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외삽 02화

창작자들

by 글치

“저. 안녕하세요. 궁금해서 그런데. 이런 건… 어디서?”

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책은 정식인쇄는 아닌 것 같은 모양새와 거친 제본으로, 마치 누군가의 습작을 급히 묶어낸 듯했다. 여러 사람이 돌려 읽은 듯한 낡은 겉표지를 갖고 있었고, 고급스러운 인쇄용지도 아니었다.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2079년에 이런 책을 보는 건 쉽지 않죠.”


“네 아무래도 이런 식의 출판은 이제는 없지 않나요? “


지금은 더 이상 인간이 직접 창작하지 않는다. 문학, 음악, 미술, 스포츠까지… 다 AI가 창작하고 인간은 소비한다. 그녀는 책장을 조심스럽게 넘기며 말했다.

“맞아요. 2050년 이후로 인간의 손끝에서 나온 건 거의 없죠. 더 완벽하고 더 감각적인 결과물을 AI가 만들어주니까요. 하지만…”

그녀는 살짝 책을 내 쪽으로 밀며 속삭였다.

“이건 다릅니다. AI가 알 수 없는 서사예요. 학습 데이터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


나는 손끝으로 거친 종이를 훑으며, 뜻밖의 설렘을 느꼈다.

“대체 누가 이런 걸 만들죠?”

여자는 잠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눈을 잠시 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요.”


골목 끝 서점에서 산 책을 안고 골목을 빠져나오자, 2079년의 도시는 빛과 소음으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을 AI에 맡긴 채, 편리함 속에서 길들여져 있었다. 출퇴근 경로는 최적화되어 단 한 번의 선택조차 필요 없었고, 맞춤 음악과 영상이 하루를 채웠다. 주문과 배달, 여가와 쇼핑까지 모두 AI가 추천하고 결정했다. 인간은 효율적인 소비의 주체로 존재한다. 어떤 작은 불편도 곧 해결되곤 한다.

인류의 모든 데이터가 학습 완료된 2050년. 그 이후, 인간의 창작은 멈췄다. AI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문학을 쓰고, 더 감각적인 음악을 만들며, 완벽한 미술과 스포츠까지 선보였다. 누구도 휴머노이드의 놀라운 플레이를 능가할 수 없었고, 인간은 더 이상 창작자가 아니라 관객이었다.

하지만 내 손에 쥔 이 책은 달랐다. 삐뚤삐뚤한 활자, 투박한 제본, 서툰 문장 하나하나에 살아 있는 숨결이 느껴졌다. AI가 학습하지 않은 이야기, 계산할 수 없는 인간의 흔적.

아마도 그들이 이곳에서 책을 들춰본 것은 외진 곳이라 스캔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었을 거다. 어느 곳에나 설치된 CCTV가 모든 행위를 스캔하고, 텍스트와 데이터를 AI에게 전송하는 세상이다. AI의 시선이 닿지 않는 틈에서 그 보물들을 열어 보고 싶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왔다. 반가운 멘트가 나를 맞이한다. 설정해 둔 모든 세팅이 가동된다. 내가 샤워하러 들어갈 즘 샤워실의 세팅도 준비된다. 나는 오늘은 평소의 패턴과 다르게 움직였다. AI가 틀어놓은 음악을 껐고, 자동 배달로 놓여 있는 식사는 그대로 두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지만,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 대충 싱크대에서 손을 씻고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 책을 꺼내 들었다. 손끝으로 책을 훑으며, 나는 알 수 없는 감각이 밀려왔다. 왠지 이 책은, 스캔되지 않아야 할 바로 그 창작자들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지 냄새가 다시 코끝을 스쳤다. 습작 같은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내 마음도 서서히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외삽(外揷)’

주어진 구간 밖에서도 가치를 찾아내고, 그 너머를 상상하는 것.


나는 숨을 고르듯 첫 페이지를 펼쳤다.

AI가 결코 추천하지 않았고, 계산할 수도 없는, 내 선택으로 마주한 새로운 세계가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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