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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춘희 Mar 09. 2019

견딘다는 건 이런 거야

이탈리아_ 폼페이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중딩군', 초2 '푸린양'과 함께 떠난 글 쓰는 엄마의 겨울 여행은 오스트리아의 짧은 이야기와 이탈리아의 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나폴리 가리발디 Garibaldi역에서 기차를 타면 폼페이에 갈 수 있다. 3번 플랫폼에서 타면 된다고 역무원이 알려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가 들어왔다. 소렌토에서 나폴리로 이동할 때 타고 왔던 그 문제의 사철이다. 또 막무가내로 예의 없이 구는 10대가 있다면 이번에야 말로 본때를 보여 주겠다 벼르며 기차에 올랐다. 이번엔 기차도, 승객도 문제없었다. 문제는 우리였지. 


내릴 준비를 하고 출입문 앞에 섰는데 기차가 도착한 역은 예상치 못한 곳이다. 파란색 라인을 타고 가다 폼페이 유적지 역에 내려야 하는 우리에게, 느닷없이 나타난 낯선 역은 초록 색 라인에 있는 역이다. 뭔가 잘못됐다. 일단 기차에서 내렸다. 문제는 나폴리 가리발디 역의 3번 플랫폼이었다. 그곳엔 소렌토로 가는 파란색 라인과 포지오마리노로 가는 초록색 라인이 동시에 섰다.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우리는 소렌토행을 타야 하는데, 먼저 도착한 포지오마리노행을 타고 말았다. 역무원이 툭 던진 ‘3번 플랫폼’, 그것만을 믿고서. 


우리가 황급히 내린 곳은 보스코트레카세 역이다. 그곳은 파란색과 초록색 라인이 갈라지고 나서 정차하는 첫 번째 역이었다. 토레 안눈치아타 역에서, 파란색 라인은 폼페이 유적지 역으로 가고 초록색 라인은 보스코트레카세 역으로 향하는 것이다. 도대체 그곳에 이를 때까지 눈치 채지 못했느냐 물으면 할 말이 있다. 파란색과 초록색 라인은 무려 19개의 같은 역을 지나간다. 마음을 푹 놓고 있었고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원망은 미루고 일단 사태를 해결하자. 


역 창구로 올라갔다. 그곳엔 두 명의 동지가 있었다. 폼페이 유적지로 가려다 우리처럼 엉뚱한 역에 내리고 만 여행자 커플이. 그들이 먼저 역무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방법을 물었다. 역무원은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기차를 타고 돌아가거나 걸어가세요.”

“걸어가라고요? 폼페이 유적지까지 걸어갈 수 있어요?”

“거기까진 힘들고요. 한 번에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는 토레 안눈치아타 역까지는 걸어갈 만한 거리예요.”

우리는 잠잠히 듣고 있었다. 역무원이 팔을 휘휘 저어 방향을 알려주었다. 




동지 커플이 역을 나섰다. 우리도 뒤따라 역을 나섰다. 역 앞엔, 으레 있을 법한 택시도 버스 정류장도 없다. 

“저기요.”

그들을 불러 세웠다. 

“20분 이상 걸어야 하는 거죠? 우리 같이 택시를 타면 어때요?”

“좋아요. 요금은 절반씩 내면 되겠네요.”

커플 여자가 흔쾌히 동의한다.

“그러면 내가 역무원에게 가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할게요.”

이번엔 커플 남자가 나선다. 


그들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온 30대 여행자였다. 우리는 오리 가족처럼 졸졸 그를 뒤따랐다.

“여기는 택시를 불러주는 곳이 아니에요.”

역무원은 지나치게 단호했다. 

“택시를 불러줄 수 없다면 혹시 택시회사 전화번호를 알 수 있을까요?”

이번엔 내가 살살 달래며 물었다.

“그런 거 가지고 있지 않아요.”

역무원은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네덜란드 남자를 선두로 우리는 부지런히 걸었다. 남자가 한번, 내가 한번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 20여 분 만에 안눈치아타 역에 도착했다. 얼마나 열심히 걸었는지,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플랫폼에 나란히 선 네덜란드 커플이랑 눈을 맞추며 우리는 다짐했다.

“우리, 다시는 이런 실수 하지 않기로 해요.”

이런 일 따위,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저 커플이 있어 큰 위안이 되었다. 나만 바보 같은 게 아니었잖아!






‘대낮이었건만 빛은 희미했고 밖은 여전히 어둠침침했습니다. 건물은 심하게 흔들려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것 같았습니다. (중략) 잿더미가 무겁게 날아들더니 다시 한번 암흑이 사방을 뒤덮었습니다. 결국 암흑이 걷히고 일식 때처럼 검은 납빛을 띠고 있었지만 태양이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공포에 질린 우리 눈앞에 온 세상은 눈에 덮인 듯 재를 두텁게 뒤집어쓰고 다가섰습니다.’(‘폼페이 최후의 날’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열일곱 살 플리니우스가 묘사한 폼페이 비극의 현장이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과 폭발 이후 폼페이를 생생하게 지켜본 그는, 당시 폼페이 근처의 바닷가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과학자인 삼촌 플리니우스가 예민하게 감지한 재앙의 기운을, 삼촌이 죽은 후 청년 플리니우스가 기록했다. 


