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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가 Aug 29. 2024

무해한 추억

원더풀 라이프




17

나는 누군가에게 행복이었던가.

어쩌면 나는 아무도 아닌, 무해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요즘 들어 자주 하는 생각 하나.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엄마에게도.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무해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하루는 행복이었고 하루는 불행이었고 어쩌면 평생 엄마의 사랑이었다. 그래. 나는 엄마의 행복이었다기 보다 사랑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엄마의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영화 [원더풀 라이프]가 물었다.

이영희씨 맞으시죠.

네.

먼저 생년월일부터 말씀해 주세요.

1954년 8월 17일생입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이영희씨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조의를 표합니다. 이곳에 오시면 일주일간 계시게 되는데 그동안 이영희씨가 하실 일이 하나 있습니다. 살아오시면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추억 딱 하나만 선택해 주세요. 선택하신 추억은 저희 직원들이 영상으로 재현해 드립니다. 토요일에는 그 영상을 관람하시게 됩니다. 그 추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난 순간 그 추억만을 가슴에 안고 저세상으로 떠나게 됩니다.


엄마의 추억을 재현해 줄 당신들에게 부탁이 하나 있다면 행여 아들과의 추억을 고른다면 재고해달라고. 이영희씨의 더 좋은 추억을 꺼낼 수 있도록 설득해달라는 것이다. 나는 엄마의 마지막 추억이 되어선 안 된다. 결코 그 추억만을 가슴에 안고 저세상으로 떠나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엄마가 아프지 않았으면 하기에 말리고 또 말려야 한다. 나 태어나고부터 엄마는 아팠다. 끊임없이 아팠다. 나는 엄마의 사랑으로 태어남과 동시에 아픔이 되었다. 엄마가 아파서 아들에게 주지 못한 것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을 때면 끝맺음은 항상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단 거였다. '아들의 입학식을 갔더라면'부터 '졸업식을 갔더라면'까지 아들의 큰 성장들에 엄마가 참여하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라 그랬다. 내가 괜찮다 해도 엄마는 미안하다 그랬다. 군대에 갔을 때도 그랬고 서울로 상경했을 때도 그랬다. 내 성장의 시간들은 엄마에게 한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엄마의 행복이 될 수 없으며 엄마의 마지막 추억은 더욱이나 될 수 없다. 


엄마의 추억은 나 태어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꽃다운 처녀 때였으면 한다. 엄마 처녀 때는 멋진 남자들이 주변에 많았지. 엄마 처녀 때는 네 외할아버지랑 꽃구경을 다녔지. 엄마 처녀 때는 아들보다 예뻤지. 그렇게 얘기할 때면 엄마는 수줍게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나는 그런 엄마의 표정이 좋았다. 사랑스러웠다. 그러니 행여 나 때문에,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마지막 추억을 고르지 말았으면 한다. 엄마는 엄마를 위한 추억을 골랐으면 한다. 그래서 엄마의 결혼 이전의 사진첩을 뒤졌다. 벚나무 앞에 다소곳하게 앉아 사념에 잠겨있는 모습도 있었고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서 봄바람을 맞이하는 모습도 있었다. 옅은 미소를 띤 당신은 그때 행복했는지요. 사진을 두고 한참을 되물었다. 엄마는 빛바랜 사진 속에서 일렁일 뿐이었다. 비디오가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돌려 볼 엄마의 비디오가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추억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는 와타나베씨에게는 인생을 되감기 해서 볼 수 있는 비디오가 주어졌다. 엄마의 시간을 돌려볼 수 있는 비디오가 나에게도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비디오를 돌려보고 있을까. 아니. 엄마는 내가 무엇을 물어보면 바로바로 답을 주던 그런 사람이었다. 엄마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이었고 좋아하는 것을 물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니 소중한 추억 하나를 고르라 했을 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을 거다. 볼 수만 있다면 나도 그 추억을 보고 싶다. 엄마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한때를 나도 정말 보고 싶다.


