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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전설을 따라가는 체코 여행기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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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선규 May 04. 2016

체코 쿠트나 호라, 눈부신 은의 도시 #2

은의 요정

쿠트나 호라로 향하는 아침,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니 오늘은 왠지 비가 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해골성당을 무척이나 기대했던 중이라 평소라면 싫었을 비가 오히려 어울리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는 느낌에 설렜다.

오늘도 역시나 전 세계에서 모인 여행자들 때문에 프라하 중앙역은 북적북적했다. 이곳에 어느새 익숙해진 나는 자연스럽게 줄이 긴 창구(영어 사용 가능창구)를 피해 현지인 전용 창구에서 티켓을 샀다. 티켓을 사는 데는 정확한 목적지만 말하면 되기 때문에 이게 시간을 버는 방법이다.

쿠트나 호라에는 총 3개의 역이 있는데, 성 바르바라 대성당이 있는 메스토역(Kutná Hora město), 해골성당이 있는 세들레치역(Kutná Hora-Sedlec) 그리고 중앙역(kutná hora hlavnínádraží)이다. 프라하에서는 쿠트나 호라 중앙역까지만 기차가 운행하고 쿠트나 호라 중앙역에서 부터는 메스토역까지 미니 열차가 운행하기 때문에 메스토까지 왕복 티켓을 사면 걷지 않고 편히 미니열차를 타고 내리며 관광할 수 있다.

쿠트나 호라 메스토역까지 들어가는 미니 열차

쿠트나 호라 메스토역

쿠트나 호라 까지는 한 시간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라 창밖을 보다 보니 어느새 쿠트나 호라 중앙역에 도착했다. 환승시간도 5분가량 남아 천천히 역 사진도 찍으며 이동하고 있었는데, 마침 동양인이 나한테 쭈뼛쭈뼛 다가왔다.

“日本人ですよ？”(일본인이세요?)

“いいえ。韓国人です.”(아니요 한국인이에요.)

일본어는 고등학교 때 배운 게 전부라 이렇게 간단하게 밖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나마 영어로 조금 소통이 가능해서 우리는 가는 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나오미로 방학을 맞이해서 유럽여행을 왔다고 한다. 그중 프라하는 3박 4일 예정으로 오늘은 스카이다이빙을 할 계획이었지만 오전에 날씨가 안 좋아 취소 됐다고 했다. 그래서 급히 근교를 찾던 중 해골성당이 있는 쿠트나 호라로 가고 있다고 했다. 나에게 말을 건 것은 다름이 아니라 쿠트나 호라 중앙역에서 해골성당으로 어떻게 가는지 모르던 중 혹시 일본인일까 싶어 말을 걸었단다.

‘직원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지만 말투나 행동으로 봐서는 조곤조곤하고 소심해서 쉽지 않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일단 방향은 같아 어색하지만 역까지 안내해주기로 했다.

나는 미니 열차에 탄 뒤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고자 정말 짧은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쿠트나 호라에 왔는지, 여기엔 어떤 전설이 있는지 이러 저러한 얘기들을 했는데, 그중 은 요정에 관한 전설에 가장 흥미를 보였다.

은의 요정

최초의 은광 발견 이후 많은 은광들이 연속적으로 발견되었다. 은광이 늘어날 수록 전국에서 더 많은 광부들이 모이게 되었고 그들은 더 많은 은을 위해 더 깊이 땅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깊은 땅속으로 들어 갈수록 어두웠고 광부들은 오직 희미한 등불 하나에만 의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하 깊은 곳에서 거대한 금속 도구들을 사용하여 은을 캐낸 뒤 바깥으로 운송하는 작업을 했다. 그들이 일할 때면 가끔 깊은 지하 속 적막을 깨는 희미한 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누군가가 벽을 가볍게 ‘톡톡’ 두들기는 소리였다. 광부들은 이 소리를 은의 요정이 내는 소리라고 생각했고 은의 요정이 있는 은광은 행운이 온다고 전해졌다.

전설에 따르면 은의 요정은 대체로 몸이 작고 기다란 흰 수염을 갖고 있으며 한손에는 은을 캐는 망치와 다른 한손에는 등불을 들고 다닌다고 전해졌다.

