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좋은 걸 나만 알고 있을 수 없어서
정신과에 다니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 적이 없다.
워낙 내 탓보다는 남 탓을 하는 성격인지라, 회사에서 화가 나고 우울한 감정은 모두
'악의 축' 박팀장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또한 배가 아프고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듯이,
정신이 아프면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신과에 가기 전까지, 마음속 한편에서는 언젠가 그곳을 가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렇게 가게 된 정신과는 내 생각이상으로 좋았다.
첫 번째로는 약의 효과가 좋았다.
정신과 방문 초반에 일주일단위로 방문하면서 복통이 있는 약을 한번 바꾸었고,
다행히 두 번째 약이었던 에스시탈로프람정은 나에게 잘 맞았다.
커피를 마시면 잠이 깨는 것 같은 즉각적인 반응은 아니었지만,
꾸준한 복용은 분노와 우울감을 주체할 수 없던 나에게 평온함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이 평온함의 원천은 결국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지 않는 것인데,
약을 복용하면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우울하거나 화나는 생각을 문득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상담의 효과였다.
정신과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고 한다.
첫째는 주로 약처방을 목적으로 하기에 상담시간은 2-3분 내로 약의 예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병원.
둘째는 약처방과 상담을 동시에 진행하는 병원.
사람마다 선호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꼭 상담을 받아보고 싶었다.
상담을 통해 내가 분노하고 우울해하는 박팀장에 대한 감정이 응당한 것인지를
다 함께 일을 겪은 회사 팀원들이 아닌, 제삼자의 눈에서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싶었다.
또한, 영상매체에서만 보던 정신과 상담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침대에 가까운 소파에 편하게 앉아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하는 모습이 진짜일지도 궁금했다.
내가 진료를 받는 상담실의 풍경에 대한 첫인상은 하늘이 아주 잘 보인다는 것이다.
나의 오른편과 내가 마주한 의사 선생님의 왼쪽은 벽 대신에 바깥이 잘 보이는 여러 개의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곳에서 병원에 오지 않은 기간 동안 일어났던 일들과 그에 따른 내 감정을 말하다 보면 선생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어떤 날은 뭉게구름 사이로 새파란 하늘이 보이고, 어느 날은 빗방울이 맺힌 유리창이 보이고, 어느 날은 나풀거리는 눈발을 마주하면, 내가 가지고 있던 잡념은 아무것도 아닌 듯 순간 반짝이며 사라지곤 한다.(물론 금방 다시 생겨나기 일쑤지만)
의사 선생님에게 한주, 두 주, 길게는 한 달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선생님께서 먼저 해주시는 것은 언제나 공감이다. 그리고 내 감정은 단순히 우울함이나 분노에서 벗어나 숨겨져 있던 진짜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다.
그것은 열심히 일을 해도 인정을 해주지 않는 박팀장에 대한 서운함이나, 다면평가 결과 낮을 점수를 받았음에도 쉽게 지칠 줄 모르는 그와 회사에 대한 배신감이다. 그 이름들은 내가 가지고 있던 감정의 원인을 정확히 끄집어내고, 결국에는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인지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정신과를 간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에게 수많은 공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운이 좋아 좋은 직업을 갖게 되고 그 덕분에 스펙이 좋은 친구나 지인들에게 오랜만에 만나면 나는 언제나 "요즘 정신과에 다닌다."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 내 이야기에 놀라거나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열 명중 하나 둘 뿐이다.
나머지 여덟, 아홉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던 자신의 우울감을 호소하거나 실은 자신도 정신과에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전문직도, 고연봉의 직장인으로 칭송받는 사람들도 모두 다르지 않았다.
정신과가 무서워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겪으면서도 쉽게 가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방문을 권유함으로써, 그들이 힘든 시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을 터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이 글을 시작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