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를 심는 사람들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으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뒤숭숭한 이야기를 들은 술자리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연휴 동안은 잠깐이나마 회사에 대한 생각을 접어둘 수 있었으나, 연휴가 끝나갈수록 혜인 님의 폭탄발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연휴가 끝나고 출근하면 글로벌 출시 계획을 뒤엎는다는 공지가 나올 것인가. 그런 마음으로 연휴 막바지를 보냈다. 그러나 연휴가 끝나고 회사에 돌아오고 나서도 이렇다 할 공지는 없었고, 회사는 언제 연휴가 있었냐는 듯이 금세 정신없이 돌아갔다. 나는 늘 회사원들의 이런 '스위치 온'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만 연휴가 끝나고 나면 적응이 안 되는 걸까? 아니면 다들 나와 같은 심정인데 그들도 옆에서 아무런 내색 없이 일하는 나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 걸까? 그럼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뭐 그런 판옵티콘의 사회인 걸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예정되었던 앱 론칭일은 설 연휴가 끝나고 바로 2주 뒤였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개발자들은 막바지 오류를 잡느라 여념이 없었고, 콘텐츠실에선 채워지지 않은 국가의 콘텐츠를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론칭 후에도 계속해서 콘텐츠를 채워 넣어야 했기 때문에 론칭 이후의 스케줄까지도 정리해야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팀장을 맡았던 지민 님은 어느샌가 그 자리에 적응해서, 이제는 제법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나가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마치 그녀가 처음부터 팀장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일사불란한 그림 속에서 딱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마케팅실이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론칭 후 어떻게 사용자를 끌어들일지, 우리 앱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릴지 이제는 슬슬 고민해야 할 시점이었는데도 이렇다 할 말 한마디가 없었다. 연휴 직전에 혜인 님과 승환 님에게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눈치조차 채지 못했을 테지만, 그날 혜인 님에게 들었던 '좀비 앱'이란 말 한마디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지금이라도 중단하는 게 나은 걸까? 모두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건 론칭이 중단되든 론칭되고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유령 앱이 되든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되돌아가기엔 너무 늦은 길이었다. 차라리 론칭해서 우리의 노력을 한 줄짜리 포트폴리오로라도 남기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앱은 무사히 론칭되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 심사를 통과했다는 개발팀의 공지가 올라왔고, 그 아래엔 요란한 이모지와 함께 축하하는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차마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어서 모니터 속에서 펼쳐지는 그 시끄러운 광경을 무력하게 보고만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 불안한 마음 탓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혜인 님과 승환 님의 걱정이 기우일 가능성에 대해 점쳐보고 있었다. 아니, 그렇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회사 내부에서는 우리가 글로벌 진출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동안 점점 더 흉흉한 소문들이 돌고 있었다. 새로 본부장을 뽑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사업 본부가 통째로 사라질 것이라는 소식부터, 회사의 버닝 레이트가 채 두 달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익명 게시판과 회사 내 다른 직원들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익명 게시판은 언제나 사람들의 핫플레이스였고, 모두가 아닌 척하면서 그 게시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침마다 슬랙에선 전날 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진위 여부를 논하는 대화가 마치 아침 인사처럼 이어지곤 했다. 출근길 웃으면서 인사했던 동료가 익명 게시판에선 날이 선 소리와 유언비어를 스스럼없이 적어 내려 간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한편으로 섬찟해지곤 했다.
왁자지껄한 글로벌 앱 론칭 이후, 앱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용자 지표 추이는 역시나 평행한 그래프를 유지하고 있었고, 앱에 올라오는 글이라곤 오직 우리가 각국언어로 번역해서 올리는 날씨나 농사 정보에 대한 글들 뿐이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공허한 외침이었다. 한차례 시끌벅적한 운동회가 열린 뒤 모두가 떠나가버린 운동장에서 혼자 열심히 이어달리기를 하는 계주 주자의 심정이 된 기분이었다. 이 앱이 과연 어떤 쓸모가 있는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한 마디 축하인사를 남긴 뒤 잠잠해진 경영진의 지시를 기다리며 우리는 묵묵히 콘텐츠를 올릴 뿐이었다. 베트남과 프랑스 등의 정부 소속 농업기관의 홈페이지를, 저 먼 곳의 필리핀 농부가 찍어 올리는 유튜브 영상을 혹시 누가 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열심히 수집했다. 함께 조사를 진행하는 다양한 국가 출신의 직원들에게는 차마 회사의 상황을 설명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한국어보다 모국어가 더 편한 그들에게 지금 이 사태를 설명할만한 적확한 언어를 찾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들어온 지 차마 한 달 밖에 안된 직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생각도 있었다.
모두가 조용한 무력감에 빠져 있은지 일주일 정도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우리... 무슨 사과나무 심는 것 같지 않아요? 내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뭐 그런... 이렇게 황량한 앱에 누가 본다고 계속 콘텐츠를 올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회사 라운지에서 함께 점심을 먹던 해린 님이 말했다.
해린 님 말이 맞았다. 저 외국인 친구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알 것이었다. 지금 본인이 얼마나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지. 거기에 생각이 와닿자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도대체 연수님은 어쩌자고 무턱대고 외국인 직원들을 이렇게나 많이 뽑았는가. 인턴, 계약직이라는 신분의 직원은 이런 식으로 뽑아도 되는 걸까. 적어도 책임은 져야 할 게 아닌가. 저들의 비자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심산인가. CPO와 함께 시시덕거리고 있는 그녀의 면상에 주먹을 한 대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곤 이 프로젝트의 팀장을 맡았던 지민 님의 얼굴이 웃는지 우는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스타트업도 회사는 회사였다. 아무리 우리가 수평적인 문화를 부르짖어도, 그 사이에서 누군가는 약자였고 누군가는 강자였다. 계급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언제든 뒤바뀔 수 있었다.
뒤숭숭한 날들이 계속되는 와중에, 결국 그날의 공지가 슬랙 채널에 올라왔다. 구조조정과 희망퇴직이라는, 우리네 아버지들에게나 해당된다고 생각했던 단어가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온 날이었다.
@here 다음 주 화요일 CPO 지은님께서 Q&A세션을 갖고 앞으로 변동되는 회사의 방향성에 대해 설명해 주실 예정입니다! 다들 오프라인으로 출근해서 미팅 참석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