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의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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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휴가
엄마. 다 나으면 뭐 하고 싶어?
아들이랑 여행 가고 싶어.
공항에서 엄마는 그런 말을 자주 했어. 다 나으면 나랑 여행을 가고 싶다고.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상관없다고도 했어. 그럼 내가 몇 번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아. 그럼 엄마. 우리 병원 가지 말고 비행기표 바꿔서 어디 딴 데라도 다녀올까. 엄마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 대답했지. 나중에. 엄마 좀 괜찮아지면 나중에. 그냥 그때 떼를 써서라도 엄마를 데리고 어디든 다녀올 걸 그랬어. 나 참 바보 같다. 그치. 엄마. 난 왜 그때 그걸 못해서 지금도 이렇게 울고만 있을까. 울기 싫은데 자꾸 울어. 이제 우는 것도 미안할 지경이야. 자꾸 울어서 미안해. 엄마.
영화 [3일의 휴가]를 보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혹시 엄마가 옆에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 엄마는 요리도 잘하고 화분도 잘 키우고 말도 예쁘게 하니까 어쩌면 하늘에서 3일 동안 휴가를 받아 나를 보러 오진 않았을까. 엄마는 매번 내 자취방 한번 들리지 못한 자신을 탓했잖아. 하긴. 옛날부터 엄마는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 이부자리 말이야. 내 이부자리 한 번을 챙기지 못했다고. 도대체 무얼 덮고 무얼 베고 자는지 물으면서 전기장판은 싸구려 사지 말고 꼭 좋은 거 사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했지. 근데 엄마. 엄마가 써보니 좋다고 보내준다던 황토매트 같은 좋은 전기장판은 사지 못했어. 이사 갈 때마다 짐일 것 같길래 마트에서 산 3만 원짜리 싸구려로 한 10년은 버틴 것 같아. 화가 잔뜩 난 엄마 목소리가 들리네. 그러게 보내준다 할 때 받지 잘 하는 짓이라고. 근데 그땐 정말 싫었어. 난 엄마랑 취향이 많이 다르잖아. 제주도 집에 내려가면 엄마가 고른 이불들 보면서 촌스럽게 이게 뭐냐 했던 거 기억하지. 속옷이랑 양말도 그래.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시장에서 좋아 보이는 거 하나씩 사서 보내줄 때마다 제발 이런 것 좀 보내지 말라고 내가 엄청 뭐라 그랬잖아. 그럼 엄만 또 그러겠지. 이게 그렇게 따듯하대. 이게 그렇게 시원하대. 내가 혼자 있으면 더운지 추운지 챙기는 건 엄마밖에 없었는데. 나 좀 야박했네. 근데 엄마 힘들까 봐 그런 것도 있어. 시장에 찬거리 하나 사러 다니는 것도 힘들어하는데 내가 엄마한테 이거 좀 보내달라 저거 좀 보내달라 하기 그렇잖아. 그래도 매번 김치는 보내달라 했던 이유는 엄마도 알지. 나 엄마 김치 진짜 좋아하잖아. 그리고 내가 김치 떨어져서 보내달라 했을 때 엄마가 했던 말 아직도 기억나.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엄마가 그때 나한테 그랬다. 아들이 엄마한테 해달라 한 것 중에 딴 사람들은 못하는 거니까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꼭 해야겠다고. 그래야 엄마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사실 엄마. 엄마 시한부 판정받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뭔지 알아? 냉장고에 있는 김치를 비우는 일. 그거였어. 이제 엄마 김치 먹을 수가 없는데 아직 남아있는 엄마 김치 먹을 때마다 울 것 같으니까 빨리 다 먹어야겠다고. 김치 볼 때마다 매번 울 순 없잖아. 그래서 매일같이 김치 요리를 해먹었어. 빨리 줄더라. 그럼 엄마가 병원 진료 기다리다 말고 귀신같이 물어봤다. 김치 남았냐고. 그때마다 거짓말했어. 아직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이제는 잘 사 먹어. 사 먹는 것도 맛있더라. 엄마 김치만 못하지만. 엄마 가고 한번은 이모가 김치 보내주겠다고 전화가 온 거야. 내가 괜찮다 했는데도 끝까지 보내주겠다 하길래 거절만 하는 것도 못할 짓이라 보내달라 했어. 