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자 우리, 아프지말고
여행을 온 부모님을 모시고, 또다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호찌민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의 붕따우라는 작은 해안도시로.
동남아에 왔는데, 그래도 동남아식 휴양은 해야 하지 않겠어?
사실 붕따우로 결정하기까지는 동생과 많은 고민이 있었다. 붕따우가 호찌민에서 2시간 거리라는 메리트는 있었지만 나조차도 처음 들어본 붕타우라서, 괜찮나? 볼만한 게 있나 좀 의심스러웠다. 제아무리 휴양이라지만 그래도 아무래도 알만한 곳, 다낭 같은 휴양지정도 가줘야 엄마아빠도 만족스러워할 것 같았고.
그래서 다낭을 가볼까 싶어 타당성을 검토해 봤는데 호찌민에서는 비행기로 국내선으로 1시간 거리여서 그리 부담스러운 거리도 아니었고, 우기라 그런지 리조트도 너무 저렴했지만 8명이서 움직이기엔 비행기값이 너무 아쉬웠다. 좋은 리조트가 1박에 10만 원선인데, 1인당 항공료가 왕복 20만 원선이니.. 하늘에다 돈을 뿌리고 오는 여정이 될 것 같았다. 그 돈으로 더 좋은 리조트나 더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 하지만 정작 다낭을 포기하게 된 건, 날씨였다. 2주 전에 푸꾸옥( 다낭 보다 남쪽)에 다녀온 언니조차, 날이 서늘해서 물에는 잠깐 들어갔었고 구름 낀 하늘이 계속되었다고 한사코 비추를 하였다. 다낭 일기예보는 몇 주째 계속 비소식. (우리가 아는 쨍한 다낭은 5-10월 사이의 건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스타에 다낭으로 검색해 보니 바나힐에서 안갯속에서 고생한 사진들만 잔뜩이길래. 다낭은 깔끔하게 포기.
어쨌든, 휴양지는 날씨가 좋아야 하니까. 천국의 날씨 같은 지금 호찌민의 날씨를 놔두고 굳이 비 오는 다낭을 갈 이유가 없지. 그렇게 가기 며칠 전까지 고심하다가 붕따우로 결정! 명분보단 실속이지. 이름이 좀 촌스러워서 그렇지, 붕따우도 좋다고!
70대 노인 2명, 미취학아동 1명, 10대 아이 2명과 함께 하는 대가족 여행.
자유여행, 혼자여행 좋아하는 나로서는 여러모로 정말이지 큰 챌린지였다. 취향, 성향, 입맛 모두 다다른 이 모든 8명을 데리고 우리 즐겁게 다녀올 수 있겠지? ㅎ인원을 감당할 대중교통수단이 없어 1박 2일 기사님 포함한 미니 버스까지 대절해서 출발하는 여행. 우리 부디 재미있게 지내다 와요.
전날 2시까지 달려서 숙취와 피곤에 절었지만 그것은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준 숙제 아니겠는가. 겸혀히 받아들이고 쏟아지는 하품을 참아가며 아침에 부랴부랴 모든 짐을 싸서 엄마아빠, 아이들까지 챙겨 붕타우로 떠났다.
엄마껌딱지인 조카가 형아(준서)에 딸싹 달라붙어 가는 내내 쫑알거리는 모습에 오래간만에 평화를 찾은 올케도 즐겁고, 버거워하는 아들을 보는 나도 고소(?)하다며 낄낄대었다. 아주 어릴 때 빼곤 거의 처음 만나는 형아가 그렇게도 좋은지, 사촌 형아는 언제나 꼬맹이계의 영웅인 것 같다.
이따금 달리고 나니 휴게소가 나왔다. 건물이라 하기엔 노점(?)에 가까운 모양새였지만 우리나라도 그렇듯 이런저런 조합의 기념품과 먹거리들을 팔았다. 아는 거라고 '카페 쓰어다'밖에 모르는 나는 로컬커피집에서 숙취해소용 커피를 하나 시키고, 어디서든 새로운 아이스크림에 환장하는 아이들도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무는 즐거운 휴게소타임. 단체로 우루르 내렸다가 다시 우르르 타는, 단체관광 아닌 단체관광 같은 느낌- 재밌네.
