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연락이 왔다.
“책, 계속 보고 계시죠? 그렇다면… 오늘 밤, 골목 서점 앞에서.”
짧은 문장이었지만, 나는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메시지를 지운 뒤에도 손끝이 살짝 떨린다는 것을 느꼈다. 뭔가 오랜만의 감각이었다.
밤이 되자, 조심스럽게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서점 옆 골목 깊숙한 곳, 오래된 철문이 삐걱이며 열렸다. 낡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사용되지 않는 듯한 지하실이 드러났다. 한때 구립 도서관이었을 공간이었다. 도서관 건물은 소규모 데이터센터로 바뀐 지 오래였고, 그 시절 쓰던 집기들은 지하실로 내려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무너진 책장과 종이더미 사이, 몇 개의 촛불과 작은 조명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 불빛 아래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노트에 손으로 시를 적고 있었고, 또 다른 이는 낡은 기타로 거친 선율을 튕겼다. 아이와 함께 작은 공을 주고받는 사람도 있었다. 그 모습은 서툴고 불완전했지만, 모두의 표정은 살아 있었다.
나는 멈춰 서서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단말기는 여기 두고 들어가셔요.”
나는 주머니 속을 더듬어 단말기를 꺼냈다. 손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묘한 불안이 스쳤다.
“여기서 뭘 만드나요?”
내 질문에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만들고 싶은 걸 만들어요. 우린 잘 만들려고 모인 게 아니에요.”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며 덧붙였다.
“그저 만드는 것을 잊지 않으려는 겁니다. AI는 흉내 낼 수 있지만, 대신할 수 없는 게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녀의 말은 단순했지만, 묘하게 확신에 차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책을 펼쳤다. 표지에 적힌 제목 **‘외삽’**은 묘한 매력을 뿜어내는 단어였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 경계 너머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만 나는 믿는다. 바깥에도 세계가 있다고. 우리가 보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마치 나를 향한 메시지 같았다. 책 속 인물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메아리쳤다. 경계 밖을 상상하는 용기. 그것이 이 습작이 전하려는 것 같았다.
책장을 넘길수록 글쓴이의 흔들림이 그대로 전해졌다. 서툰 문장은 어딘가 모자라고, 묘사는 종종 삐걱거렸지만, 그 불완전함 때문에 오히려 진짜 숨결이 느껴졌다.
그때, 방 안의 조명이 미세하게 깜빡였다.
“오늘은 식사를 하지 않으셨군요. 평소와 다른 패턴입니다. 혹시 건강상의 문제가 있으신가요?”
AI의 음성이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책을 가슴께로 끌어안았다.
조명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사용자님의 안정을 위해, 일정 조정과 진단을 권장합니다. 이상 행동이 감지되었습니다.”
내 심장은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단순한 안내음성일뿐인데, 어쩐지 들키고 있다는 감각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나는 이불을 더 깊이 뒤집어쓰고 책장을 덮었다. 방 안 가득 퍼지는 AI의 목소리를 들으며, 손끝으로 책의 종이를 쓸어 보았다.
거친 종이결이 지금까지의 하루보다 더 진짜 같았다.
그 순간, 아주 조심스레, 나도 무언가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