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쿠트나 호라, 눈부신 은의 도시 #1
쿠트나 호라(Kutná Hora) 은의 전설
체코를 조금 아는 여행자들에게 쿠트나 호라(Kutná Hora)에 대해 물어보면 해골성당(Kostnice v Sedlci)을 떠올린다. 하지만 체코 사람들에게 쿠트나 호라는 으스스한 분위기의 도시가 아닌 휘황찬란하고 부귀를 누렸던 은의 도시로 알려져있다.
해골성당 내부과거 황실의 '국고'라 불렸던 이곳은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약 200년간 명실상부 유럽 최대의 광산 도시였다. 중세유럽의 중심이었던 보헤미아 왕국의 조폐소가 있을 정도로 번영했던 도시는 최초의 은화인 ‘프라하 그로센’을 주조하였고 이를 토대로 프라하를 뛰어넘을 정도의 부를 축적했던 도시였다. 하지만 자원은 영원할 수 없듯 쿠트나 호라의 번영은 은과 흥망성쇠를 함께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탄광촌이 그랬듯, 자원이 바닥난 도시는 사람들에게 잊혀졌지만 역설적으로 과거의 모습이 잘 보존 되어있다. 쿠트나 호라가 비록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을 순 없겠지만 과거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도시를 통해 우리는 그 시대를 다시금 느낄 수 있다.
프라하 그로센쿠트나 호라가 큰 도시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앞서 설명했듯 은과 관련이 있다. 은광이 발견되어 인생 역전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상업이 발달하면서 프라하에 버금가는 거대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은으로 시작해서 은으로 마무리되는 쿠트나 호라, 그에 걸맞게 은과 관련된 많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지금부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은을 발견한 안토닌
12세기 들어 쿠트나 호라(Kutná Hora)는 한 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울창한 숲으로 둘러 쌓여있었다. 이곳은 미로슬라프(Miroslav z Cimburku)의 소유지로 토지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시토 수도회 수도승들에게 토지를 제공하여 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수도승들은 1142년, 세들렉(Sedlec)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고 보헤미아(Bohemia) 지방 최초 시토 수도원이 지어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한세기가 지난 1237년 어느 더운 날, 안토닌(Antonín)이란 수도승이 새로 경작할 만한 곳을 찾아 마을 근처 숲 깊은 곳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귀신에 홀린듯 점점 더 깊어진 곳으로 들어갔고 한 걸음 한 걸음 숲속으로 들어갈수록 햇빛은 점점 줄어들어 급기야 방향까지 잃고 말았다.
그렇게 정처 없이 숲속을 헤매던 중 먼곳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빛을 한참 따라가자 우유 빛 거품이 가득한 우물과 햇살을 받아 영롱한 푸른빛이 감도는 이끼가 가득한 절벽이 나타났고 오랜 걸음으로 피곤함을 느낀 안토닌은 기절하듯 신비스러운 절벽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막 잠이 들던 찰나 절벽에서 흘러나온 푸른빛이 그를 휘감더니 깊은 꿈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꿈속에서 그는 숲 속 한 가운데에서 밭을 일구고 있었다. 그가 곡괭이질을 하자 마치 금속상자에 부딪힌 듯 큰 소리가 났다. 안토닌은 그것을 꺼내기 위해 주변의 잡초와 넝쿨 등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반짝이는 무엇인가가 그의 눈에 들어왔고,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 순간 땅이 갈라지며 금은보화가 뿜어져 나왔고 너무나 눈이 부신 나머지 안토닌은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깬 안토닌은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고 살폈지만 꿈속에 가득했던 금은보화는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그가 기대고 있던 절벽 틈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안토닌은 믿기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꿈이 아닌 진짜였다.
안토닌은 그 즉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그가 입고 있던 의복을 벗어 주변에 표시를 해놓고는 수도원으로 달려가 이 소식을 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본격적으로 은이 채굴되기 시작했고 이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중세 보헤미안 왕국 시대의 최고의 번성을 이룬 지금의 쿠트나 호라가 되었다.
#2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