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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차의 긍정적 효과

대류열전달

by 글치

“온도차를 줄이자”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여기서 ‘온도차’는 다분히 비유적입니다. 실제 기온이나 실내 온도를 의미하진 않지만, 사람 간의 거리, 생각의 차이, 정보의 간극을 설명하는 데에 자주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 비유는 실제 온도 조절의 어려움과 닮아 있습니다.


지하철의 냉방 온도처럼

지하철 냉방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같은 온도에서도 누군가는 덥고, 또 다른 누군가는 춥다고 느낍니다. 민원이 끊이지 않는 이유죠. 만약 좌석마다 냉방 컨트롤러가 있다면 해결될까요? 오히려 고장과 혼란을 야기할 것입니다. 결국 다수의 만족을 위한 평균 온도에 수렴하게 되고, 이는 누구에게도 완전히 만족스럽지 않은 온도가 됩니다.


그러다 나온 해법이 바로 ‘약냉방차’입니다. 모두를 한 기준으로 맞추려 하기보다는, 극단적인 소수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한 것이죠. 사람마다 느끼는 온도의 차이는 그렇게 조율되고는 합니다.


조직 내 온도차

조직에서도 우리는 ‘온도차’를 마주합니다. 특히 정보나 커뮤니케이션, 감정의 전달에서 온도차가 자주 발생합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일하지 않고, 같은 속도로 이해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온도차를 없애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때로는 이 차이가 움직임을 만들고, 에너지를 흐르게 하는 동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열역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온도차가 있어야 열이 이동합니다. 그래야 대류가 일어나고, 정체된 공기를 바꿀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조직도 일정한 온도차가 있어야 새로운 흐름, 역동성이 생깁니다. 모두가 동일한 생각과 기준을 가지는 조직은 겉으론 조화로워 보여도 쉽게 정체되기 마련입니다. 적당한 온도차는 건강한 조직을 위한 전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정보의 온도차 vs 기대의 다양성

정보 전달에도 온도차는 존재합니다. 누군가는 시의적인 뉴스나 알림 위주의 짧은 정보를 선호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분석이 들어간 깊이 있는 콘텐츠를 원하고, 다른 누군가는 정돈된 요약형 리포트를 원합니다. 같은 정보라도 받아들이는 방식과 기대하는 수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형태로 정보를 전달하려 하면, 결국 누구도 만족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정보의 온도차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정보를 다양하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지하철의 약냉방차처럼, 다양한 수준의 정보 채널을 구성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사람들이 정보로 인해 소외되거나, 과잉되거나 하지 않게 됩니다.


기술직과 영업직의 온도차

온도차는 부서 간에도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특히 기술직군과 영업직군 사이에서 종종 확인됩니다. 기술팀은 제품의 스펙과 성능, 구조적 완성도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영업팀은 시장의 반응, 고객의 니즈, 경쟁 제품과의 비교에서 가치를 판단합니다. 동일한 제품을 두고도, 기술팀은 “아직 완성도가 부족하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 반면, 영업팀은 “이미 경쟁력 충분하다”라고 느끼기도 합니다.


이 차이는 충돌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서로를 자극하는 온도차로 기능할 수도 있습니다. 영업이 현장의 피드백을 기술에 전달하고, 기술이 한 발 앞선 개발 목표를 세우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죠. 중요한 건 이 차이를 인지하고, 그 온도차를 조율할 수 있는 소통 구조와 인식입니다.


소통의 핵심은 적정한 간극

소통에 있어서도 ‘온도차’는 곧 ‘간극’입니다. 간극이 완전히 사라지면 ‘일방성’이 되고, 간극이 너무 크면 ‘단절’이 됩니다. 적정한 거리와 간격, 그리고 그 차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있어야 진정한 소통이 이뤄집니다.

어떤 차이는 줄일 수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차이가 환기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새로운 바람이 불고, 공기가 흐르고, 에너지가 전달되게 하는 촉매가 됩니다.


직장에서 온도차를 건강하게 활용하는 3가지 제안

“약냉방차”를 조직에도 도입하자

모두를 위한 일률적인 프로세스보다는, 유연한 선택지를 제공해 보세요. 예를 들어 보고서를 간단 요약본 + 분석 상세본 두 버전으로 나누어 제공하는 식입니다. 소수의 니즈를 존중하는 공간이 생기면 조직 전체의 불만도 줄어듭니다.


“불편함”을 대화의 출발점으로 삼기

제품 이해나 프로젝트 방향에서 의견차가 생길 때, 그 간극을 줄이려 애쓰기보다는 왜 그런 차이가 발생했는지를 함께 탐색하는 ‘피드백 워크숍’ 등을 열어보세요. 온도차는 때론 훌륭한 혁신의 시작점이 됩니다.


“소통 스타일 매뉴얼” 만들기

구성원 간 정보의 온도차를 줄이려면, 서로 어떤 형식과 빈도를 선호하는지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메일보다 슬랙이 익숙한 사람, 정리된 문서보다 구두 보고가 편한 사람. 이런 ‘온도 설정표’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의사소통의 마찰이 크게 줄어듭니다.


온도차는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것을 무조건 없애려 하기보다, 서로를 흐르게 하고 변화하게 만드는 숨결로 여긴다면, 조직은 더 건강하게 숨 쉴 수 있을 겁니다.

당신과 나 사이의 그 간극, 어쩌면 가장 따뜻한 가능성일지 모릅니다.


Value the difference in perspective
-Stephen R. Covey




https://ko.wikipedia.org/wiki/대류열_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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