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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molove Oct 14. 2021

잘나 봤자.

많이 배운 동서나 못 배운 나나 한 솥밥 먹는 건 똑같아.

할머니가 늘 말씀하셨다.

"손재주 많아봤자 몸만 고달프고 가난하게 산다"

그 말을 들은 건 37-8년 전쯤이니 그때 내 나이 고작 11세 정도나 되었겠다. 어린 나이에 그 말 뜻을 알 리가 없지. 그 말 뜻을 이해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독신주의를 외치고 평생 공부만 할 것처럼 큰소리치던 내가 27살 많지도 않은 나이에 결혼을 해버렸다. 홀라당 넘어간 데는 분명 독신주의의 마음이 뒤바뀔만한 엉뚱한 사심이 있었다.




유교사상에 찌들만한 내가 아닌데 시댁에 가면 시부모 눈에 꼭 들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사람처럼 한시도 앉아있지 못하고 혼자 분주했다. 지저분하지도 않은데 여기저기 정리하고 부엌에 서성거리면서 어머님 시야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내가 이렇게 고리타분한 성격이었나?" 

앉아서 쉬다가 눈이 마주치면 괜히 놀고 있다 걸린 학생처럼 마음이 편하지가 못했으니 말이다. 여하튼 혼자서 몸도 마음도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시집간 첫해. 그러니까 내가 27살 되던 해 10월 22일에 결혼을 했고 한 달 정도 후쯤 김장을 했다. 배추는 200여 포기쯤 되고 무는 몇 개인지 모르게 탑처럼 쌓여있었다.  시골집에서 텃밭을 가꿨는데 김장용 배추와 무다. 눈발은 날리고 배추가 얼지도 모르니  그 저녁에 배추와 무를 간을 절여야 한다는 것이다. 마당에서 배추를 정리하고 쪼개는데 내 손이 쪼개지는 줄 알았다. 다음날은 절인 배추와 무를 씻어내는 작업만 세 번. 간이 너무 세다는 게 이유였다. 문제는 그 추위에 어딘가를 향한 반항이라도 하듯 너무 열심히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동네 어르신들은 피아노만 치는 줄 알았더니 일도 너무 잘한다며 시어머님을 부러워하는 말이 넘쳐났다. 왜 그랬을까. 미치지 않고서야 그랬을 리가 없다. 아니, 어쩌면 동네 어른들의 부러움 섞인 말 때문에 힘을 받아서 에너지를 발산했던 것 같다.


이제 배추를 소쿠리에 담아 나르고 어르신들이 양념을 바르면 차곡차곡 김치통에 담에 쌓기만 하면 된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김치통은 처음 봤다. 시 고모님이 다섯 분. 작은 아버님이 두 분. 형님. 어머님. 그리고 동네의 거동이 불편하신 몇몇 어르신과 우리 집. 나르고 담고 옮기고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눈물이 났다.


 
왜냐면

그동안 먼저 시집온 형님이 몇 해 동안 이 작업을 했으니 이번 김장 허드렛일은 둘째가 하라시면서 형님은 외출의 자유를 주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첫째보다 튼실하고 일도 잘해서 앞으로는 둘째를 불러서 김장을 해야겠다고 동네 어르신들이 연신 칭찬 같지 않은 불편한 진실을 말씀하셨다. 불편하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오르면서 울컥했고 앞으로도 해마다 치러질 이 정도 규모의 김장은 말도 안 된다며 외치고 싶었지만 머릿속에서만 방망이질하는 가슴에서만 울릴 뿐이었다.


그렇게 겨울이 가슴 시리게 지나고 다음 해 설날이 왔다. 형님과 명절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마주했지만 지난겨울 3일 동안 치렀던 김장에 대해서는 절대로 입밖에 먼저 꺼내지를 않았다.

나보다 2살 어린 형님은 나를 철저하게 의도적으로 아랫사람 하대를 했다.

아니라 하더라도 난 그렇게 보여서 안타까웠다.

좀 더 살갑게 대하면 나이차 이따위 떠나서 둘도 없는 동서지간이 될 텐데.

"동서, 마늘 좀 가져와. 동서, 고춧가루 가져와. 동서, 행주 빨아야겠다.. 네, 형님. 네, 형님"

뭐 어쩔 것인가. 서열로 까라면 까야할 팔자인 것을.  


형님과 나는 전을 부치면서 느끼한 냄새를 견뎌내기 위해 맥주를 따라서 옆에 두고 홀짝홀짝 마셔가며 음식 장만을 했다. 어느 정도 명절 음식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침묵을 깨고 형님이 한마디 하며 입을 뗐다.

"동서는 뭐가 그렇게 좋아서 매일 웃어?"

'뭐지? 웃는 게 기분 나쁘다는 거야 뭐야.'

"많이 배운 동서나 못 배운 나나 이 집에서 한솥밥 먹는 건 똑같아. 여자 팔자는 두레박 팔자라고 들어봤지?"

어쩌라는 것인가. 친정에서 잘 못 배웠다는 소리 들을까 봐 시댁일이라면 열심히 했고 나이 어린 형님 무시한다는 억지소리 안 듣기 위해서 말 토시 하나하나마다 존대를 했다. 배려와 섬으로 돌아온 건 앞으로의 시댁 생활에 있을 불행을 예고하는 대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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