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오브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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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시한부 판정을 받던 그날. 난 엄마의 손을 꼭 쥐고서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렸다. 끈이 예쁘게 묶인 구두와 키순으로 정리된 책장, 4월에 맡을 수 있는 꽃향기와 색깔별로 진열된 옷가지들, 뽀송뽀송한 새양말 그리고 투박한 엄마의 손을. 그런데 어떡하죠. 마리아. 그 무엇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네요.
My Favorite Things
심각해 보이던 의사는 진료실로 들어선 엄마와 나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담낭암 4기입니다.
엄마의 마지막 병마는 담낭암이었다. 지금껏 엄마를 괴롭혀오던 병마들에 이어 또다시 병마라니. 이럴 때일수록 좋아하는 걸 떠올리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마리아가 그랬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더라. 반평생을 아프고 아프게 살던 엄마는 나를 보며 곧잘 웃었다. 그래도 내가 있어 좋다면서. 그리고 그날은 나를 보며 울었다. 어떻게 너를 두고 가냐고. 나를 위해 병마와 싸우는 엄마를 봐서라도 나는 겁먹지 않기로 했다. 바로 그 순간 가장 겁이 나는 사람은 엄마였을 테니 곁에 있어줄 내가 겁을 먹으면 엄마는 얼마나 더 무서울까란 생각에 두려움을 숨기고 용감한 척 엄마의 손을 꼭 쥐고 섰다. 엄마가 나에게 기댈 수 있도록 자세도 올바르게 고쳐 섰다. 그때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엄마가 내 곁에 있다는 거고 따듯한 온기를 지녔다는 거고 부드럽게 숨을 쉬고 있다는 거. 그게 다였다. 그러니 난 엄마를 느끼며 손에서 손으로 온기를 더해주고 듬직한 숨을 더해주면 된다고. 벌써부터 지치지 말자고. 슬퍼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주변에 내색하지도 말자고. 마치 내가 엄마를 놓아버린 기분이 들 테니 그런 거 싫다고. 끊임없이 재생되는 무서운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어도 어떻게든 끊어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뒤로 나는 주변을 좀 더 생기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잠겨도 될 슬픔에는 더 슬픈 노래가 제격이지만 이겨내야 할 슬픔에는 생기 가득한 노래가 응원이 된다. 영화도 같았다. 엄마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새벽 늦게 돌아온 집에 앉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틀었던 기억이 난다. 본트랩가의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부르는 마리아의 노래는 무척이나 힘이 된다. 배우 줄리 앤드류스의 다정다감한 목소리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엄마는 가끔 배우 비비안 리가 나오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다시 보고 싶다 했는데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굳센 엔딩이 무척 좋다 그랬다. 지금 우리가 함께였다면 나는 엄마에게 무슨 영화를 보자 했을까. 그래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틀었겠지. 붉게 타오르는 영화보다 싱그러운 초록의 영화를 보여주고 싶으니까. 그럼 엄마는 마리아를 따라 노래를 흥얼거렸을 테고.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는 노래를 곧잘 따라 부르곤 했다. 그럼 나는 영화에서 마리아가 부르는 'I Have Confidence'를 되감고 또 되감아줬을 거다. 지금 엄마에게 꼭 필요한 노래라면서 몇 번이고 반복했을 거다.
Each step I am more certain Everything will turn out fine
하나씩 분명히 해 나아가면 모든 일이 잘될 거야
I have confidence the world can be mine
세상이 내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져야 해
이토록 자신감 넘치는 영화를 엄마와 함께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리아가 불러주는 활기찬 노래를 엄마와 같이 흥얼거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그럴 수 없으니 혼자 영화를 보며 웃는 이 시간에 어디선가 엄마도 웃고 있기를 바란다. 더 이상 나는 그 장면에서 마리아처럼 활기가 샘솟거나 자신감이 넘치지 않는다. 그래도 응원이 된다. 응원에 힘입어 함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으면 마리아의 목소리가 마치 엄마인 것처럼 들린다. 꿈속에선 들을 수 없던 엄마의 목소리가 영화에서 들려오는 기분이다. 본트랩가의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에서도 나는 엄마가 들린다. 어린 시절 엄마가 자장가처럼 읊어주던 성모송이 들린다. 다시 그걸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랜 세월 불면에 시달리는 나에게 치료약이 있다면 그건 엄마의 성모송이 유일하다. 엄마가 읊는 성모송은 마치 부드럽고 포근한 베갯잇 같아서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떼쓰고 나면 스르륵 잠이 들었다. 특히 엄마가 '여인 중에 복되시며'를 읊을 때가 가장 좋았다. 엄마가 말하는 '여인'에는 거룩함이 깃들어 있었다. 거룩한 기운으로 나의 잠자리를 지키던 여인. 그 여인은 이제 내 곁에 없다. 그렇게 나의 단잠은 엄마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정말 다행인 건 그럴 때마다 마리아는 응원에 이어 위로를 보낸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천둥소리에 겁먹은 아이들을 위해 마리아는 또다시 노래를 부른다.
Silver white winters that melt into springs
봄으로 녹아가는 하얀 은빛의 겨울
These are few of my favorite things
이런 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지
엄마와 함께 시한부 판정을 받던 그날. 난 엄마의 손을 꼭 쥐고서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렸다. 끈이 예쁘게 묶인 구두와 키순으로 정리된 책장, 4월에 맡을 수 있는 꽃향기와 색깔별로 진열된 옷가지들, 뽀송뽀송한 새양말 그리고 투박한 엄마의 손을. 그런데 어떡하죠. 마리아. 그 무엇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네요.
'My Favorite Things'은 내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데 그날따라 별 효력이 없었다. 그저 내 손을 꼭 붙든 엄마의 손만이 나를 지탱할 뿐 내가 좋아하는 그 많은 것들은 힘이 되어 주지 않더라. 그리고 엄마가 떠난 그해 첫 여름날 마리아는 여느 때처럼 나에게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불러 주었다. 장미 꽃잎과 따뜻한 양털 장갑을,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던 봄으로 녹아가는 하얀 은빛의 겨울을. 눈이 사르륵 녹아가는 겨울의 끝자락에 엄마는 봄님이 오신다며 활짝 웃곤 했다. 그날 마리아의 노래에는 엄마의 웃음기가 서려있었고 그때부터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로 그 노래를 채워갔다. 푹신한 연분홍 솜 이불과 깨끗하게 씻어둔 식기, 꿀을 탄 믹스커피와 바람에 나부끼는 커튼, 포슬포슬한 찐 감자와 갓길에 가득 핀 개나리꽃. 이런 게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이지.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이야말로 나의 슬픔을 달래주는 것들이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마리아.
얼마나 돌려본 지 모른다.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들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 날이면 들었고 엄마의 활짝 웃는 모습이 보고 싶은 날이면 봤다. 그렇게 엄마가 떠나고 가장 많이 본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엄마는 이제 영화가 되었다고. 내가 보고 싶을 때마다 계속해서 꺼내 볼 수 있는 영화가 되었다고. 그러니 이제 좀 덜 슬퍼할 수 있게 됐다.
I simply remember my favorite things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간단하게 기억해 내면,
and then I don't feel so bad
그땐 난 슬프지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