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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Oct 11. 2023

회사의 생애 5화

타운홀 미팅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으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타운홀 미팅


회사 전체가 아닌 본부 차원의 타운홀 미팅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팅은 공지가 있고 나서 이틀 뒤 진행되었다. 경영진 차원에서도 사람들의 불안을 빨리 잠재워야겠다는 계산이 선 것 같았다. 누가 봐도 도전적인 목표에 아니, 말이 좋아 도전적인 목표였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정과 목표였다. 2개월 만에 100여 개국에 대응하는 서비스 론칭이라니. 사람들은 모두 말도 안 되는 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타운홀 미팅 당일, 회사에 출근한 나는 일찌감치 노트북을 챙겨 들고 타운홀 미팅이 열릴 라운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활성화된 상황이었지만, 타운홀 미팅이라는 이벤트 탓이었는지 꽤 많은 직원들이 출근해 있었다. 특히 평소 회사에서 보기 드물었던 개발자들이 사내에 많이 보이는 걸로 보아 그들도 이 '이벤트'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듯했다. 미팅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마케팅실 승환 님이 나를 발견하고는 내 옆으로 와 앉으며 말했다. "자, 어떤 개소리를 하는지 한 번 보자고요."


미팅엔 공지되었던 대로 최성호 대표가 직접 올라와 CPO와 함께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평소 회사에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몇 번 보았을 뿐, 오늘처럼 전면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한 그였기에 경영진의 조급함이랄까, 현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간략하게 만든 PPT를 통해 대표는 왜 글로벌 진출을 생각했는지, 우리가 글로벌 서비스를 론칭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최대표는 최근 다녀왔다는 싱가포르 출장을 얘기하며 '어떤'투자자들이 우리가 농민을 100만 명 가까이 앱에 모았다는 사실에 감탄했다느니, 그래서 투자자들이 우리 서비스에 아주 많은 관심을 보였다느니 등의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경영진들이 늘 우리를 설득할 때면 하곤 하던, 농업이라는 분야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업무를 해야 하는 실무진 입장에선 잘 와닿지 않는 뜬구름 잡는 얘기라는 게 문제였지만. 돌려 말했지만 결국은 국내에서 투자를 받을 만큼 받았기 때문에 글로벌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글로벌 서비스를 론칭하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발표가 끝나자 장내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분명 긍정의 침묵은 아니었다. "글로벌 호구 한 마리 잡겠단 얘기구만."대표가 발표를 끝내자 옆에 앉아 있었던 승환 님이 작게 속삭였다.


그러나 이번 타운홀의 하이라이트는 글로벌 서비스의 가능성이 아니라 항간에 떠도는 회사에 대한 소문을 가감 없이 듣겠다던 임원진들의 Q&A 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보낸 질문들의 절반 이상은 회사의 재무건전성에 대한 의구심들이었다. 특히 의견개진에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였던 개발자 조직에선 아예 대놓고 대표에게 독한 질문들을 날리기 시작했다.


- 글로벌 국가는 어떻게 되나요? 2개월이면 현실 가능한 스케줄이 아닌데요.

- 중간에 설 연휴도 끼어있는데, 개발자들은 이 일정이면 설 연휴에도 론칭 막바지 일정 소화하느라 정신없을 것 같습니다.

- 솔직히 가능성이 적어 보이는 스케줄입니다. 6개월 정도는 주셔야 가능해요.

- 회사에 요즘 돈이 없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성호님, 진짜라면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진출이 정답일까요?

- 회사가 이러다 어려워지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협업할 땐 그렇게나 비협조적이었던 저들이, 아군일 땐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최대표가 참다못해 한 마디를 날렸다. "네 여러분, 무슨 말씀하시려는지 잘 알겠습니다. 저희 회사가 요즘 돈이 없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는 것 저도 알고 있는데요, 회사에는 지금 현재 사용 가능한 자금이 약 1,000억 정도 있습니다." 잠시 한숨 돌린 그가 곧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어디서 그런 소문이 생겼는지는 모르겠는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회사 망하는 거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리고 일정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싱가포르의 사례처럼, 글로벌 투자자들이 우리 회사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고, 가능성에 투자하려고 할 때 선점효과를 노리기 위해 빠르게 진출해야 합니다."


"회사 망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경영진의 정면돌파격 대답이었다. 내 머릿속의 물음표나, 앞선 사람들의 질문 따위는 무용지물이 되는 단호한 말들이었다. 사람들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대표가 나서서 저렇게 강한 의지를 보이는데, 거기 대고 어떻게 못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대표가 돈도 넉넉하다고 하지 않는가? 개발자들이 아무리 회사에서 가장 목소리가 크다고 한들, 그들도 직원에 불과했다. 경영진의 강한 의지 앞에서 우리는 조악하게라도 앱을 론칭하라는 목표에 맞춰 움직여줄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서 딱 한 문장이 떠올랐다.


'조졌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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