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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기 Jan 30. 2022

포기하지 말아요


    두원이 형은 우리 팀 4번 타자예요. 덩치도 제일 크고 힘도 제일 세요. 기계 볼 치는 거 봤는데 하나도 놓치지 않고 펑펑 날리는데... 우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어요. 다른 형들이 그러는데, 형은 대회 나가서도 홈런을 엄청 많이 쳤대요. 강백호 같은 엄청난 타자가 될 거래요. 제 생각에도 그럴 것 같아요.

    두원이 형도 저랑 같은 17번이에요. 두원이 형 번호를 제가 물려받은 거죠. 저도 형처럼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못 했어요. 실은 두원이 형이 쫌 무섭기도 하거든요. 형은 졸업반이라 이제 곧 중학생이고, 덩치도 큰 데다 얼굴도 좀... 무섭게 생겼어요. 눈썹도 진하고. 말도 잘 안 하고 웃는 모습을 본 적도 없어요.


    오늘도 두원이 형은 무서운 얼굴로 스윙 연습을 했어요. 저는 형이랑 한참 떨어져 있었는데, 붕붕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어요. 말벌 천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오는 것 같았어요. 붕 소리가 들릴 때마다 흐익 하고 고개를 숙였어요.

    "두원!" 감독님이 형을 불렀어요.

    형이 배트를 내려놓고 감독님에게 달려갔어요.

    "야, 두원이 형 야구 그만둘 수도 있대." 윤진이 형이 조그맣게 말했어요.

    "에?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야?" 경호 형이 벌떡 일어나며 화를 냈어요.

    경호 형도 두원이 형이 최고라고 늘 그랬거든요. 윤진이 형이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인상을 썼어요.

    "내 말이...... 근데 엄마가 통화하는 걸 들었어. 두원이 형 야구 못할 수도 있다고......"

    경호 형은 거의 울기 직전이었어요.

    "두원이 형이 야구 안 하면 누가 하냐?" 맞아요. 제 생각도 그래요.

    "형은 계속할 거야. 야구." 응!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운동장 구석에서 감독님이 두원이 형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었어요. 형은 뒷모습만 보였어요. 형들과 저는 그 모습을 한참 쳐다보았어요.  


    쉬는 시간에 물을 마시려고 하는데, 으으 이 놈의 뚜껑이 또 안 열렸어요. 이렇게도 돌려 보고 저렇게도 돌려 보고 흔들어 보고 다리 사이에 끼워서 두 손으로도 해 봤는데도 안 열렸어요. 손이 얼어서 더 그런가 봐요. 목은 마르고 쉬는 시간은 끝나가는데...... 울고 싶었지만 최강 해진초 야구부 17번 박이현이 이런 일로 울면 되겠어요? 그때, 커다란 손이 제 물통을 턱 집어 갔어요.

    딸깍.

    두원이 형이 저에게 물통을 내밀었어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입을 벌리고 형을 쳐다보고 있으니까, 형이 물통을 한 번 흔들었어요.  

    물통을 받으니까 형이 뒤돌아 걸어갔어요.

    "형!" 제가 왜 이랬을까요?

    두원이 형이 가다가 멈춰 고개를 돌렸어요. 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요. 형이 갑자기 저에게 달려왔어요. 으으 어쩌죠?


    두원이 형이 제 앞에 쪼그려 앉았어요. 형이 손을 휙 들어 올렸어요. 으악! 잘못했어요! 눈을 질끈 감았어요. 형이 제 머리에 손을 턱 얹고는 말했어요.

    "열심히 해라. 박이현."

    형이 다시 걸어갔어요. 멀어져 가는 형을 보다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어요.

    "파이팅!"

    주먹까지 불끈 쥐었어요.

    두원이 형이 뒤돌아 섰어요. 형이 오른팔을 쭉 들어 올렸어요. 그리고 웃었어요. 처음으로 형이 웃었어요.

    뭐야? 두원이 형...... 착하게 생겼잖아!

    형의 눈이며 눈썹이며 반달이 되었어요. 꽤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저도 형을 따라 오른팔을 높이 들었어요. 휘어졌던 형의 눈과 눈썹이 다시 일자가 되면서 형이 뒤돌아 달려갔어요. 형이 저 멀리 갈 때까지 저는 그대로 서 있었어요.


    으으으―

    집에 오자마자 두원이 형이 말한 대로 '열심히' 연습했어요.

    "박똥개, 뭐하냐?" 아빠가 물었어요.

    으으으으으―

    "이게 다 뭐야?"

    딸깍!

    "됐다!" 생수병 뚜껑 열기 10개 성공!

    "야, 생수를 이렇게 다 따 버리면 어떡해?"

    "응, 두원이 형이 열심히 하랬거든."

    "이걸? 병뚜껑 여는 거를?"

    "응. 형이 그랬어. 열심히 하라고."

    아빠가 한숨을 쉬면서 생수병을 정리했어요. 두원이 형이 분명히 열심히 하라고 그랬는데. 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도 뭔가 뿌듯했어요. 내일 형을 만나면 말해주고 싶지만, 아마 못하겠죠? 아직은 좀 부끄러워요.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말할 거예요.

    열심히 할게요.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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