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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기 Jan 19. 2022

부들부들 펑고 훈련


    여기까진 괜찮았어요. 두 번밖에 안 그만두고 싶었으니깐요. 운동장 열 바퀴 돌 때랑, 지옥의 스트레칭할 때랑요. 캐치볼 할 때랑 간식 먹을 때는 좋았어요. 형들 이야기는 진짜 계속 웃겼고요. 그거 기억나요? 이 형은 전 주장이고 이 형은 주장이고 얘는 고추장이고 얘는 그냥 고추야! 크크크킄. 엄청 웃겨요, 진짜. 게다가 점퍼를 벗고 형들과 같은 유니폼에 같은 검정 후드 티를 입고 있으니까...... 추웠어요.

    

    너무 추웠어요. 형들이랑 같은 옷을 입고 운동을 하고는 싶은데, 벗은 지 얼마나 됐다고 점퍼를 다시 입기는 좀 그렇고. 뭔 말인지 알죠? 근데 이미 운동장에 집합해 버려서 점퍼를 가지러 갈 수도 없었어요.

    '이현아, 핫팩 후드 티 주머니에 넣어두고 추우면 손에 꼭 쥐고 있어.'

    맞다! 아침에 엄마 아빠가 핫팩 챙겨줬었어요. 역시 엄마 아빠 최고! 엄마의 정성, 아빠의 사랑이 듬뿍 담긴 핫팩이 바로 여기 앞 주머니에...는 없고, 바지 뒷주머니에...도 없고, 그럼 옆 주머니에 있겠...... 후드 티에는 옆 주머니가 없더라고요. 옆 주머니는 점퍼에 있죠. 그럼 핫팩도 거기 있겠네요...... 히잉, 눈물이 나올랑 말랑 했지만 참았어요.

    "이혀이, 안 춥나?" 코치님이 물었어요.

    "네." 뭐라고? 이 바보야!

    "그래, 씩씩하네." 코치님이 허허 웃으며 돌아섰어요. 지금이라도 말해야 하는데, 춥다고, 점퍼 좀, 아니 핫팩이라도 가지고 오면 안 되냐고 말해야 하는데, 그 말이 나오지 않았어요. 코치님 등에 대고 열심히 눈빛을 쏘기만 했어요. 어찌나 힘을 줬는지 방구가 뽀옹 나왔어요. 그때였어요. 코치님이 다시 돌아섰어요. 통한 걸까요? 아니 아니, 방구 냄새 말고요. 눈빛이요, 눈빛!

    "맞다. 이혀이 니 그거 없재?" 네, 점퍼에 두고 왔어요. 코치님, 저는 처음 뵀을 때부터 코치님이 이렇게 다정한 분인 줄 알았어요. 암요. 좀 곰 같이 생기시고 목소리도 크셔서 그렇지......

    "수혁아, 그거 갖고 온나! 응, 그거!"


    펑고 훈련 처음 할 때는 공에 얼굴을 맞아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대요. 그래서 이렇게 보호 장비를 하고 해야 한대요. 우리 다정한 코치님께서 직접 보호 장비를 머리에 씌워 주셨어요. 이제 공에 맞아 다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얼어 죽을지는 몰라도.



    그나마 펑고 훈련이어서 다행이었어요. 리틀 야구단에서도 맨날 하고 아빠랑도 맨날 해서 펑고는 자신 있었거든요. 내야 펑고부터 시작했어요. 준비가 되면 오른손을 높이 들고 '어이' 하고 외쳐요. 여기까지도 리틀 야구단이랑 똑같았어요.

    "어이!"

    팡. 감독님이 내야 땅볼을 쳐 주셨어요. 이 정도야 뭐 식은 죽 먹기......

    "어이?"

    시작부터 알까기를 했어요. 죽도 가끔, 실은 자주 흘리는 편이니까 뭐 그럴 수 있죠.

    "괜찮아. 자세 더 낮추고 글러브가 더 빨리 내려가야지."

    감독님이 괜찮다고 해 주셨지만 괜찮지 않았어요. 내야 펑고는 진짜 완전 전문인데, 첫판부터 알을 까다니 부들부들.


    "어이!"  

    팡.

    "아......"

    "이현아, 발이 먼저 가야지. 괜찮아."

    아무래도 보호 장비가 시야를 자꾸 가리는 것 같아요. 분명히 잡을 수 있는 공이었는데 부들부들.

 

    "어이!"

    팡.

    "아......"

    "이현아, 오른손으로 정확하게 덮어줘야지. 다음 동작 생각하지 말고 우선 잡는 거 먼저. 알겠지? 괜찮아."

    부들부들.


    '어이! 팡. 아...... 부들부들'만 하다가 결국, 운동장 한쪽 구석에서 코치님이랑 스텝 연습만 계속했어요.

    "어이!"

    깡.

    타다닷, 타닷. 휙― 빡.

    "그뤄치!"

    언제쯤이면 형들처럼 저렇게 잘할 수 있을까요?


    시간은 느리게 흘렀어요.

    아직 한 시간 이십일 분이나 더 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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