국에 와서 뭐든 영어로 물으려는 서양인들을 욕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 나도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 뒤로는 무조건 중국어로 연습해 택시를 타기 시작했는데, 여행이 훨씬 역동적이었다. 고등학교때 제2외국어로 배웠던 중국어의 사성을 연습해보는 기회도 되었고. 무엇보다 어설픈 내 발음을 좋아해주고, 웃어주는 중국인 아저씨들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에서의 택시 탑승은 일단 기싸움이 시작이다. 우리의 긴장된 대화는 '어디까지 씌어볼까'와 '나는 초자가 아니야'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맑고 순수한 눈망울을 가진 택시기사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도 안되는 가격을 부르면, 나도 준비해간 가격으로 대응한다. 재밌는 건 대부분 수긍한다는 사실인데, 알면서도 이런 가격을 부르고 또 부르는 이들의 끊임없는 시도가 정말 대다나다. 이런 정신으로 올림픽에 나오면 좋을 텐데, 동남아 사람들은  몸을 사용하는 정신력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열 번 중 두 세 번은 누군가 그들의 바가지에 걸리겠지. 알고보면 나도 이겼다 믿었지만 현지 가격의 두 세배를 내고 낸 적도 많겠지.

사실 알면서도 매번의 흥정과 싸움이 귀찮아 그냥 가는 경우도 많다. 그게 여행이고, 다 추억이니까 라고 위안하고, 포기하면서.



그래도 현지에서 택시 만큼 좋은 가이드가 없다. 알아보지 못한 것들이 있거나, 알고도 확인할 게 있다면 택시 기사에게 묻기를 추천한다. 늘 혼자 운전하시는 택시 아저씨들은 알고보면 외롭고 심심해서, 지역에 관한 궁슴한 걸 물어보면 동네사부터 시작해, 아저씨의 막내 딸 사위 이름까지 알게 된다. 아프리카 여행을 할 때도, 심지어 말이 안 통하는 중국 기사아저씨들도,  부산이나 대구, 제주도로 여행을 갈 때도 택시 아저씨들의 마음은 대부분 한결 같았다.


한 도시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택시가 있다. 뉴욕에는 옐로우캡이 있고, 런던에는 중후한 블랙캡이 있다. 두바이의 택시는 색이 좀 다양한 편이지만 바탕은 모두 사막을 상징하는 베이지색이다. 태국의 택시는 다른 동남아 택시들처럼 어여쁜 총천연색의 향연이다. 이렇게 도시를 대표하는 택시가 있다는 건 부러운 일이다. 서울의 황토 택시도 언젠가 우리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는 날이 올까.


가난한 배낭객들은 때로 무조건 택시를 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자체를 불편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다양한 탈 거리를 경험하는 건 그 도시를 알게 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다.


택시도 그 좋은 것 중 하나.




tip. 몇몇 도시의 택시기본요금(2016년 2월 기준, 기본 거리 1km 와 3km 혼재되어 있음)  

Bangkok 35 baht  

Dubai 10.00 dirham

London 2.40 pound

New York 2.50 dollar

Paris 2.20 euro

Seoul 3,000 won

Singapore 3.00 singapore dollar


택시비 계산은 여기에서  http://www.worldtaxime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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