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포브스」 칼럼에서 라리사 포는 밀레니얼세대의 ‘멀티커리어이즘(multi-careerism)’ 현상을 소개한다. “(밀레니얼세대는) 그저 1루수이거나 좌익수이거나 하지 않아요. 그들은 ‘운동선수’죠. 그들의 외장하드는 한 번에 여러 일을 할 수 있게끔 어디에든 연결될 수 있어요.” 비아콤의 혁신 사업부 로스 마틴의 말이다. 그 후로 1일 8시간 주5일의 근무체제에서 밖에서 일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났다. 우리나라에서는 ‘n잡러’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주3일은 온라인 민주주의 스타트업 ‘빠띠’에서, 주2일은 조직문화를 연구하는 ‘진저티 프로젝트’에서 일하는 홍진아(34)는 자신처럼 적극적으로 둘 이상의 소속을 추구하며 다양한 방식과 역할로 일하는 이들을 n잡러라고 칭한다. 일은 가장 먼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겠지만, 행복하게 일하는 데에는 그 이상이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에게는 다양한 욕망과 능력이 있다. 하나의 일자리가 모든 것을 해소해줄 수 없다면, 스스로 일들의 조합을 만들어내 자신의 직업을 창조하려는 이들이 n잡러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얼마 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는 브리아나 카자가 이끄는 연구진의 글이 실렸다. 5년 이상 복수의 직업을 가지고 일해온 사람 48명을 인터뷰해 쓴 글이다. 연구진은 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대부분 멀티태스킹에 따르는 물리적 문제에서 올 것이라고 상상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터뷰 결과, 대부분이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진정성(authenticity)’의 문제였다. ‘정체성의 혼란’, 즉 진짜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감각에 끊임없이 시달린다는 이야기다.
글은 이 문제를 위한 조언을 내놓는데, 그 중 하나는 이렇다.
자신을 여러 정체성으로 이루어진 복합체로서 받아들여라.
사람들은 흔히 일관성이 진성성의 표식이라고 생각하지만, 늘 한 가지 모습이어야 진정한 것은 아니다. 인간에겐 여러 측면이 있다. 복수의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그런 여러 측면에 빛을 드리워 다양한 성향과 능력을 발현시키는 일일 수 있다. 자신을 하나의 고정된 주체로 상정하고, 거기에 딱 맞는 하나의 직업을 찾으라는 게 여태껏 세상의 보편적인 조언이었기 때문에 n잡러는 “대체 나는 누구인가”에 명료하게 답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그러나 n잡러에게 필요한 것은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복수의 역할을 오가는 와중에도 일상의 리듬을 구축하고 안정된 생활의 기반을 확보하는 구체적 기술이다. 개인 혼자서 온전히 갖출 수 없는 기술이기도 하다. n잡러로 자칭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들려야 하는 이유다. (끝)
*위 글은 2017년 11월 <한겨레> 신문에 기고되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8203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