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다녀온 직후에는 금방이라도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상담을 하고 온 것만으로도 마음속이 상쾌해졌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3주쯤 지났을 때, 약을 먹고 있는데도 하루종일 초조하게 느껴졌다.
회사 친한 동료들과 밥을 먹고,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웃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왜 나만 사는 것이 매 순간 초조하고 짜증이 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돈을 쓰기로 했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을 막 써버리지 않는다면 회사를 다니는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동생과 함께 주말에 서울식물원에 가기로 약속하고,
그날 하루 근처 호텔까지 예약을 해두었다.
동생이 호텔 욕실에서 배쓰밤 쓰는 것을 좋아해서, 커피를 마시고 비싼 배쓰밤도 두 개나 사두었다.
그리고 주말이 되자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서울식물원에 다녀왔다.
그때는 일시적으로 또 내가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저녁에 나는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 동생은 혼자 호텔에서 배달음식을 먹으며 쉬었다.
문제는 그다음 날 발생했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1박이지만 여행까지 다녀온 덕에 내 짐과 동생의 짐이 모두 쌓여있었다.
집에 있는 빨래를 돌리고 세탁기에서 빨래가 종료된 기계음이 들렸다.
근데, 동생은 방에서 나오지 않고 친구랑 하하 호호 웃으며 전화를 했다.
갑자기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내가 낸 돈으로 모든 것을 누리고, 내 집에 와서도 동생이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닌 자신의 친구와 즐거운 세계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게 견딜 수 없었다.
통화 중인 동생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동생은 당황한 듯 전화를 끊으며 금방 자리를 정리하고 본가로 돌아갔다.
나조차도 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신과 선생님께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자, 우울증의 증상으로 쉽게 화를 낼 수도 있다고 했다.
정상적이었으면 남을 향한 배려나 여유의 역치가 높았을 테지만,
나는 우울증에 걸린 상태였기에 남 생각을 해줄 수 있는 아량이나 분노를 참을만한 역치가 거의 바닥에 가까워져 있었다.
우울증이라는 단어에 짜증과 분노라는 감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선생님의 설명으로 나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더 넓어지는 것 같아서 정신과에 가는 시간은 항상 기다려졌다.
물론 가기 전에는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 중에 무엇을 말해야 하나 고민이 되기도 하지만,
그 과정 역시 나의 한 주를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일기를 쓰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어쨌든, 그즈음에 나는 복용하던 약의 용량을 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