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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기 Feb 05. 2022

무서운 사춘기와 바보 아빠


    야구부 훈련이 끝났는데 아빠가 보이지 않았어요.

    "이현아, 아빠 조금 늦으신대. 들어가자. 샘이랑 같이 기다리자."

    총무 샘이랑 야구부실로 들어갔어요.  

    피―

    오늘은 빨리 집에 가고 싶었는데...... 아까 청백전 할 때 춥고 배고프고 힘들어서 조금 울었단 말이에요. 다행히 아무도 못 봤지만. 아, 은우 형이 본 것 같기는 한데...... 형이 수비하러 나가면서 힐끔 보고는 그냥 뛰어갔거든요. 아마 못 봤겠죠? 아니, 창피해서가 아니라, 형이 뭐라고 할까 봐요. 은우 형이 좀 화를 잘 내거든요. 저한테 그런 적은 없는데요...... 훈련하다가도 마음대로 안 되면 막 화내고 혼자 좀 나쁜 말도 하고 그러거든요. 다른 형들 말로는 사춘기라 그렇대요. 사춘기 때는 그냥 자꾸 화가 난대요.


    앗, 망했어요. 은우 형이 야구부실에 들어왔어요. 형은 훈련 끝나면 우유를 두 개씩 먹고 간다고 들었는데, 딱 마주쳐 버렸어요. 총무 샘마저 화장실 가시고 형이랑 둘이 있게 되었어요. 형은 냉장고에서 우유를 두 개 꺼내서 앞에 놓고는 모자를 벗었어요. 형은 완전 빡빡머리예요. 코치님도 다른 형들한테는 머리 좀 잘라라 하시면서 은우 형만 보면 "니는 머리 좀 길라라." 하세요. 형은 빡빡머리를 몇 번 벅벅 긁고는 우유 하나를 따서 마시기 시작했어요. 꿀꺽꿀꺽 소리에 맞춰 형의 목이 꿀렁꿀렁 움직였어요. 그게 신기해서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쳐다보는데,

    꿀꺽.

    소리가 멈췄어요. 목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 상태 그대로 형은 눈알만 굴려서 저를 보았어요. 깜짝 놀라서 고개를 숙였어요. 형은 다시 꿀꺽꿀꺽 꿀렁꿀렁 하며 우유를 마셨어요. 우유 한 통을 다 마신 형은 다시 빡빡머리를 벅벅벅 긁었어요. 그러고는 천장을 잠깐 보더니 또 빡빡머리를 벅벅 긁었어요. 왜 저러지? 궁금하면서도 왠지 겁이 나서 못 쳐다보고 있는데 형이 나머지 우유를 들더니,

    턱.

    제 앞에 놓았어요. 그러더니 또 빡빡머리를 벅벅.

    저는 우유를 보다가 형을 보다가 다시 우유를 보았어요.

    형은 모자를 썼다가 다시 벗더니 모자를 이리저리 살펴보았어요. 맨날 쓰는 모자를 처음 보는 것처럼. 그러다 벌떡 일어났어요.

    깜짝 놀라서 형을 보았어요. 형도 저를 보았어요. 눈이 마주치자 형은 모자를 눌러썼어요. 형은 제 앞에 놓인 우유를 집어 들었어요. 우유를 저한테 던지는 거 아닐까 하고 겁이 났어요. 배꼽이 간질간질했어요. 형은 우유갑 입구를 열어서

    턱.

    제 앞에 놓고는 야구부실을 나갔어요.

    야구부실에 혼자 남아 우유를 보고 있는데 눈물이 났어요. 아빠가 보고 싶었어요. 아니면 총무님이라도. 저는 우유를 못 마셔요. 우유 알레르기가 있어요. 아빠 말로는 심한 건 아니래요. 마셔도 괜찮대요. 그래도 전 우유를 못 마셔요.

    아빠가 왔어요. 저를 보자마자 꼬옥 안아 주었어요. 아빠 품에서 조금만 더 울었어요.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내내 아빠는 제 손을 꼬옥 잡아 주었어요.

    "손이 왜 이렇게 차냐? 에구......"

    추우니까 그렇지. 아빠 손도 차구만 뭐. 아빠는 바보 같은 질문을 했어요. 아빠가 조금 미워서 손을 더 꽉 쥐었어요. 그때 전화가 왔어요.

    ―박 과장 퇴근했어? 아니 말도 없이 퇴근하면 어떡해?

    아빠는 얼른 이어폰을 귀에 꽂았어요.

    "아, 부장님. 자리에 안 계셔서...... 죄송합니다...... 아 네네, 회의록 팀즈에 올려뒀습니다. 네? 아 그거요? ....... 네, 다 준비해뒀습니다. 차질 없이 진행...... 아 피드백 있으시다고요? 제가 저녁에 확인해서 수정...... 죄송합니다. 급하게 나오느라...... 내일 출근해서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네, 네네...... 죄송합니다. 네, 네네, 네네, 네네, 알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네, 네네, 알겠습니다. 네, 네네......"

    아빠는 전화를 끊고 작게 한숨을 쉬었어요. 이어폰을 끼고 있었지만 부장님은 엄청 화를 냈어요. 다 들렸어요. 아빠는 앞을 보고 있었어요.    

    "아빠, 뭐 잘못했어?"

    "아니."

    "근데 왜 아빠한테 화를 내?"

    "맨날 그래."

    아빠는 저를 보고 웃고는 다시 앞을 보았어요. 아빠도 서운한가 봐요. 당연하죠. 잘못한 것도 없는데 화를 내니까. 저라면 같이 화를 냈을 거예요. 아 왜 맨날 저한테 화내요! 흥칫뿡! 아빠는 화낼 줄도 모르고 바보 같이.

    "아직도 손이 차네......"

    그만큼 추웠다고 오늘, 바보.

    "아빠."

    "응?"

    "부장님이랑 놀지 마."

    "뭐?"

    "아빠 회사에 사람 많잖아. 아빠한테 화내는 사람이랑 뭐하러 놀아?"

    "그럼 노는 척만 할게. 아예 안 놀기는 힘들어."

    "왜?"

    "회사는 그래."


    "근데, 아빠. 부장님 말야."

    "응?"

    "사춘기 아닐까? 사춘기 때는 그냥 자꾸 화가 난대."

    아빠가 빵 하고 웃었어요. 그런가 보다. 부장님 사춘긴가 보다. 이현이 말이 맞네. 하고 아빠는 계속 웃었어요. 아빠 표정이 밝아졌어요. 이제 좀 풀렸나 봐요. 다행이에요. 부장님도 사춘기 지나면 아빠한테 화를 안 내겠죠. 우유를 나눠줄지도 모르죠. 아, 은우 형한테 고맙다고 할걸. 형은 제가 우유 못 먹는 걸 몰랐을 텐데. 내일 만나면 고맙다고 할까요? 아니, 아니에요. 아직은 좀 무서워요. 형 사춘기 끝나면 말해야겠어요.

    아빠는 아직도 웃어요. 아빠가 웃으니까 저도 웃음이 났어요. 아빠 손을 꽉 쥐었어요. 아빠도 제 손은 꽉 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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