한 시간 넘게 졸고 나니 어느덧 붕타우에 도착했다. 붕타우 검색하면 항상 나오는 반콧이라는 음식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쌀가루 반죽을 튀겨 위에 해산물을 올려먹는 음식!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왠지 모르게 명절날 먹는 우리네의 어떤 음식 같기도 하고 정겨운 맛이었다. 반콧 말고도 해산물 쌀국수도 시켜 먹었는데, 그 맛이 또 일품이어서 해산물 킬러인 우리 딸이 한 그릇 붙잡고 먹고, 숙취 강한 우리도 거의 들이마시다시피했다. 처음엔 쌀국수 맛이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데 베트남 3주 차가 되니 맛의 차이가 조금씩 느껴지는 듯하다. 이제는 능숙하게 향신채 가득 넣어먹고 마늘하나 고추하나 넣어서 내 입맛에 맞춤도 찾아가는 중.
밥 먹고 나와보니 바로 숙소 앞이었다. 이 로컬로컬한 비주얼에 어울리지 않는 모던+세련된 호텔이라니-
웰컴드링크까지 마시고 있노라니 베트남 와서 가장 호화로운(?) 느낌이 든다. 나는 이 내추럴한 호찌민의 낡은 바이브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호텔에 오니 이 고급짐이 좋긴 좋구나.. 생각해 본다.
체크인을 마치고,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바로 수영장으로 갔다. 리조트가 아니라 호텔이라 인피니티 풀이라 별기안했는데도 바다뷰에 기막힌 날씨. 게다가 수영장에 사람도 없어서 거의 우리 가족이 전세 내듯 누렸다. 맥주 한잔이면 어디서든 행복해지는 비어노마드족인 우리 아버지, 맥주 한잔 시켜드렸더니 입이 귀에 걸리셨네.
호찌민으로 여행을 왔지만, 이렇게 또 바다 보러 여행을 오니 좋다. 옛 여수같이 조금은 투박한듯한 도시의 낡은 감성도 그저 내게는 이국적일 뿐이고. 새해 첫날 이렇게 온 가족이 모여서 하하 호호 웃고 있는 이 씬들 덕에 올해는 좀 더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do you like 고모? 하면 언제나 장난처럼 No라고 대답하는 우리 조카가, 수영장에서는 처음으로 YES라고 해주었다. 가장 기분 좋은 순간!
저녁은 근처에 예약해 둔 해산물 식당으로 갔다. 동생이 로컬 해산물식당을 예약해 두었다길래 오다가다 본 판잣집(?) 같은 로컬식당을 생각하고 갔는데, 바다 바로 앞에 하얀 테이블 보를 깔고, 노을을 배경 삼아 먹을 수 있는 일몰맛집의 식당이었다. 한국사람하나 없는 거 보니 진짜 로컬 맛집인듯한데, 메뉴도 그렇고 그나마 여기 사는 동생 아니었으면 와보기 힘들었을 것 같은 로컬난도 높은 식당! 그러나 주문이 어렵지 먹는 게 어려울쏘냐. 우리 여수출신, 해산물킬러전사들은 정말 그 어떤 로컬도 남부럽지 않게 모든 음식을 다 거덜 내었다.
제주에서나 먹을법한 꽃새우부터, 생선찜... 굴까지. 여기 와서 이렇게 야무치게 해산물을 먹게 될 줄을 몰랐다. 아빠는 끊임없이 하이네켄을 시키고 접시가 오고 순식간에 비워지고 치워지는 반복의 시간들. 그 와중에 지는 해는 어찌나 또 아름답던지-
그런 와중에, 어쩐지 연서가 심상치 않다. 해산물 앞에서도 영 시큰둥하더니 급기야는 누워있겠다며 테이블에 엎드린다. 딱히 열도 없고, 증상도 없는데 영 힘이 없다. 무엇보다 해산물킬러인 얘가 해산물을 안 먹겠다는 게 나는 제일 걱정된다. 급체인가 싶어서 콜라라도 먹어보라 했지만 그마저도 못 먹겠단다.
쌓이는 접시만큼 점점 걱정이 쌓여가는데, 갑자기 화장실을 가야겠다며 입을 틀어막는 녀석. 당장이라도 오바이트를 할 것 같단다. 손을 잡고 부리나케 뛰어 화장실을 찾아가니,
문 열자마다 속을 다 게워낸다. 아뿔싸.
그래 한 번은 몸살이 날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지금 이 순간이라니.
휴일에 호찌민도 아닌 붕따우에서, 이 녀석이 아프면 내가 뭘 어떻게 해줘야 하나.. 막막해졌다.
완벽할 것 같던 오늘의 여행이 갑자기 겁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