세상에.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에 손질도 안 된 김치를 여덟 포기나 보낸 거야. 나 원룸 사는데. 그 많은 김치 넣을 냉장고 자리가 어디 있다고. 고마운데 너무 화가 나더라. 이걸 나보고 어쩌라고 도대체 이렇게 보낸 걸까. 뭐 그런 이기심 어린 화 말이야. 내가 엄마한테 자주 내비치던 그런 화. 근데 엄마. 그때 나 펑펑 울었다. 엄마가 얼마나 나를 생각했는지 느껴져서. 엄마는 그 아픈 손으로 김치를 나 먹기 편하라고 작게 썰고 통 여러 개에 옮겨 닮고 익혀 먹기 좋게 어떤 건 비싼 숙성 팩에다가 포기김치를 몇 덩이 담고 그렇게나 정성스럽게 포장했잖아. 난 매번 고맙다는 말도 안 하고 그저 잘 받았단 말만 했는데. 나 왜 그렇게 매정했을까. 하긴. 내가 엄마에게 매정했던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엄마. 나 우느라 제대로 보지 못한 장면이 하나 있다. 영화에서 엄마가 딸 자취방에 찾아갔다가 다투기만 하고 나오는데 늦은 시간이라 어디 갈 데가 없는 거야. 그래서 밤늦게까지 여는 맥도날드에 들어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시키고 자리에 앉는다. 그러고는 점원한테 가서 부탁을 하나 하는 거야. 딸한테 자기 집 가는 기차 잘 탔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문자 하나 남겨달라고. 우리도 그랬지. 엄마. 나 사실 그때 엄마 봤다. 공항 롯데리아 말이야. 내가 일이 너무 늦어져서 엄마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번 못 챙긴 적 있잖아. 그때 택시 기사님이 도와주셔서 탑승수속장까지 겨우겨우 가서 엄마 혼자 휠체어 빌리고 그랬잖아. 일하는 내내 속이 타들어가는데 엄마는 전화로 계속 괜찮다 괜찮다 하다가 내가 비행 시간 바꿀 테니까 좀 기다려보라는데 엄마는 번거롭게 뭐 하러 그러냐고. 혼자 갈 수 있다고. 그러면서 곧 비행기 탈거니까 오늘은 공항으로 오지 말고 퇴근하면 그냥 집에 곧장 가라고 말이야. 근데 나 그때 공항 갔어. 엄마 걱정돼서 살 수가 있어야지. 지하철 타고 김포공항으로 가는데 이번에는 엄마한테 문자가 왔어. 휠체어 서비스 신청하면 항상 도와주시는 항공사 직원분한테 부탁해서 문자하는 거라고. 자기 이제 비행기 잘 탔으니까 푹 쉬라고 말이야. 나도 집에 잘 도착했으니까 엄마도 제주 잘 도착하면 전화 달라고 보내놓고 일단 공항에 내렸어. 엄마도 참 바보지. 지하철에서 내리면 공항 들어가는 길에 비행 스케줄 다 볼 수 있는 거 엄마는 몰랐지. 엄마 타고 갈 비행기 지연이라 아직 공항이던데. 괜히 나 걱정 안 시키려고 엄마 거짓말했잖아. 엄마는 그때 공항 롯데리아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쥐고 휠체어에 앉아있었어. 많은 여행객들로 붐비는 그곳에서 엄마는 가만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어. 엄마 보자마자 달려가려고 했는데 나 너무 울어서. 계속 울어서. 나 울면 엄마도 우니까. 이제 그만 뚝 그치고 엄마한테 가려고 했는데 계속 울어서. 정말 다행히도 그때 항공사 직원분이 이제 비행기 탄다고 엄마에게 다가가더라. 녹아버린 아이스크림 주변 닦으라고 냅킨도 챙겨주시면서. 휠체어에 앉아 항공사 직원분에게 몸을 맡긴 엄마를 보면서 생각했어. 엄마는 저 롯데리아에 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 비행기 탑승까지 남은 그 긴 시간 동안 항공사 직원분에게 부탁해 나에게 문자를 보내고 롯데리아 직원분에게 부탁해 아이스크림을 사고. 그 뒤로 오랜 시간 혼자 휠체어에 남겨졌을 엄마를 생각하니까 눈물이 멈추지 않더라. 아마 그때 나 공항 1층 화장실에서 엄마 제주도 도착할 때까지 계속 울었던 것 같아. 너무 미안해서.
엄마. 혹시라도 엄마가 정말 3일간 휴가를 나와서 나를 보러 온다면 그땐 이런 기억들 꺼내보지 마. 엄마 울리기 싫다. 그냥 나 잘 먹고 잘 자고 그런 것만 보다 가. 알았지? 그리고 지금 사는 내 원룸 그렇게 작지 않으니까 곁에서 한숨 자고 가. 이불도 좋은 거 깔아둘게. 그리고 가끔 내가 엄마한테 심한 부탁하잖아. 나 좀 데려가라고. 물론 지금도 난 엄마가 나를 데려갔으면 해. 그럼 엄마 마음 아플 거 다 아는데 그래도 나 좀 데려갔으면 싶어. 혹시라도 나 이럴 때 휴가 나오면 그냥 엄마 아들 좀 힘든가 보다 하고 꼭 안아줘. 지금은 그거면 될 것 같아.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