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외삽 04화

책 속의 섬

by 글치

오늘도 집 안은 완벽하다.


조명은 내 맥박에 맞춰 은은히 조절되고, 공기는 체온의 미묘한 변화를 따라 움직인다. 오늘따라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는 게 문제다.


책을 펼쳤다. 여러 이야기가 옴니버스처럼 이어져 있었지만, 특정한 단어가 반복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바깥으로 가다 보면, 바다를 건너, 섬… 섬… 섬…’


그 섬이 정말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곧 스스로를 설득했다.

‘아니지, 아마 비유적인 표현일 거야. 어떤 추상적인 장소 같은…’


페이지를 이어가자 글은 점점 더 지침에 가까워졌다.


“하루 동안 단말기를 두고 나가라.

자동배달을 끊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라.

네가 선택하지 않는 삶을 거부하라.

그 길 끝에, 섬이 있다.”


무심코 숨을 고르며 글자들을 따라 읽었다.

마치 책이 내게 직접 명령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따라 해보고 싶어졌다.


마지막 장에는 거칠게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바다 위 작은 섬.

설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프라인의 도시, 창작자들의 도피처.”


그림은 지도처럼 보였다.


“사용자님, 맥박이 평소보다 높습니다. 혹시 불안 증세를 느끼시나요?”

AI의 목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대답하지 않고 싱크대로 향했다.

직접 음식을 만들어 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엌은 텅 비어 있었다.

칼도, 냄비도, 재료도… 아무것도.


나는 단말기에 말했다.

“내가 직접 요리를 해보고 싶어.”


잠시의 정적 뒤, AI가 답했다.

“요리 체험 모듈을 원하시나요? 가상 환경에서 조리 과정을 안전하게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아니, 실제로. 직접 하고 싶어.”


잠깐의 침묵.

이윽고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실제 조리 도구는 안전 규정상 사용 자격을 취득하셔야 합니다.

필요하시다면 조리기구 면허 과정 신청을 도와드릴까요?”


나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새어 나왔다.

“냄비 하나 쓰는 데도 자격이 필요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방 안의 조명이 미세하게 깜빡였다.

불쾌한 기분을 억누르며, 나는 구석진 수납장을 열었다.


그곳에서 먼지 쌓인 작은 냄비 같은 것 하나가 나타났다.

아버지가 쓰시던 것을 기념품처럼 간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손잡이는 찌그러져 있었다. 금속에 남은 흠집이 묘하게 반가웠다.


그것을 책상 위에 올렸다.

재료도 불도 없었지만, 이 작은 냄비가 새로운 문을 여는 열쇠처럼 느껴졌다.

어떤 설렘 같은 것이 느껴진다.


‘집 안에서는 불을 낼 수 없겠지. 하지만… 그 사람들에겐 도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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