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틈날 때마다 카카오톡을 연다.
19년도 말,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이후 부동산 공부라는 걸 시작하면서 매일 변하는 주식 호가 창 만큼이나 가파르게 상승하는 집값을 보게되었다. 처음에는 ‘지금 살고 있는 평수보다 10평이나 작은 평수에 입주를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서 시작해 살고 있는 지역의 부동산 카톡방을 찾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개발 호재, 앞으로의 교통망, 어떤 아파트의 거래 내역, 호가의 오름세를 빠르게 알게 되기도 했고 인근 소아과의 대기상태, 백신 예약이 가능한 병원들의 정보까지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
아파트 엘레베이터에서 목례만 할 뿐, 이웃과의 교류라고는 일절 없었던 나에게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옆집 아줌마, 옆 동네 아저씨의 사람 사는 이야기는 익명의 닉네임으로 몰래 훔쳐보는 재미까지 더해져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짙게 공감되는 현실의 세계 만큼이나 어떤 날은 손목이 아플 정도로 화면에 빠져 있기도 했다.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수많은 대화들을 눈으로 훑어보면서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다.
아차! 이걸 했었어야 했는데...
아쉬운 마음으로 중얼거린다.
작고 간단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들을 해야할 시간에,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나는 카톡이나 쳐다보고 있던 것이다.
당장 해결해야 할 업무 라던지, 마감시간이 정해져 있는 일들,
그러니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은 오히려 해결하기가 쉬웠다.
예를 들어 아이를 10시까지 등원시키는 일, 3시에 하원시키는 일은 정해진 마감시간까지 도착해야 만 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내 아이만 덩그러니 친구들이 집에 가는 뒷모습을 바라만 보아야 하니 하원 시간까지의 데드라인이 선명해진다. 지금껏 단 한번도 아이가 하원하는 친구의 뒷통수를 바라보는 일은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회의시간, 미팅 약속, 그 다음 과업들이 순차적으로 정해진 목록들을 해결해 나가는 일에는 꽤나 능숙하고 유능하다. 시간 약속에 되도록 늦지 않으려고 매사에 서두르는 편이고, 조금이라도 늦게 된다면 왜 늦어지고 있는지, 언제까지 도착 가능한지도 즉각 피드백을 남기는 편이다.
하지만 나의 문제는 선명하게 그어진 데드라인이 없으면 모든 걸 언제까지고 미루는 데 있었다.
그리고 꽤나 자신만만하게 ‘나중이 되면 다 하게 되어있어.’
‘닥치면 하게 되있던데?’ ‘그때되면 또 방법이 생기겠지’
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닥치면 하게 되어있다는 어둠의 정설은 늘 그렇듯, 계획없이 떼우기에 불과하다. ‘
선 매수 후 공부’ 라는 말 처럼, 매수하고 싶은 물건의 입지분석이나 자금 계획을 하지 않고 묻지마 식의 부동산 투자의 말로는 물리고 물려 세금까지 탈탈 털려야 끝이난다.
물론 경기 상승장에 탑승해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결과가 좋았다 할지라도, 그저 운에 불과하니 다음 번에도 같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보장이 없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놓고,
“내일부터 양상추만 씹어먹어야지”
“ 다음주부터 디톡스 해야지”
결정을 내리지만 미래의 나는 그대로일 뿐이다.
다행인 것은 가슴에서 시키는 일을 머리가 들었어도 팔다리가 전혀 움직여지지 않아서 오늘의 할일을 내 일로 미룬 당신에게 나는 절절한 동지애를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왜 애석하게도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 보다 부지런할 거라 생각할까?
내가 이렇게 초긍정 자아를 가진 낙관주의자였나?
아니다. 나는 작은 충돌과 충격에도 연약하게 쓰러지는 바스락 멘탈의 소유자였고 누구보다 촘촘히 다이어리를 적어오는 프로계획러이다. 그런데 어째서 미루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걸까?
그 해답을 우연히 심리학 책 속에서 찾았다. 심리학자인 대니얼 길버트가 말하길 사람은 언제나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유능하고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정당한 심리적 기능’이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다이어트를 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 ‘날 한입만 잡숴봐’ 하면서 로얄코펜하겐 접시에 요염하게 앉아있는 케이크 한 덩어리 앞에서 내일의 다이어를 글피로 미뤘던 날들.
3일째 다이어트에 성공한 무더운 여름날, 한 모금만 마시면 온 몸을 휘감으로 내려가는 짜릿함을 선사해줄 것이라고 내귀에 캔디처럼 속삭이는 청포도 에이드를 위장에 넣기위해서 스스로에게 얼마나 많은 정당성을 부여해야 했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다이어트라는 지상과제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든지 내가 마음을 먹는 그 순간 다이어트를 하는 찬란한 계획표를 스스럼없이 달성해 나갈 미래의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의 미루기 습관은 마감일이 임박해서야 ‘미래의 나’라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믿는 심리가 작동하는 심리학 기전의 결과였을까?
미루는 습관에 대에 ‘뇌’는 어떻게 반응할까? 뇌과학 책에서도 비슷한 연구결과를 보았다.
해야 할일을 미루는 습관이 뇌 구조와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 였다.
미루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편도체의 크기가 큰 경향을 보였는데, 편도체는 뇌에서 감정을 느끼는 부분이다. 미루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불안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배측전방대상피질’ 반응이 느리게 나타났다.
즉, 편도체로부터 정보를 받아서 필요한 반응을 지시하고 감정과 고통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반응이 느린것이다. 결과적으로 편도체가 큰 사람들이 불안감을 더 느낄 수 있고, 그것 때문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망설이거나 미루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루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할 일을 미루는 대신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다른 일을 함으로써, 해야할 일을 미루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낸다고 한다.
단순하게는 오늘의 다이어트를 내일로 미루는 것이 더 마음편한 의사결정인 것이고,
미래의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위해 오늘도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하는 작업을 시도해야 하지만 내일로 미루고 필라테스를 하러 가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미루는 습관을 이야기 하기 위해 심리학과 뇌과학의 연구결과를 꺼낸 것은 미루기 습관을 항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생을 바꾸는 치트키가 없는 것처럼, 핑커스틱을 이용해 미루었던 일들을 바로 실행할 수 있는 로봇인간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당신이 미루는 습관을 가지게 된 이유를 지금의 현실에서 먼저 찾아보자.
그리고 내 마음의 심리학 적 문제인 것인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해결이 될 수 있는 현실적인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을 분류해 내는 것이 미루는 습관을 이길 수 있는 첫번째 발걸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 이제 미루는 습관을 이기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