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선규 Oct 29. 2022

숲속의 성, 크르지보클라트(Křivoklát) #2

 크르지보클라트 성은 '정말 이곳에 체코에서 가장 존경받는다는 까를4세가 살았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화려함과 특별함을 찾을 수 없었다. 성의 입구를 통과하자 내부의 뜰이 나타나고 작은 기념품 가게 몇 개와 성을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성의 내부는 가이드 투어로만 진행되는 까닭에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는 높은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크르지보클라스 성의 내부 뜰
숲으로 둘러쌓인 성

 까를왕이 부인을 위해 나이팅게일 새를 온 숲에 풀었다는 이곳, 실제로 성 위에서 내려다보니 마을 주변 전체가 숲이었다. 숲이 울창해서 그런지 가장 더웠던 7월말임에도 불구하고 선선한 공기와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내 몸을 휘감아 더위를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내 지저귐 소리가 바람을 타고 멜로디가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실제 그 소리가 나이팅게일의 소리일지는 모르지만 더운 여름 숲의 시원한 바람과 새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앉아있던 나무의자에서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가 지났는지 누군가 나를 깨웠다. 정신 차리고 보니 열차에서 만났떤 존이었다. 아이들과 와이프은 성 투어를 갔고 자기는 쉴 곳을 찾다가 잠들어있는 나를 발견했단다. 반가운 마음에 우리는 여러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존의 가족 얘기까지 하게 되었는데, 사실 자기는 아기를 가질 수 없어 아이들 모두 입양을 했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나에게 이런 얘기하는 이유가 궁금하여 물었더니 놀라운 얘기를 해줬다. 바로 아이 중 한명이 한국인이라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이런 이야기는 티비에서만 보던 터라 나와 정말 먼 일 일줄 알았는데, 현실에서 마주하니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존이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존이 한국인 아이를 입양하게 된 이유는 이러했다. 몇 년 전 한국이 전세계 lte통신망의 기준이 되자 회사차원에서 기술협약을 위해 한국에 왔다. 그러던중 sk텔레콤에서 하는 사회활동에 참여했다가 고아원에 들르게 되었는데, 한 아이와 마주친 눈을 잊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정이 끝나고 휴가를 내어 한국에 돌아와 그 아이에 대한 입양 절차를 마치고 왔다고 한다. 아이 이름은 크리스, 한국이름은 아쉽게도 발음을 알아듣기 어려워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문득 아까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가 크리스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존의 얘기를 듣고 나니 한국인으로서의 이끌림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존은 나중에 아이가 독립할때가 되면 뿌리를 찾아주고 싶다고 했다. 내가 진짜 부모가 아닌걸 알면 충격 받지 않겠냐고 했지만 이는 내 기우였다. 그는 낳아준 부모도 부모지만 진짜 사랑을 주고 가족의 정을 준 사람이 진정한 부모지 않겠냐고 얘기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모든 판단은 크리스에게 맡기기로 했다고 한다. 참 대단한 어른이다. 입양도 큰 결정이었을 텐데, 나중에 아이가 크고 난 후 입양에 대한 사실과 그에 대한 판단을 맡긴다니... 나로서는 그 큰 뜻을 감히 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왜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존이 조심히 내 연락처를 물어봤다. 사실 이런 얘기를 처음 만난 사람에게 얘기하는 게 쉽지 않지만 아까 한국인이라기에 털어 놓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혹시 나중에 한국에 관련해서 일이 생기면 연락해도 되겠냐며 정중히 물어왔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나에게 이런 깊은 얘기 까지 한 그에게 애정이 생겨 흔쾌히 연락처를 주었다.      

유쾌한 존의 가족들

 존과 헤어지고 난 후 생각이 많아진 머리를 식힐겸 천천히 성을 둘러보았다. 크르지보클라트 성은 다른 성들에 비해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그래서 찾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이점이 이곳의 강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위에서 탁트인 숲의 전경을 보고있자면, 여러 생각에 복잡하던 머리도 정리가 되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 지는 기분이든다. 

크르지보클라트 성에서 울창한 숲을 보고있자니 잔잔한 나이팅게일의 멜로디 어느새 바람을 타고와 내 몸을 감싸는듯 했다. 그 순간 불현듯 까를4세와 블랑쉬의 이야기가 머리속에 떠올랐다. 나이팅게일의 멜로디, 부부간의 로맨틱한 감정. 그들은 서로에게 '멜로망스'적인 순간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불현듯 떠오른 그 생각에 질투심을 느낀 나는 쓸쓸함을 간직한채 성을 내려왔다. 

이전 19화 숲속의 성, 크르지보클라트(Křivoklát)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