생각해 보니 나는 자주 물었었다. 엄마가 가장 행복한 때는 언제야. 그러면 엄마는 말했다. 엄마가 차려준 밥을 아들이 먹을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아들 입에 밥 들어갈 때면 싹 잊히거든. 그래서 엄마는 아들과 함께 앉아 밥을 먹는 일이 가장 행복하다 그랬다. 정작 당신은 밥을 한술도 뜨지 않고 그저 나를 지켜보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중에서도 엄마는 나 어린 시절 햄버거를 사다 준 얘기를 재미있게 하곤 했다. 엄마가 잠깐 다니던 식당 옆에는 맥도날드가 있었다. 엄마는 퇴근길에 그곳에서 아들이 야참으로 먹을 햄버거를 하나씩 사 오곤 했다. 그 시절이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엄마는 아파서 다니던 일을 또다시 그만둬야 했고 병원으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아마 그 시절은 한두 달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때 그 시절에 엄마는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햄버거를 사들고서 바삐 걸었던 그 밤거리가 정말 좋았어. 집에 가면 엄마를 기다리는 아들이 있었거든. 

그래도 엄마. 

그 밤거리의 추억을 선택해선 안돼. 

그건 내가 허락할 수 없어.


엄마의 사진 중에서도 내가 아끼는 사진이 하나 있다. 그건 엄마가 하얀 풍선을 쥐고서 계단 아래 멀찍이 서있는 사진인데 보관을 잘못했는지 아랫부분이 잿빛으로 그을었다. 엄마에게 물었더니 시내를 다녀오는 길에 외할아버지가 찍어준 사진이라 그랬다. 엄마에게 아빠가 있던 그 시절이 엄마는 자주 그립다고 했다. 어쩌면 그날이, 그날이야말로 엄마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아늑해졌다. 엄마는 하얀 블라우스에 황갈색 롱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계단 위쪽으로는 몇몇 남학생들이 지나치고 있었고 엄마는 계단 밑에 서서 흰 풍선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사진 너머에서는 외할아버지가 엄마에게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겠지. 내 딸 너무 예쁘다. 그러고는 하나 둘 셋 김치. 사랑을 주기보다 사랑을 받던 그 시절의 엄마. 엄마는 그 소중한 추억을 들고 저세상으로 떠났을 거다. 그래. 분명 그럴 거다.


이제 엄마는 소중한 추억을 떠안고 저세상으로 갔다. 내가 그곳에 언제 당도할지는 모르겠지만 무해한 사람으로 살아가고픈 지금 나로서는 유감스럽게도 소중한 추억을 고를 순 없을듯하다. 타카시(이우라 아라타)처럼 그곳 직원으로 일하며 소중한 추억을 하나하나 재현해 주는 무해한 사람. 그런 시간이었으면 한다. 그러고는 그 수많은 필름통 중에서 이영희씨의 소중한 추억을 찾아보겠지. 바로 틀어보진 못할 것 같다. 한동안 그 필름통을 끌어안고서 전전긍긍해할 테니까. 행여 내가 엄마의 소중한 추억이었을까 봐. 마지막 행복이었을까 봐. 이렇게 쓰면서도 정작 내가 엄마의 마지막 추억이 아니란 걸 맞닥뜨리게 된다면 슬픔이 들어찰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그 슬픔을 택하겠다. 택해야만 한다. 

마지막 추억을 필사적으로 찾던 직원 타카시는 자신이 누군가의 마지막 추억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근무를 끝마치고 저세상으로 떠난다. 나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엄마의 그 마지막 소중한 추억이 무엇인지. 무엇을 안고 떠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만약에 그게 나라면 나는 될 수 없다. 무해한 사람이. 나 태어나고부터 엄마는 많이 아팠다. 끊임없이 아팠다. 나는 엄마의 사랑이자 아픔이었다. 엄마의 사랑이 그 무엇보다 거대했듯 아픔 또한 거대했다. 난 그 거대한 아픔을 거둬야겠다. 언젠가 내가 그곳으로 올라가 직원이 되고 엄마의 필름통을 꺼내봤을 때 이영희씨의 소중한 추억이 엄마로서 사랑을 주던 시절이 아닌, 딸로서 사랑을 받던 시절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그땐. 나는 진정으로 무해한 사람이 되어있겠다. 어쩌면 나는 필사적으로 엄마의 행복을 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그 무해한 순간을 나의 마지막 추억으로 고르겠다. 정말 멋진 일이다. 


끝내 그 필름통에 엄마와 내가 담겨있더라도 나는 결국 그걸 고르겠지.

내가 누군가의 행복이었단 걸 알았어 그건 정말 멋진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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