나에게 폼페이는 미지의 도시였다. 화산재에 묻혀 사라진 도시였으니 그랬고, 세상의 비극을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상징처럼 등장했으니 더욱 그랬다. ‘휴가’하면 코코넛 나무가 드리운 아름다운 해변을 떠올리고 ‘재난’하면 화산재에 파묻혀 사라진 이 도시를 떠올렸으니까. 애먼 곳에서 기운을 빼고 온 우리는 폼페이 유적지에 대한 기대가 작아져있었다. 돌아볼 기력이 빠져있었다는 게 정확하다. 



남부 겨울답게 인색하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드러난 폼페이는 영어단어 RUINS 즉 폐허라는 단어가 제격이다. 얕게는 1미터에서 깊게는 7미터까지 쌓여있던 화산재를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건물은, 남은 벽으로 간신히 공간을 구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도시의 모습은 찾아낼 수 있다. 명확하게 구분된 도로와 보도, 그 도로를 쉼 없이 지나갔을 수레의 바퀴 자국과 보도보다 낮은 도로를 건너기 위해 놓인 징검다리. 분주했을 도시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폼페이는 부자들의 휴양도시였다. 대부분의 건물이 유흥시설이었고 서민들은 휴양 중인 부자를 위해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었다. 화덕이 놓인 빵집과 길가에 테이블을 내놓은 간이식당들이 자주 눈에 띈다. 폼페이와 관련된 EBS 다큐멘터리를 보고 온 아이들은, 프로그램에서 본 식당이 이곳이었고 거기에서 본 정원은 여기였어, 하며 알은체를 한다. 온통 회색빛인 폼페이가 파란 외투를 입고 주황빛 털모자를 쓴 아이들로 조금 밝아졌다. 하지만 아이들의 밝은 기운도 어쩌지 못하는 곳에 도착하고 말았다. 폼페이 시민들의 모습을 석고로 떠서 만든 석고 캐스트가 있는 유물 보존실이다. 




1860년, 로마대학교의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 교수는 폼페이 발굴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본격적으로 발굴을 시작한 어느 날, 교수는 발굴 현장의 건물마다 알 수 없는 빈 공간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의문의 공간에 석고를 부었고 석고가 굳은 다음 주변의 흙을 떼어냈다. 그 공간에서는 놀라운 형체가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폼페이 최후의 날 죽어간 시민이 모습이었다. 화산재와 열기를 막기 위해 코와 입을 막은 채 앉아있는 사람, 뱃속의 아기를 보호하려고 엎드린 채 죽어간 임산부, 절망적인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죽은 남자, 고통스럽게 몸을 뒤틀고 있는 개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화산재에 파묻힌 지 1800년 후에서야. 


상상으로도 가늠하기 어려운 그날의 고통과 비극을 눈앞에서 마주했다. 비극의 도시를 돌아보는 여행자치고 밝고 명랑했던 우리는, 그곳에선 차마 명랑할 수 없었다. 유적지를 돌아보던 모든 여행자들도, 그곳에서만은 아! 하며 안타까운 탄식을 토해냈다. 그렇게 발굴된 폼페이 시민의 주검은 2천여 구에 달했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리는 유적 사이를 천천히 걸어 서기 1세기 로마에서 21세기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한겨울임에도 기차역은 여행자로 가득하다. 폼페이라는 이름이 가진 명성이 실감 난다. 하루 평균 7천여 명의 관광객을 견뎌내고 있는 이 유적지는 지금의 모습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햇빛과 비, 바람이라는 자연을, 곳곳에 자리 잡은 풀과 이끼를 그리고 끊임없이 딛고 만지고 두들겨보는 사람들을,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야외 유적지인 데다 관리인도 거의 없으니, 실제로 주머니에 넣을 만한 크기의 작은 조각이나 유물들은 모두 사라진 상태라고 한다. 어떤 이는 벽화의 일부를 떼어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손잡이를 떼어가기도 한단다. 폼페이 역으로 걸어가며 우리는, 상상 속의 도시를 돌아본 소감과 그 도시를 돌아본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가치 있는 거래.”

때때로 중딩군이 괜찮아 보일 때가 있다, 바로 지금 같은 때.

“저 강아지 달린 냉장고 자석, 사야겠다!”

때때로 푸린양이 우리 이야기를 통 듣지 않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지금 같은 때. 


베수비오 산 아래, 까만 개가 대롱대롱 매달린 모형의 냉장고 자석을 사들고 나폴리행 기차에 오른다. 폼페이 유적지가 빗속에 남겨졌다. 2천 년을 남아있었듯 2천 년 후에도 남아있기를 바란다. 비도, 눈도, 바람도, 사람도 견뎌내기를.



나폴리행 사철에서 마주한 막무가내로 예의 없는 10대에 관한 이야기는 

<글쓰는 엄마의 이탈리아 여행법>_'친절한 그들이 사라졌다' 편에 실려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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