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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기 Oct 26. 2022

플레이 볼!


    박이현입니다.


    아, 인사부터 해야지. 저번에는 아빠가 알려줬었는데...... 오늘은 아빠가 같이 오지 못했어요. 회사를 빠질 수 없었대요. 그 부장님이 아직도 사춘기인가 봐요. 나 같으면 같이 안 놀 텐데,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나 봐요. 아빠도 참 힘들겠어요. 아무튼,

    "......까?*" (*안녕하십니까?)

    모자를 벗어 가슴에 대고 고개를 숙였어요. 빡빡이 삼촌도 똑같이 인사했어요. 풉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잘 참았어요. 그래도 빡빡이 삼촌 머리가 지난번보다 더 빠지지는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박이현 선수,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아! 이현 선수 나온 경기 유튜브에서 봤어요! 정말 대단하던데요!"

    헤헤... 이럴 땐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배꼽이 간질간질했어요. 머리를 몇 번 긁적긁적했더니 괜찮아졌어요. 참 신기한 거 같아요. 간지러운 데는 배꼽인데 머리를 긁으면 괜찮아지는 게. 

    "정말 굉장한 주루 플레이였어요! 출발도 좋았고 속도도 엄청나던데요? 언제 그렇게 연습을 한 거예요?" 

    헤헤...

    빡빡이 삼촌도 웃었어요. 

    헤......

    빡빡이 삼촌도 헤― 하며 저를 쳐다보았어요.

    헤. (안 되는데)

    헤? (뭐가요?)

    헤! (진짜!)

    헤?? (에이 말 좀 해 줘요~)

    알고 보니 정말 끈질긴 삼촌이지 뭐예요. 어쩔 수 없이 대답할 수밖에 없었죠. 

    "그게...... 비밀인데...... 비밀 변기 훈련이라고...... 깡! 하면 우다다다다다......"

    빡빡이 삼촌은 눈치도 빡빡이예요. 이 정도 이야기했으면 대충 알아들을 만도 한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헤― 웃고만 있어요. 

    "비밀 훈련이라, 더 이상은......" 

    아, 아아, 아하하하! 삼촌은 힘차게 고개를 두 번 끄덕이고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어요.   


    야구부에 들어간 지 아홉 달이 지났어요. 


    힘들 때요? 힘들 때도 많지만 재밌어요. 여전히 힘든 건 운동장 열 바퀴 전력 달리기 할 때, 훈련하는 중에 응가가 마려울 때, 종례 할 때 쉬 마려운 것도요. 그리고 너무 추울 때, 너무 더울 때, 너무 배고플 때, 너무 배부를 때...... 아, 간식으로 제가 못 먹는 게 나올 때도 좀 힘들어요. 잘 먹어야 큰다고 해서 지난번에 호두과자를 억지로 먹어 봤는데 한 입 먹자마자 다 토했어요. 알레르기 때문이래요. 그래도 우선은 잘 먹고 키가 크는 게 제일 중요하대요. 아빠는 177인데 자기도 고등학교 때 큰 거라고, 나도 늦게 클 거라고 걱정 말라고 하는데... 그래도 야구 선수가 되려면 키가 커야 할 것 같아요. 물론 김지찬 같은 선수도 있지만, 다른 선수들 보면 엄청 크잖아요? 그래서 열심히 먹어 보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도 요즘은 우유도 한 번에 입 안 떼고 다 마실 수 있는 정도까지 되었어요.    


    지는 건...... 속상하긴 하지만 힘든 정도는 아니에요. 야구는 잘 지는 게 중요하대요. 아무리 잘 치는 타자도 열 번 중에 서너 번밖에 안타를 못 치잖아요? 삼 할이 그런 거잖아요. 일곱 번은 아웃되는 거니까. 이길 때보다 질 때가 두 배는 많은 거니까요. 그리고 제가 못해도 형들이 있으니까. 형들이 잘하면 이기고, 그래도 지는 건...... 어쩔 수 없죠, 뭐. 그래도 솔직히 화는 나요. 지난번 대회도 그렇고......


    재밌는 건 다요, 야구 전부 다. 치고 달리고 잡고 던지고. 매일매일 해도 매일매일 재밌어요. 형들도 너무너무 좋고요. 그거 기억해요? 승겸이 형이 했던 얘기? 이 형은 전 주장이고, 이 형은 주장이고, 얘는 고추장이고, 얘는 고추야. 했던 거. 크크크. 백 번 생각해도 백 번 웃겨요. 크크크.


    "이현 선수는 아직도 야구 선수가 꿈이에요?"


    네! 제 꿈은 이정후 선수 같은 멋진 선수가 되는 거예요!

    메이저리그도 오라고 하면 한 번 가 보려고요. 비행기를 오래 타는 게 걱정이긴 하지만, 비행기 안에 화장실도 있고 밥도 준다고 해서 한 번 가 보려고요.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아도 좋고요. 1, 2라운드면 좋겠지만 11라운드 안에만 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마흔 살까지 선수하고 은퇴하고 싶어요. 이대호 선수도 마흔 살에 은퇴했잖아요. 


    "아, 그거 알아요? 이현 선수 덕분에 이 프로그램 제목이 〈내일모레는 야구왕〉으로 바뀐 거? 내일은 힘들고 내일모레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고 했었잖아요?"


    아, 진짜요? 다시 생각해 봐도 내일은 무리예요. 세종대왕도 스물두 살에 왕이 되셨으니까,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스물세 살은 되어야 할 것 같으니까요. 아빠가 왕인 것도 아니니까, 왕이 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인사 한 번......"


    "......까? 

    해진초등학교 야구부 3학년 박이현입니다. 

    저는 야구 선수가 되는 게 꿈입니다. 

    열심히,

    계속해 보겠습니다." 


    "이현아, 가자!" 

    감독님이 부르세요. 얼른 가 봐야 해요. 방송국 삼촌, 이모들에게 인사를 하고 운동장으로 뛰어 나갔어요. 


    "박이현, 파이팅!"

    운동장 가운데 멈춰 섰어요. 

    뒤돌아 보니 교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박수를 치고 있었어요.

    그 소리가 점점 커졌어요. 그 소리 말고 다른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어요. 

    갑자기 운동장이 야구장으로 바뀌었어요.

    저는 마운드 위에 서 있었어요. 

    모자를 벗어 높이 들었어요. 

    박수 소리가 더 커졌어요.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었어요. 

    심장 소리가 박수 소리보다 커졌어요. 

    크게 심호흡을 했어요.     

    

    "플레이 볼!"

  

    이제, 시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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