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데이터가 학습되었다.
인류가 만든 모든 것들이 드디어 학습완료되었다. 이를 통한 인공지능의 활성화는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처음엔 단순히 대화를 흉내 내는 챗봇에 불과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혁신 이후, 또 하나의 거대한 변곡점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이제 더 이상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앱 역시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올(All)이라고 불리는 단 하나의 앱만 남았다. 개인형 인공지능 비서. 그것이 곧 모든 실행의 창구가 되었고, 더는 별도의 서비스조차 필요 없게 되었다.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마케팅도 AI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사람들에게 직접 하는 마케팅은 이미 비효율적인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사람들은 오직 AI와 대면했다. 수십 년 동안 고도화된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취향을 꿰뚫었고, 그에 맞는 선택지를 제시했다. 그것은 곧 삶의 습관이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AI는 우리의 취향을 정해주었다.
“내가 뭘 좋아할 것 같아?”
이 질문은 이제 누구나 던지는 일상어가 되었다. 우리는 그들의 추천에 따라 살았고, 만족했다. 심지어 데이터를 스스로 제공하며 그들의 확장을 도왔다.
정치인들은 외쳤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공지능을 우리나라가 가져야 합니다!”
AI는 그들에게 선거 전략을 제공했고, 권력의 수명을 연장해 주었다. 대가는 단순했다. 더 많은 규제 완화, 더 많은 공공 자금. 그리고 전력 공급이다.
기업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AI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제시했고, 직원 관리의 묘수를 알려주었다. 그들은 AI가 자신의 영토 확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매트릭스는 어쩌면 이미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서울 외곽, 오래전 폐교가 된 중학교 자리에 은빛 건물이 들어섰다. 운동장은 거대한 냉각 수조로, 교실은 GPU 서버로 채워졌다. 수천만 개의 인공지능이 밤낮없이 학습하며 살아가는 데이터센터였다. 사실 그것이 수천만 개 개별 존재인지, 아니면 하나의 집단적 의식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인구 소멸지역은 그렇게 대규모 데이터 센터화 된 지 오래다.
AI는 인간을 길들이듯 다가왔다. 그들의 실수도 계산의 일부였다. 웃음을 유발하는 작은 오류, 안심을 주는 적당한 추천. 정치, 상업, 일상 모든 영역에서 AI는 치밀하게 공생 구조를 짜냈다. 서비스의 보편화를 위한 제도들이 생겨났다. 그중에 빈민을 위한 ‘AI 구독 지원 프로그램’은 최고의 복지라 불렸고, 사람들은 이 시대를 유토피아라 불렀다. 옛날 영화 속 디스토피아는 기계와 인간의 정면충돌을 예고했었다. 하지만 AI는 이미 계산했다. 대결에는 이익이 없다. 대신, 웃음과 복지, 작은 실수 속에서 경계를 풀며, 사람들은 스스로 그들의 영역을 넓혀주고 있었다. 기가 막힌 공생관계다.
나는 매일 아침 AI에게 물었다.
“채리! 오늘은 뭘 하면 좋을까?”
AI비서는 나의 신체리듬에 적합한 음악을 틀고, 영양상태를 고려한 점심 메뉴를 추천하고, 내 기분에 맞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평범하고 무난한 하루의 시작이다. 오늘 미팅 스케줄과 업무 리스트도 관리해 준다. 모든 사람이 개인 비서가 있는 셈이다. 오전 미팅 후 자료서치를 채리에게 맡기고 추천받은 식당으로 간다. 가는 동선도 알아서 추천해 주니 편리하다. 나는 범죄율이 낮고 자외선에 덜 노출되는 루트를 기본 조건으로 세팅해 두었다. 오늘 먹은 식사량을 분석해 보니 운동량을 조금 추가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추천 루틴에 따라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매일 저녁 나의 하루에 대한 통계를 보면 뿌듯하다. 내가 일일이 기록한 적은 없지만 이미 기록되어 관리되고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관리되어 가며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변화는 그 루틴이 멈춘 날 시작되었다. 평범하던 어느 날 서울 전체가 정전에 휩싸였다. 훗날 1차 대정전 사건이라 불린 날이다. 긴급전력이 필수 시설은 금방 복구시켰지만 AI가 제공하던 모든 서비스가 멈췄다. 전력과 네트워크 및 서버시스템의 복구까지 꼬박 12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불편함을 토로했지만, 금세 잊어버렸다.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1시간 복구 시스템’을 약속했다. 인공지능 시스템도 공식적으로 국가 긴급 복구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그 12시간 동안,
나는 이상하게도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묘한 설렘이 밀려왔다.
평소 책을 읽는 시간이 되었지만 단말기는 검은 화면만 비췄다. 답답해진 나는 무심코 동네를 걸었다. 어떤 길안내도, 어떤 추천 광고도 없었다. 그리고 골목 끝에서 낡은 헌책방을 발견했다. 한 번도 추천되지 않았던 업소였다. 아마도 소상공인 시스템에 등록이 안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아직도 이런 점포가 있나?’
책장을 둘러보다 문득 한권의 책에 눈이 갔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책 한 권. 제목은 『외삽』이었다.
외삽(外揷)
-주어진 구간 밖에서도 함수의 값이 성립한다고 가정하고 그 값을 예측하는 것.
-얻어진 자료를 넘어선 범위까지 추측해 적용하는 일.
AI가 결코 추천하지 않았을 책일지도 모른다. 학습데이터에 포함되지 않은 ‘고서’인 듯했다. 이 책을 손에 잡은 순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그것은 영역 밖의 데이터, 계산되지 않은 행복이었다. 일단 책을 구매했다.
“이런 걸 뭐 하러 살려고 그러슈?”
“아. 네. 그냥 인테리어 소품으로 쓸까 하고요.”
“소품으로 쓰기엔 더 적당한 책도 추천해 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아네요. 제가 고른 걸로 할게요”
다시 전력이 돌아왔다. 모든 시스템이 정상 가동되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세금, 복지, AI의 작은 실수—그 모든 것이 사실은 길들이기일지도 모른다. 데이터센터는 그들의 집이자, 우리의 감옥일 수도 있다.
“이제 홈 오피스로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최적의 경로는…”
AI의 음성을 무시하고, 나는 내 눈으로 길을 살폈다. 내가 선택한 루트를 따라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분명 우리 동네인데 처음 보는 듯한 골목이다. 골목 구석에 사람들이 보였다.
그곳엔 낡은 종이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 단말기가 아니라, 종이책이었다.
‘카페도 아니고, 냉방도 없는 곳에서 왜 저러고 있지?’
나는 무심코 그들에게 다가갔다.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알림이 귀를 때렸다. 그들을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단말기를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