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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 Mar 10. 2023

[호찌민 한 달 살기](딸) 부잣집 막내아들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은 다 같이 밥 한 끼 먹는 일

드디어 엄마아빠가 왔다. 아빠도 어느덧 70살이 되어가는 어르신인데, 영어한마디 못하는 두 노인네가 용감하게 외국항공사를 타고 여기까지 온 게 참 장하다. 어쩌다 보니 나 빼고 자식 셋이서 번갈아가며 외국살이를 계속 이어가는 바람에 엄마아빠도 이렇게 타국으로 자식 보러 오는 일에는 이제 제법 익숙해지는 모양이다.


엄마아빠, 남동생네 가족, 나랑 우리 애들까지 모두 9명, 그야말로 대가족의 만남 되시겠다. 한국에서도 모여본 적이 없는 조합이다. 여러 사람 조건들 끼워 맞추느라 여러모로 복잡하긴 했어도, 이때다 싶어 모인건 잘한 일이다. 언제 이조합으로 또 만나겠는가. 일주일간 이 9명, 10대부터 70대까지 골고루 뒤섞여있는 이 조합, 부디 탈 없는 호찌민 여행기로 남기를. 이 중심에서 가장 행동대장인 나는 조용히 마음으로 기원해 본다.


남동생네 아파트 수영장에는 바비큐 시설이 있는데, 미리 예약하면 사용할 수가 있다고 해서 온 가족 첫 식사는 수영장에서 하기로 했다. (내가 아는바로는 호찌민에 수영장 있는 아파트에 대부분은 이런 바비큐시설이 있고 이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인원도 많고 입맛도 다른 이 모든 인원이 한꺼번에 갈만한 식당을 찾기도 어렵거니와 동남아 기분 느끼기에 수영장만 한 게 어디 있겠느냐며.

한국이라면 어디 큰 수영장 있는 펜션하나 잡아야 할 수 있는 수영장+바비큐 조합을, 이곳에서는 이렇게 저렴하고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는데, 우리 또 그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아침 일찍 바비큐에서 같이 먹을 새우를 사러 다 같이 떤미시장으로 갔다. 저번에 나는 한번 갔다 와서 나름 괜찮았는데 처음 이시장에 온 우리 애들은 문화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장어가 펄떡 거리고, 생닭이 거꾸로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장면들.. 내 팔짱을 꼭 잡고 놔주질 않은 채, 여기저기 기이한 시장분위기에 애써 적응해보려고 하는 게 귀엽다. 우리 이제 받아들여야지?
동남아서만 볼 수 있는 크고 희한한 새우들을 몇 가지 골랐다. 아는 건 타이거새우뿐인 내가 아는 척 좀 하랬더니 그것도 아니란다. 동생이 베트남어로 "이거 세 개, 얼마? 이건 네 개, 얼마" 간단한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마저도 대화가 잘 안돼서 손짓발짓이 다 나온다. 그 정도는 나도 하겠는데 ㅋㅋ 이제 동생이랑 다니면 굳이 입 다물고 있을 필요가 없을 거 같다. 나 벌써 "맥주 2개 주세요!" 정도는 베트남어로 할 수 있거든.

이런저런 새우를 가득 샀는데 만원 돈이다. 이 맛에 시장을 오지. 내친김에 아이들이 먹고 싶은 과자 몇 개, 엄마가 신기해하는 몇 가지 과일들까지 더 샀다. 난 슬슬 재밌어지려는데, 더 이상 못 있겠다는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쫓기듯 시장에서 나왔다.

수영장에 직원이 숯을 가져다주면서 파티는 시작되었다. 나름 캠핑에서 불 좀 지펴본 내가 불당번을 맡기로 맡았다. 불이 너무 세지지 않게 숯을 이리저리 옮겨가면서 양고기, 돼지목살, 아까사온 새우까지 크게 한판을 굽는다. 여수에서 공수해 온 생굴과 엄마표 겉절이까지 꺼내놓으니 진짜 그야말로 잔치상, 명절에나 먹을 수 있는 한상이었다. 센스 있게 아이스버킷에 맥주 가득 넣어온 올케덕에 한 손에는 맥주, 한 손에는 집게를 들고 수리남의 황정민처럼 고기를 굽굽하는데 이 장면이 실화인가 싶다. 어이, 식사는 잡쉈어?


물 만난(?) 애들이 아니라, 물 만난 소녀감성 우리 엄마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수영장으로 들어가 수영도 아닌 아쿠아워킹기법으로 수영장을 계속 걷는다. ㅎㅎ 네네 여사님, 마음대로 하시고요, 술 좋아하는 아빠는 대낮부터 차려진 이 무한리필 술상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캔 따는 속도가 자꾸 빨라지는 듯 하지만,응응 아빠 하고 싶은거 다해. 조카와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고 잘도 논다. 다이빙을 했다가 같이 물총을 쐈다가, 이렇게 엄마 안 찾는 거 너무 신기하다는 올케를 보니 애들이 밥값은 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한자리에 상을 차려놨어도, 오고 가며 한입 먹고 가는 아이들, 서서 고기 구우며 야금야금 먹는 나, 자리 한번 안 뜨고 맥주만 마시는 우라부지. 혹시나 이거 저거 빠지진 않는지 오고 가며 챙겨주시는 사돈어른. 모두 모두 제각각이지만, 무언가 다 같이 앉아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이 한 공간에서 잠시잠깐씩 서로를 묻고 이야기하며 보내는 시간의 공유만으로도 충만한 가족의 온기가 느껴진다.

늘 어렵고 부족하게 살아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못했던 유년시절에 비하면 적어도 이렇게 외국에서 모두 모여 수영장하나를 통째로 전세 내어 바비큐를 해 먹는 이 씬이(뭐 몰디브에서 코스가 나오는 값비싼 식사 같은 걸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이제 먹고살만해졌구나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 아마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같은 생각이었을 거다. 한평생 고생했던 엄마아빠도, 타국까지 와서 돈 벌며 이렇게 초대해 준 남동생도, 겨울방학에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나도.

부잣집 막내아들은 못되어도, 딸부잣집 막내아들인 남동생이 만들어준 오래오래 기억남을 식사였다.기분좋은 출발 같기도 했고.


그동안 우리 너무 어렵지 않았는가, 다 같이 밥 한 끼 먹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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