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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기 Jan 23. 2022

눈 오는 날의 끝내기 득점


    운동장에 하얗게 눈이 내렸어요.

    "아이고, 저거럴 다 은제 치우노?" 코치님이 한숨을 쉬었어요.

    그래도 저는 왠지 신이 났어요. 오늘은 별로 춥지도 않았어요. 내복 두 겹에다가 양말도 두 켤레 신고, 유니폼 안에 패딩 조끼까지 입었거든요. 실은 이게 다가 아니에요. 엄마가 등에 핫팩까지 붙여줬죠. 자꾸 실실 웃음이 났어요.

    "니는 뭐가 그래 좋노?" 그러는 코치님도 웃고 있으면서......


    몸을 풀면서 이상하게 풀쩍 풀쩍 뛰고 어깨를 들썩 들썩 하고 머리까지 흔들 흔들 하고 있으니까 형들이 물었어요.

    "애기야, 왜 그래?"

    형들은 저를 애기라고 부르는데, 엄마 아빠가 애기라고 하면 '아니야, 형아야!' 그러면서 기분이 상했지만 형들이 그렇게 부르는 건 왠지 좋았어요.

    "아...... 등에 핫팩이 따뜻해지라구요. 헤헤."

    형들이 와하하 웃었어요.

    "그런다고 따뜻해지냐?"

    그러면서 승겸이 형이 제 유니폼을 잡고 막 흔들었어요. 간지러워서 도망치는데 형들이 쫓아왔어요. 순식간에 술래잡기가 되어 버렸죠. 얼마 도망가지도 못하고 잡혀서는 형들이랑 눈밭에 막 굴렀어요. 눈은 차가운데 따뜻하기도 하고 참 이상해요.

    "야, 몸 안 풀고 뭐해!" 그러는 감독님도 웃고 있으면서......


    오늘은 어제보다 나아졌어요. 내야 펑고 훈련할 때 꽤 많이 잡았어요. 알까기는 하나도...... 아니 한 개밖에 안 했고요. 글러브 맞고 튕겨나간 거 몇 개 정도? 뭐 그 정도? 외야 펑고 훈련 때도 드디어 한 개 잡았어요. 코치님이 "나이서!" 라고 해 주셨어요. 기계 볼 배팅도 두 개나 맞혔어요. 하나는 옆으로 하나는 뒤로 갔지만요. 다음 차례인 우재 형이 제 엉덩이를 툭툭 쳐 주었어요. 그리고 주루 훈련을 처음으로 했어요. 뛰는 건 자신 있어요. 이건 비밀인데요...... 야구부에서 달리기로는 제가 뒤에서 3등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우재 형이 제일 느리고요, 기준이 형은 저랑 비슷한데 제가 전력으로 달리면 잘하면 이길 것 같아요.

    "오버 런이라고, 베이스와 베이스 사이를 직선으로 뛰는 게 아니라 크게 원을 그리면서 뛰는 거야. 그래야지만 베이스를 통과하면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다음 베이스까지 빨리 들어갈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네."

    "진짜?"

    "네."

    감독님은 저만 보면 웃으세요. 왜 그러실까요? 어쨌든 제 차례예요. 감독님이 호루라기를 불면 뛰어요. 2루에서 3루를 거쳐 홈으로.

    삑!

    "우다다다다!" 입으로 소리를 내면 더 빨리 뛸 수 있어요. 저만의 비법이에요.

    "3루 안 밟았잖아! 다시!"  

    아......

    삑!

    "우다다다다다다다!"

    "계속! 계속! 속도 줄이지 말고! 그뤄치! 공 간다! 간다! 어어?"

    세이프! 세이프죠? 완전 세이프잖아요? 그쵸?

    감독님이 달려오셨어요. 날아간 제 헬멧을 주워 흙을 털고는 제 앞에 쭈그려 앉으셨어요.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은 안 배웠잖아." 제 머리에 헬멧을 씌워 주시면서 껄껄 웃으셨어요.

    "간식 먹으러 가자!" 감독님이 일어나 걸어가셨어요.

    형들이 "네!" 하고 외치면서 달려왔어요. 형들이 제 헬멧을 툭. 툭. 툭. 치고 갔어요. 왜, 끝내기 득점을 하면 그러잖아요. 툭. 툭. 툭.

    저도 일어나 옷을 털었어요. 그때까지도 홈에서 발을 떼지 않았어요. 세이프! 끝내기 득점! 마음속으로 세레모니를 하며 형들을 따라 달려갔어요.


    글쎄 오늘 간식이 뭐였는 줄 알아요? 와 진짜, 이건 완전 와아......

    바로 바로 짜장 떡볶이에 바나나 우유! 거기다가 군만두까지! 진짜 끝내줬어요.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우재 형이 말했어요.

    "눈 온다."

    고개를 들어보니 정말 하얗게 눈이 내렸어요. 운동장에 1루도 2루도 3루도 홈도 안 보였어요. 좀 전에 슬라이딩을 했던 자국도 눈에 덮여 보이지 않았어요.

    툭. 툭. 툭.

    눈이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어요.

    툭. 툭. 툭.   

    "실컷 치워 났드마 또......" 코치님이 한숨을 쉬었어요.

    "니는 뭐가 좋아서 또 웃노?" 그러는 코치님도 또 웃고 있으면서......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아빠에게 말했어요. 이건 정말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아빠 아빠!"

    "응?"

    "아빠!"

    "응?" 아빠가 운전을 하면서 저를 힐끔 보고 웃었어요.

    "오늘 간식 뭐였는 줄 알아?"

    "혹시...... 짜장면? 아님 짜장 떡볶이?"

    "어어! 거기다가 바나나 우유!"

    "우와아!"

    "또 군만두까지!"

    "헐 대박! 진짜 맛있었겠다!"

    "응! 완전 맛있었어! 근데 아빠 어떻게 알았어?"

    "뭘?"

    "짜장 떡볶이 어떻게 알았냐고?"

    아빠는 대답은 안 하고 웃기만 했어요.

    "집에 가서 거울 봐."

    차 앞 유리에 눈이 내려 앉았어요.

    툭. 툭.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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