광부들은 예전부터 요정들을 신성시했는데, 그 이유는, 요정들이 지하 깊은 곳에서 방향과 은의 위치를 알려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부들은 매년 은의 요정들을 위해 그의 아내들이 직접 짠 빨간 망토에 은 단추를 장식하여 감사의 의미로 깊은 지하에 두고 오는 의식을 행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광부들은 요정에 대한 감사함을 점점 잊게 되었고, 결국 그들을 위한 의식은 점점 잊혀 져갔다. 은의 요정들은 이 사실에 매우 분노하였지만 마음 약한 그들은 광부들의 등불을 끄거나 그들의 도구를 숨기고 길을 미로처럼 만들어 버리는 등 장난에 가까운 소소한 복수만했다.

하지만 더 긴 세월이 흐르고 광부들은 요정의 존재조차 잊게 되어 그들이 사는 광산을 함부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결국 요정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복수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복수는 얼마 지나지않아 시작되었다. 광부들이 새로운 길을 내기 위해 더 깊게 땅을 파자 은의 요정들은 그들이 땅속 수맥을 건드리게 조금씩 길을 유도했다.

쿵 쿵 쿵

한 광부가 좀 더 깊이 내려가기 위해 땅을 파다가 다른 곳과는 소리가 조금 다른 것을 느꼈다.

“다들 이리로 모여봐 여기 소리가 조금 다른 것 같아. 혹시 새로운 은맥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은맥도, 새로운 길도 아닌 요정들이 복수를 하기 위해 유도한 물이 흐르는 수맥이었다. 결국 광부들은 지하 속 수맥을 건드려 은광 깊은 곳에 물이 차게 되었고 그 후로 요정의 소리는 들을 수 없다고 전해진다.

요정 전설이 흥미로웠는지 아니면 동행이 필요했던 건지 나오미는 나에게 함께 가도 되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행은 혼자 하면 경험이 되고 여럿이 하면 추억이 된다. 나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그녀와 함께 동행하기로 하고 우선 여행의 시작지 성 바르바라 대성당(Chrám svaté Barbory)으로 향했다.

바르바라 대성당으로 가는 길

메스토역에서 성 바르바라 대성당 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로 천천히 중세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주변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금방 도착한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었다.

나오미와 나는 같은 대학생이어서 그런지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 있었는데, 그중 연애에 대한 얘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일본 남자들은 보통 무뚝뚝한, 요즘 말로 츤데레 스타일이 많아 길거리에서 손잡고 다니는 것도 부담스러워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드라마 남자 배우들의 자상함을 보고 그 모습에 반해 팬이 된다고 했다. 특히 어머니 세대 때는 자상함에 대한 동경이 더욱 커, ‘욘사마’나 다른 한국 배우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라고 한다. 반대로 우리는 일본 여자들이 순종적이고 가정적인 이미지가 있어 인기가 있다고 했더니 조용히 웃었다.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다리 건너 성 바르바라 대성당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쿠트나 호라에서 최고 비경은 해골성당, 성모 마리아 대성당도 아닌 성 바르바라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과거 프라하의 부와 경제를 넘보던 이곳에서 까를교를 착안해 만든 다리 형태의 길로 걸어 들어갈수록 점점 성 바르바라 대성당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인상적이다.

성 바르바라 대성당으로 가는 길

나오미도 여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사진을 찍다 보니 성 바르바라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건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역시 20대 초반 여대생은 나라 국적 불문하고 비슷하구나'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성 바르바라 대성당은 14세기 후반에 짓기 시작하여 20세기 초에 완성된 공사 기간만 무려 6세기나 걸린 성당이다. 6세기에 걸쳐지어 저서 그런 것일까, 시간이 걸린 만큼 프라하의 성 비투스 성당만큼 웅장하고 화려하다. 세들렉 성당(해골성당)과 함께 유네스코에 지정되는가 하면, 현재 체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후기 고딕 건축물로 뽑히고 있다. 성당의 옆면은 성 비투스 성당의 뒤쪽과 유사하며 그 형태가 기하학적이다. 앞에 있는 잔디밭에 누워 성을 감상했다. 당시 광부들의 수호성인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는 성 바르바라 대성당. 겉에서 보고 있자니 안이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