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전부터 나는 아들을 원했다. 임신하고도 꼭 아들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도 내게 아들을 원하지 않았고 나 역시 남아선호는 아니었다.
“아들이네요.”
“선생님, 성별이 바뀌거나 하진 않죠?”
“네, 지금 여기 보면 고환이 보여요.”
“아, 다행이에요.”
아들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작고 가벼운 한숨이 쉬어졌다. 그래, 말 그대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세상은 성차별적 대우와 배제는 점차 사라질 거라 믿지만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적어도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보다 자유로운 것도 사실이다.
나는 여자이기에 싫진 않았다. “다음 생애에 남자로 태어날 거야?” 물으면 YES라고 대답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이기에 불편하고 불안하고 부당했던 일은 많았다. 여자이기에 무섭고 두렵던 일까지 꼽으면 손가락 발가락 합쳐도 모자라다. 39년 여자의 역사는 불안과 두려움의 역사이기도 하니까.
초등학교 등굣길, 내 종아리를 쓰다듬고 도망간 남자 중학생.
중학교 하굣길, 여중생들을 보며 시시덕거리던 고등학생들.
고등학교 때, 도심 한복판에서 교복 입은 나를 쫓아 왔던 젊은 남자.
대학교 때, 집 앞에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남자가 기다릴까 봐 남자 선배에게 집까지 데려달라고 했던 며칠.
알바 시절, 버스에서 따라 내려 다짜고짜 전화번호를 달라고 해 왕복 6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한 그 날 밤.
이십 대, 머리 하얀 할아버지가 내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내리던 지하철.
운전사 얼굴과 등록증을 확인하며 택시를 타던 수많은 날과 임산부지만 노약자석엔 앉을 생각도 못 했던 때.
혹자는 “그게 뭐가? 심각한 일이 아니잖아.”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모두가 나에겐 두려운 순간들이었다. 십 년, 이십 년 혹은 삼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또렷이 기억하는 일들이다. 아직도 그때 욕해주지 못해서 발로 차주지 못해서 분하니까.
더군다나 ‘나도 이 정도면 세상 겪을 일 겪을 만큼 겪어봤지.’라며 자만을 떨던 이십 대 몇 년을 제외하곤 혼자 사는 여자라서 할 수 없는 혹은 하면 안 되는 일이 많았다.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줄곧 혼자 산 나는 처음엔 그저 독립생활을 즐기느라 여자 혼자 사는 무서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에 도둑이 들었다. 창문을 뜯고 들어 온 단순한 절도범으로 사라진 물건도 많지 않았다. 그 집에 살던 남자는 창문을 고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생활을 해나갔다. 그러나 나는 그제야 혼자 사는 여성은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자각했다. 절도, 폭력, 강간 등 끔찍한 사건이 연일 뉴스에서 자극적으로 다뤄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남의 일이라 생각했다. 강력 범죄의 87%가 여성 대상 범죄고 강제추행 피해 여성 중 55.6%는 자신의 주거지에서 범죄를 당했다는 사실을 보면 충분히 나도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때부터 무더운 여름에도 창문은 모두 잠갔고, 문밖에서 조금만 낯선 소리가 나도 잠에서 깨었다. 그러다 남동생과 함께 살면서 나의 주거지에서의 불안은 잦아들었다. 문제는 남동생이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 후였다. 그 후 일 년 넘게 현관에는 동생 신발 한 켤레를 두고, 거실 불을 환히 켜고 잤다.
수많은 CCTV와 블랙박스가 범죄율을 낮춘다고도 하지만 여자로서는 물리적,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진 못한다. 게다가 디지털이 일상화되면서 생겨난 새로운 성범죄들은 얼마나 경악스러운가. 단순한 몰래카메라나 희롱을 넘어 조직적이고도 흉악한 사건이 연일 뉴스에서 자극적으로 다뤄진다. 더 끔찍한 건 영아나 유아에까지 범죄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여성이 안전하게 살아갈 사회 시스템이나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하다. 꽤나 배웠거나 사회적 지위가 있어도 성인지가 부족한 사람도 많다. 더군다나 여성의 상품화는 날로 심해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난 아들을 원했다. 모순된 이유일지라도 사실이다. 불안하고 불편하고 부당한 사회에 맞서는 씩씩한 딸을 키울 자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단단한 척, 당당한 척,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사는 여자는 ‘쎈 여자’라고 말하는 사회 아니던가. 쎈 언니, 쎈 여자로 사는 건 고달픈 일이다. 물론 한국 사회는 남자에게도 사회적으로 강요하는 남성성이 있고 성적 편견과 고정관념 역시 존재하지만 말이다.
이제 나는 나의 아들이 불안과 불편과 부당을 주지 않는 남자가 되도록 도와야 한다.
아, 이것도 어려운 일이다.