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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생애 5화

타운홀 미팅

by 정욱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으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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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홀 미팅


회사 전체가 아닌 본부 차원의 타운홀 미팅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팅은 공지가 있고 나서 이틀 뒤 진행되었다. 경영진 차원에서도 사람들의 불안을 빨리 잠재워야겠다는 계산이 선 것 같았다. 누가 봐도 도전적인 목표에 아니, 말이 좋아 도전적인 목표였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정과 목표였다. 2개월 만에 100여 개국에 대응하는 서비스 론칭이라니. 사람들은 모두 말도 안 되는 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타운홀 미팅 당일, 회사에 출근한 나는 일찌감치 노트북을 챙겨 들고 타운홀 미팅이 열릴 라운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활성화된 상황이었지만, 타운홀 미팅이라는 이벤트 탓이었는지 꽤 많은 직원들이 출근해 있었다. 특히 평소 회사에서 보기 드물었던 개발자들이 사내에 많이 보이는 걸로 보아 그들도 이 '이벤트'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듯했다. 미팅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마케팅실 승환 님이 나를 발견하고는 내 옆으로 와 앉으며 말했다. "자, 어떤 개소리를 하는지 한 번 보자고요."


미팅엔 공지되었던 대로 최성호 대표가 직접 올라와 CPO와 함께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평소 회사에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몇 번 보았을 뿐, 오늘처럼 전면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한 그였기에 경영진의 조급함이랄까, 현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간략하게 만든 PPT를 통해 대표는 왜 글로벌 진출을 생각했는지, 우리가 글로벌 서비스를 론칭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최대표는 최근 다녀왔다는 싱가포르 출장을 얘기하며 '어떤'투자자들이 우리가 농민을 100만 명 가까이 앱에 모았다는 사실에 감탄했다느니, 그래서 투자자들이 우리 서비스에 아주 많은 관심을 보였다느니 등의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경영진들이 늘 우리를 설득할 때면 하곤 하던, 농업이라는 분야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업무를 해야 하는 실무진 입장에선 잘 와닿지 않는 뜬구름 잡는 얘기라는 게 문제였지만. 돌려 말했지만 결국은 국내에서 투자를 받을 만큼 받았기 때문에 글로벌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글로벌 서비스를 론칭하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발표가 끝나자 장내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분명 긍정의 침묵은 아니었다. "글로벌 호구 한 마리 잡겠단 얘기구만."대표가 발표를 끝내자 옆에 앉아 있었던 승환 님이 작게 속삭였다.


그러나 이번 타운홀의 하이라이트는 글로벌 서비스의 가능성이 아니라 항간에 떠도는 회사에 대한 소문을 가감 없이 듣겠다던 임원진들의 Q&A 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보낸 질문들의 절반 이상은 회사의 재무건전성에 대한 의구심들이었다. 특히 의견개진에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였던 개발자 조직에선 아예 대놓고 대표에게 독한 질문들을 날리기 시작했다.


- 글로벌 국가는 어떻게 되나요? 2개월이면 현실 가능한 스케줄이 아닌데요.

- 중간에 설 연휴도 끼어있는데, 개발자들은 이 일정이면 설 연휴에도 론칭 막바지 일정 소화하느라 정신없을 것 같습니다.

- 솔직히 가능성이 적어 보이는 스케줄입니다. 6개월 정도는 주셔야 가능해요.

- 회사에 요즘 돈이 없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성호님, 진짜라면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진출이 정답일까요?

- 회사가 이러다 어려워지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협업할 땐 그렇게나 비협조적이었던 저들이, 아군일 땐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최대표가 참다못해 한 마디를 날렸다. "네 여러분, 무슨 말씀하시려는지 잘 알겠습니다. 저희 회사가 요즘 돈이 없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는 것 저도 알고 있는데요, 회사에는 지금 현재 사용 가능한 자금이 약 1,000억 정도 있습니다." 잠시 한숨 돌린 그가 곧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어디서 그런 소문이 생겼는지는 모르겠는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회사 망하는 거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리고 일정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싱가포르의 사례처럼, 글로벌 투자자들이 우리 회사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고, 가능성에 투자하려고 할 때 선점효과를 노리기 위해 빠르게 진출해야 합니다."


"회사 망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경영진의 정면돌파격 대답이었다. 내 머릿속의 물음표나, 앞선 사람들의 질문 따위는 무용지물이 되는 단호한 말들이었다. 사람들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대표가 나서서 저렇게 강한 의지를 보이는데, 거기 대고 어떻게 못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대표가 돈도 넉넉하다고 하지 않는가? 개발자들이 아무리 회사에서 가장 목소리가 크다고 한들, 그들도 직원에 불과했다. 경영진의 강한 의지 앞에서 우리는 조악하게라도 앱을 론칭하라는 목표에 맞춰 움직여줄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서 딱 한 문장이 떠올랐다.


'조졌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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