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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 Jan 28. 2023

[호찌민 한 달 살기]남의 나라에서 집 구하기

자발적 월세살이

남동생의 초청(?)으로 가는 거긴 했지만, 남동생 집에는 이미 남동생과 올케, 조카까지 세 식구와 남동생의 장모님까지 살고 계셔서 사실상 우리는 집은 따로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찌어찌 같이 살면 살 수 있다고 오라고는 했지만, 우리 애들을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ㅋㅋ. 우리 집에서도 손님 같은(?) 내 자식들이 남의 집에서도 행여나 폐를 끼칠까 봐 집은 따로 구해서 살겠다고 했다. 나 역시 한 달이나 되는 시간을 남의 집에서 살 자신도 없었거니와.

그래서 한 달간 집을 구해서 살 것을 디폴트로 계획했는데, 겨울캠프 등록이 결정되면서, 남동생이 갑자기 카톡이 왔다.

"누나, 겨울캠프 날짜를 보니 시작하는 날부터 나 빼고 2주간 다 한국가. 우리 집에서 지내면 되겠네"


아, 이 무슨 또 우연인가. 돈 굳는 소리가 청명하게 들린다. 하하 신이 돕는구나.


알고 보니 몇 달 전부터 한국행을 예약했던 올케와 조카의 비행기 스케줄이 마침 내가 호찌민에 입국하는 날이었다. 마치 우리를 피해, 아니면 내가 쫓아낸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소름 돋는 일정이었다.


그 덕에 2주간의 집세를 아끼게 되었고, 첫 정착에 대한 걱정을 한시름 내려놓게 되었다. 20살 이후 동생과 한 번도 같은 집에 살아본 적이 없는데, 그래도 2주간은 저녁에 맥주도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할 수 있겠고 15년 주부경력으로 쌓은 집밥도 차려줄 수 있겠구나. 아이들도 바쁘지만 밤에는 잠깐이라도 삼촌과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잘되었다 싶었다.

무엇보다도 걱정 많은 남편이, 가장 안심하게 된 부분이었다.


일단 그렇게 2주는 남동생 집에서 얹혀살기로 하고, 나머지 2주는 어쨌든 나가 살아야 하는 상황.

미리 집을 구해놓고 가야 할 것 같아서 동생에게 몇 군데 추천을 요청했더니, 아주 씸플 하게 대답해 주었다.


1) 2군 vs 7군

"학교 가깝고, 외국느낌 나는 기분으로 살고 싶으면 2군, 우리 집이랑 가깝고 깨끗하고 한국친화적인 분위기에서 살고 싶으면 7군!" 남동생이 준 답변이었다.


그 말의 뜻을 호찌민에서 2주 정도 지난 후에야 실감했지만, 사실 가기 전엔 2군이 뭔지 7군이 뭔지.. 감이 안 잡혔다. 다만 나는, 외국느낌 나는 분위기로 살고 싶긴 했지만(거기선 나도 외국인이니까) 남편이 이 한달살이를 지지해 주는 조건이 단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남동생 집 근처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치안이나 여러모로 걱정되는 부분이 많고, 엄마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외국에 가는 것이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남동생과 5분 거리에 거주할 것이 남편이 요청한 유일한 조건이었다.

그래, 사실 코로나로 2년남짓 못 본 남동생과 조카를 보러 가는 이유도 있는데 매일은 못 보더라도 있는 동안 자주 보고 오려면 남동생집 근처에 있는 게 맞겠다 싶어, 일단 나는 7군으로 정했다. 아니 정해졌다.


7군으로 이야기하면 푸미흥이라는 동네를 중심으로, 코리아타운이 조성되어 있는 동네다. 나중에 가서 정말 몇 번이고 놀랐는데, LA는 안 가봤지만 LA 코리아타운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다. 경기도 호찌민시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어떤 도로는 한 블록이 다 한국식당이며, 여간한 베트남직원들은 간단한 한국말이 가능하고  카카오톡으로 예약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다. 나는 실제로 부동산과 집 구할 때도 베트남직원이랑 한국어로 모든 계약을 마쳤다.

게다가 한국어로 된, 한국음식 배달앱까지 있어서 넓적 당면을 추가해 마라탕도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완벽한 한국친화동네.


2) 방 2개, 하루 50불 수준, 수영장이 있는 단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그렇게 7군을 선택하고 아고다, 에어비앤비에서 적당한 집들을 서치 했다. 조건은 하루 50불 이내, 방 2개, 수영장이 있는 곳, 딱 3가지.

블로그에서 호찌민 한 달 살기를 다녀온 다른 가족의 포스팅을 검색해 보니, 숙박비를 많이 지불했다고 하는 분도 1500달러를 넘기지 않는 걸로 봐서는 3 가족 한 달 살기의 적정한 하루 숙박비를 50불 정도로 잡았다. 물론 정말 하루 20달러에 저렴한 집들도 있지만, 아이 둘을 데리고 살아야 하니 어느 정도의 쾌적함과 방 2개를 갖춘 공간을 갖춘 하루 50불 선으로 조건을 좁혔다.


다행히 조건이 명확해지면서, 선택지가 3-4군데로 좁혀졌다. 남동생 집에서 5분 거리의 "시닉빌리"라는 대단지가 가장 매물이 많았다. 1층에 큰 규모의 수영장이 있었고, 50-60불 선의 가격대, 바로 앞에 마트가 있는 대형몰이 있으며 한국마트가 있다는 편의성 덕분에 1순위로 정해졌다.


3) 아고다 vs에어비앤비 vs현지 부동산

아고다, 에어비앤비 모두 매물은 많았지만 정말이지 사진만 봐도 천지차이였다. 어떤 곳은 너무 중국식으로 대따시만 한 빨간 꽃이 그려진 화려한 벽지였고 (난.. 이러면.. 머리 아파서 못살아..) 어떤 곳은 딱 봐도 집은심플한데 모든 집기들이 너무 엉성했고, 어떤 집은 굉장히 좋아 보였는데 리뷰를 보니 사진과 다르다는 사람도 많으니 점점 불안해졌다.

이런 큰 단지의 경우는 에어비앤비만 돌리는 집들도 많아서, 사진과 다른 집으로 배정되는 경우도 많고 복불복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무던한 편이긴 해도 2주간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일상처럼 지내야 할 집인데, 있는 동안만큼 내 집처럼 편히 지내고 싶었다. 행여 나의 집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도 플랫폼을 거쳐서 의사소통이 늦어질까 봐 걱정이 되는 맘도 있었다. 그래서 집은 확실하게 보고 결정해야겠다 싶어서  네이버에 나와있는 한국어가능한 현지 부동산에 연락을 해보았다.

현지에서 예약가능한 매물의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복불복의 위험은 낮췄다. 금액도 다른 플랫폼과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현지에 도착하면서 직접 가서 보고, 당일에 계약을 치르기로 이야기를 했다. 사실 이 부분은 내가 2주 정도 동생집에서 지내게 되어 집을 보러 갈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인데 가능했긴한데, 바로 집을 먼저 구해서 와야 하는 분들은 이게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현지부동산을 통해서 집을 구해보는 방법도 있으니 이 부분은 참고만 하시면 좋겠다.


그렇게 남동생집에서 2주간 얹혀살기와 2주간의 남의집살이로 가닥을 지었다. 내 집도 대출이자를 꼬박꼬박 내고 사는데, 남의 나라까지 가서 집세 내며 살러가니, 나 진짜 뽕뽑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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